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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상황에서 강아지를? 말도 안 돼’
유독 동물을 좋아하는 남편과 그런 남편의 성향을 꼭 닮은 아이가 뜻을 내비쳐도 단칼에 잘라버리곤 했다. 어느 순간 내 마음속에도 갈망이 생겨났음에도 스스로 포기했었다. 가족이 되는 일이기에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일상을 쉽게 생각할 수 없었다.
그날은 책상머리에 앉아 SNS를 보며 쉬는 중이었다. 어떤 글 앞에서 나는 무방비 상태로 펑펑 울고 말았다. 그녀는 봄이라는 이름의 푸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봄이가 갑자기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니 자신이 일정 기간 동안 안보이더라도 이해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지금만큼은 마음껏 슬퍼해도 되겠냐는 내용이었다. 둘을 지켜보며 응원해 와서인지 그 슬픔이 내게도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마음껏 추억하라고. 봄이는 분명 좋은 곳에 먼저 가서 기다릴 것이라고 메시지를 보내면서 나는 알았다. 반려견을 키우고 싶은 마음이 내 속에서 강하게 일렁이고 있다는 것을.
몇 개월 후였다. 그 친구가 봄이를 닮은 푸들을 한 보호 시설을 통해 만났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번에도 진심으로 응원했다. 이런 게 반려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슬픔이 찾아오면 마음껏 슬퍼하고, 그러다 또다시 인연이 찾아오면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하면 되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녀를 보며 나는 용기낼 수 있었다.
그렇다. 이 행복은 예정보다 조금 이르게 배송되었다. 녀석을 처음 만난 날 나는 단박에 녀석을 알아보았다. 우리는 곧 가족이 되겠구나 직감했다. 귀여움이라는 단어를 뭉쳐서 생명체를 만들면 저렇게 곱슬곱슬 동글동글 귀여운 형상이겠구나 싶었다. 그런 녀석이 나와 만나려고 이곳에서 나를 기다린 듯했다. 첫눈에 좋았다. 그날로 그 강아지는 우리 집으로 왔다.
강아지를 키우는 것은 처음이라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지만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녀석이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가르쳐 줄 것인지를. 그건 어디에서 배운다고 알 수 있는 것도, 배우지 않았다고 모를 감정도 아니었다. 가족이 된다는 건 어느 순간 번개처럼 알게 되는 감정이었다.
그 작고 귀여운 강아지는 우리 집에 와서 ‘짜장이’가 된다. 체리, 봄이, 커피 등 여러 후보가 있었지만 ‘이거다’ 싶기엔 뭔가 아쉬웠다. 연애할 때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짜장면이라고 말했던 남편은 어느 아침 부스스한 얼굴로 말했다. ‘짜장이로 하자’고. ‘아무리 좋아해도 그렇지, 짜장이가 뭐야?’ 했지만 나도 딸아이도 그만 풉 웃어버렸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짜장이는 짜장이가 될 거라는 걸.
식구들이 자려고 누우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사람 몸 어딘가에 궁둥이를 철썩 붙이고 자는 녀석, 집에 누가 오든 간에 꼬리가 떨어져라 흔들며 엉덩이로 훌라 춤을 춰대는 녀석, 혼자 있는 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녀석, 이 무해한 존재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만약, 아주 만약에라도 키우던 반려견이 나보다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면, 그건 너무 슬픈 일일 테니까 정을 조금만 주어야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짜장이를 만나면서 이런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그저 어떻게 하면 매일 더 사랑해 줄까? 고민만 가득했다. 그렇게 후회 없이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일 테니까.
산책할 때 짜장이는 하수도 뚜껑을 보고 처음에는 주저하다가 한번 호흡을 가다듬은 뒤 폴짝 뛰어넘는 시도를 하곤 했다. 그걸 볼 때마다 나는 녀석을 향해 “잘했어, 잘했어 정말 잘했어”라고 쉴 틈 없이 외쳐댔다. 짜장이에게 한 칭찬이었지만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한때 넘어졌었지만, 다시 회복해 더 큰 긍정을 품고 살아가는 지금이, 남들 눈에는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을지라도 나만은 안다고, “잘했어”라고 조용히 되내어 본다. 이 작은 성취를 디딤돌 삼아 조금씩 더 큰 성취를 키워 가보자고. 이런 게 인생 아니겠냐고. 그것은 나를 향한 다독임이었다.
“짜장아 이게 바람이야, 짜장아 이게 햇살이야"
산책할 때 해주고 싶은 말이 이토록 많다. 뽀글뽀글한 털에 쌓여 폭신 폭신한 짜장이를 안고 꼬물꼬물 발가락 젤리를 만지는데 또르르 눈물이 나려는 이 마음은 뭘까. 너무 앞서 가지 말라고 친구가 경고했건만 나는 오늘도 이 순간이 짧기만 하다. 나만 바라보고 있는 작고 무해한 존재가 주는 무한한 행복감. 한 존재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느껴지는 충만함. 이것은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랑의 챕터였다.
다가올 일이 겁이 나서 사랑의 양을 재는 행동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짜장이가 조건을 따지면서 마음을 주지 않듯 나 또한 조건 없이 그저 사랑만 주겠노라고 오늘도 마음먹는다.
시간이 나면, 여유가 생기면, 이라며 이 배송을 미뤘다면 이 작고 무해한 존재가 가르쳐 준 사랑을 끝내 알지 못했을 것이다.
사무실이 한산한 오후, 책상머리에 앉아 짜장이 사진을 들여다본다.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이 작고 사랑스러운 무해한 존재를. 나에게 조금 일찍 당도한 이 행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