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찾은 컵라면을 더 맛있게 먹는 꼼수

사십춘기 메뉴는 기분따라

by 엘슈가

분명 저녁을 먹었는데,

왜 이 시간만 되면 생각나는 거지?

그것도 하필 컵라면이...


아니야. 난 다이어트 중이라 식단이 중요해.

이렇게 무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

집에 컵라면을 다 없애버리든지 해야지 원.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했을 때였다. 하지만 손은 생각과 따로 놀고 있었다. 팬트리에 쌓여있는 컵라면 중 하나를 꺼내서 식탁 위에 올려둔 것이다. 왜, 보기만 하고 다시 넣어 두려고? 그때였다. 일과를 마치고 자유 시간을 보내던 딸아이가 나오더니, 식탁 위에 꺼내놓은 컵라면을 보고 툭 말을 건넨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말이 도화선이 될 거란 걸.


"엄마, 물 언제 부을 거야? 나 한 입 줄거지?"

이쯤 되면 한밤중에 컵라면 먹기는 나 혼자만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녀와의 공동 영역이 되어 버렸다. 쪼르르~ 컵라면을 심폐소생 시켜줄 생명수가 한밤중 정수기 노즐을 타고 흘러내린다. 이제 3분만 기다리면 된다.



"엄마, 그거 또 할 거야?"

"으응. 왜 그게 어때서?"

"아이고 참"

"한 번만 할게"


시간은 자정을 향해 가고 있다. 남편은 이 사태를 모른 채 자고 있다. 그가 깨지 않게 소곤소곤 말하는 건 우리만의 법칙이 되었다. 한밤중에 또 할 거냐니, 대체 무엇을 말하는 걸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을 한 젓갈 집어서 아이 앞의 작은 앞접시에 덜어준다. 면발만 주면 그건 아직 초짜라서 하는 행동이다. 뜨끈한 국물도 두어 모금쯤 덜어줘야 한다. 그리고 내가 한 일은? 베란다 창가 쪽으로 살금살금 가기.


베란다 문을 열었더니 한기가 밀려든다. 영하의 날씨는 영하의 날씨다. 그곳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컵라면을 가져다 댄다. 아니 물을 붓고 2~3분 기다렸으면 먹을 것이지 이게 무슨 상황일까?


답을 하기 전에 여러분에게 라면이 제일 맛있는 상황을 떠올려 보라는 질문을 건네고 싶다. 어떤 상황에서 먹었을 때 라면이 가장 맛있었는지를. 나의 경우 단연코 이곳에서 먹을 때였다. 그곳은 바로 '캠핑장'.


뜨끈하고 매콤한 국물에 면이 익어 풀어지기 직전, 젓가락으로 그 면발을 들어 찬바람을 쐬주면, 게임 끝이다. 정말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라면이 된다. 뺨이 좀 시리면 어떤가? 컵라면 소(小)자는 어차피 서너 번 젓가락질이면 동이 난다. 난 먹을 때만큼은 맛있게 먹고 싶다. 한파에 볼이 꽝꽝 얼더라도.

이것이 마흔 넘어 알게 된, 한밤중 라면을 더 맛있게 먹는 비법이랄까. 이 방법 말고 라면을 맛있게 먹는 또 다른 신박한 방법을 알고 있다면 알려주면 좋겠다.


건강에 좋은 식단도 좋지만 가끔 이렇게 맛있는 걸 먹으며 살아가고 싶다. 브로콜리, 토마토, 계란, 닭가슴살만 먹고 살 수는 없으니까. 앞으로도 가끔 이렇게 기분이 시키는 메뉴를 먹을 것이다. 그렇게 나를 달래야 건강한 식단도 오래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 완벽한 정답을 요구하는 세상에서 가끔 이런 맛있는 오답 하나쯤 끼어들때 비로소 숨을 쉴 수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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