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김떡순이 사무치게 그리운 이유

사십춘기 메뉴는 기분따라

by 엘슈가

퇴근 후 집에 가서 밥먹기엔 허기가 길고

만원 지하철 만원 버스에 오르기가 겁나서

잠깐씩 멈췄다 가곤 했던 곳. 특히

추운 겨울 뜨끈한 어묵은 잊을 수 없지.

종로 김떡순을 기억하는지.


점심시간, 건물 밖으로 한꺼번에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오늘 뭐 먹지? 누군가 툭 말을 던지면 별것도 아닌 답을 주고 받으며 까르르 웃는 동료들의 모습.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 장면은 여전히 나에게 동경의 장면으로 남아있다. 녹록지 않았던 10년의 회사 생활을 버티게 해 준 건 분명 그런 사소한 시간이 있어서였다.


당시 강북과 강남을 통틀어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는 삼일 빌딩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나는, 동료들과의 가벼운 농담들로 결코 가볍지 않은 일의 고충을 잊곤 했다. 분명 간신히 출근했는데 커피 카페인의 힘으로 언제 그랬냐는 듯 전날의 피로를 까맣게 잊고 생생해졌던 그때처럼 말이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오후면 회의실에 삼삼오오 모여 깔깔 웃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회사가 종로에 있어서인지 오후면 그렇게 김떡순을 사다 먹었으니까. 김밥, 떡볶이, 순대가 빨간 국물에 어우러진 그 메뉴, 흐린 날이면 어묵 추가는 눈치껏. 오후 4시가 되면 부장들은 막내급 사원 중 오늘은 누구에게 김떡순을 사 오라고 시킬지 파티션 너머로 두리번거리곤 했다. 당번을 골고루 지정하기 위한 고심의 흔적이랄까.



"혜숙 대리, 오늘 왜 이래?"

"네 뭐가요? 뭐 이상해요?"

"아니 너무 예뻐 보여서 딴 사람이 앉아있나 하고"

"모예요 피디님~ 놀랐잖아요"

정시에 출근해서 정시에 퇴근한 적이 거의 없었던 나의 첫 직장. 외국계회사라 밤 11시 넘어 사원증을 태그 하면 계약된 콜택시를 부를 수 있었다. 그만큼 야근이 일상이었다. 그래서 동료들끼리는 더 끈끈했다. 지금 들으면 뜨악할 농담도 그땐 그러려니 웃어넘겼다. 일이 힘드니까 서로 그렇게 농담 주고받으며 하루하루를 버틴 것이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를 때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메뉴가 바로 종로 김떡순이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가끔 그 김떡순이 그렇게 생각난다. 사실 지금도 김떡순이라는 메뉴를 파는 분식집이 있다. 메뉴에 없더라도 단골 분식집이라면 김밥 떡볶이 순대를 한 접시에 소복하게 담아 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 맛은 좀처럼 나지 않는다.


그때 내가 먹었던 김떡순은 단순히 음식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광고주에게 깨지고, 상무님에게 깨지고, 내 아이디어가 까였을때, 혹은 비가 추적추적와서 마음이 눅눅해졌을때 우리를 위로해 준 처방전이었다.


서로 섞일래야 섞일 수 없는 음식을 한데 넣어 만든 메뉴를 둘러앉아 먹고 나면, 섞일래야 섞일 수 없는 각자의 고단함이 자연스레 누그러지는 듯 했다. 가끔 떡볶이 국물 범벅인 그 속에서 레어템인 오징어 튀김을 발견했을 때의 쾌재는 또 어떤지. 그러면 정말 괜찮지 않은 것들이 신기하게도 괜찮아져 있었다.


그때 함께 일했던 부장님, 차장님, 팀장님, 동료 대리들, 사원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각자 자기 몫의 고단함을 풀어가며 그렇게들 잘 지내고 있겠지. 가끔 궁금하다. 당신들도 나처럼 그때 맵싸하고 달콤하고 고소했던 종로 김떡순이 이렇게나 사무치게 그리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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