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단번에 없애주는 위험한 하얀 가루의 정체

사십춘기 메뉴는 기분따라

by 엘슈가

동글동글한 너, 반짝이는 작은 가루가 뿌려진, 그러면서 통통한 자태.


길을 걷다가 빵집 유리창 너머로 네가 보이면 나는 멈춰설 수 밖에 없었어. 게다가 타이밍이 맞아서 갓 튀겨진 너를 만나는 날이면, 그날은 행운의 날이 아니고 무엇이겠어?


언제나 나를 KO시키는 너 때문에 치아도 썩어봤고, 체중도 늘어봤어. 마흔이 넘으니 이젠 다른 수치로도 나타나더라. 바로 '혈당'. 나는 어릴 때부터 단 걸 좋아했지만, 단 걸 먹으면 안 되는 체질이었던 거야.


게다가 너를 먹을 때면 입가에 기름기가 묻는 건 일상다반사였지. 뒤에 중요한 미팅이 있을 때 너를 만나면 안 되는 거였어. 그럼에도 가끔, 아주 가끔 너를 만나러 10분 짬을 내서 빵집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설레였던 걸 인정할게.




내가 왜 이렇게 너에게 집착하는지 오늘은 얘기를 해야겠어. 오 남매 중에 막내였던 나는 유난히 엄마의 얼굴을 많이 닮았어. 또래 친구의 엄마보다 나이가 많았던 엄마는 아침마다 집 근처 작은 시장에 가서 싱싱한 채소며, 생선, 두부 등을 장을 봐서 그날의 밥상을 차리곤 하셨어. 그때 나를 꼭 데려가셨던 거야. 어린 나의 눈에 비친 시장은 신세계였고, 지날 때마다 상인 분들이 건네준 뻥튀기 같은 것들이 나는 너무 좋았어.


거기서 널 처음 봤어. 봉긋하고 동글동글하며 뿌려진 작은 가루로 반짝이던 너를. 아마 우리의 첫 만남은 네가 따뜻했을 때였나 봐. 그래서 나는 아직도 따듯한 너를 좋아하나 봐. 엄마는 종이봉투에 담긴 너를 살짝 위로 치켜올려줬고 한 입 베어 문 순간 나는 생각했어. '이 빵의 이름은 사르르구나. 마음이 사르르 녹는 것 같아'


너와 만나게 해 준 엄마는 그 순간을 기억할까? 아마 못할 수도 있을 거야. 나에겐 강렬했지만 엄마에게는 그저 일상의 한 조각일지도. 그러다 부모님과 떨어져 대학을 다니기 위해 서울로 왔을 때부터 너에 대한 짝사랑은 깊어졌지.


이제 알겠어? 내가 너에게 빠져든 이유를.





사실, 건강이나 좋은 식습관을 위해서라면 나는 이제 너와 헤어지는 게 맞아. 그럼에도 폭신한 너를 한 입 베어 물면, 자잘한 근심 걱정 따윈 사라진다면, 지끈지끈 아팠던 머리가 신기하게 낫는다면, 엄마와 늘 함께 했던 해맑은 막내였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면, 가끔은 너를 만나도 되지 않을까?


가끔 널 찾아갈게. 일상에 치인 어느 날, 오늘 메뉴만큼은 기분 따라 고를 거야! 생각 드는 그때. 너도 내가 사랑하는 그 모습 그대로 거기에 있어줄래? 날씬하거나 세련되게 변하지 말고 그 모습 그대로 말야. 나의 사랑, 찹쌀도넛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