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슈가 Oct 22. 2020

주문한 것만 보내지 않는 희한한 쇼핑몰

어라, 주문한 상품만 온 게 아니네~

"엘슈가님~ 택배 잘 받았습니다. 그런데 택배에 제가 주문하지 않은 상품이 포함되어 있어서요. 송장에 나와있는 주소로 반품 신청하면 될까요?"


아이템 업데이트도 활발했고 재구매, 즉 단골이 한창 주문을 많이 했던, 내 작은 상점의 전성기라고도 볼 수 있었던 2~3년 전 고객으로부터 이런 문자를 종종 받았다. 주문한 상품보다 1~2개 더 넣어 보낸 '작은 선물'을 배송 오류이라고 생각한 고객들이 보낸 문자였다. 문자를 받은 나는 ' 좀 오버했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선물이라고 하면 다들 좋아할까?'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아, 그거 선물로 보내드린 거예요'라고 회신하면 대개는 정말 좋아했다.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 sns 플랫폼에 프로모션 홍보 문구를 작성할 때도 분명 '2개 이상 주문 시 작은 선물을 드려요'라고 적었어도 하나를 주문한 고객의 택배를 포장할 때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2개 이상 주문한 사람은 선물을 받는데 한 개 주문한 사람이라고 아무것도 없이 상품만 보내면, 좀 서운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 작은 무엇이라도 넣어 보내자'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주문 후 3 영업일 내에 발송이 원칙이 플랫폼 사의 원칙이었는데 거래처 사정, 일시 품절 등 이런저런 사유로 지연이 발생하게 되면 작은 핀이나 머리끈을 넣어 보내주었던 것이 시작이었다. "슈가님, 이번엔 제 것만 사서 딸내미에게 미안했는데 이렇게 예쁜 리본핀을 선물로 주시고, 딸아이가 너무 좋아했어요!" "슈가님, 함께 보내주신 이 헤어핀만 더 살 수 없나요? 동네 엄마들이 너무 탐을 내서 그만 뺏겨버렸어요 하하"


덤을 넣어주는 것은 내 작은 상점만의 노하우는 아닐 것이다. 나도 딸아이의 옷을 대형 쇼핑몰에 주문하면 때때로 머리끈을 넣어 보내준 걸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나도 딸아이도 그 머리끈을 잘 쓰지 않는다. 쇠 부분이 너무 잘 녹슬거나, 한두 번 묶고 나면 한쪽이 늘어나버려서 이내 못쓰게 되는 그런 머리끈이었다. 예쁘지도 않고 내구성이 있지 않은 흔한.


선물로 보내준 것이라 감사할 일인데도, 잘 안 쓰게 되니 처치 곤란이었다. 그 까만 머리끈을 보며 어느 날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엘슈가샵에서 보내주는 사은품은 정말 두고두고 잘 쓰게 될, 그런 아이템만을 보내주자. 그러한 것이 아니라면 안 보내느니만 못할 거라고!


어느 여름은 덤으로 줄 헤어핀을 찾느라 동대문을 몇 시간 헤맨 적도 있었다. 받는 사람이 마음에 쏙 들게 심미안을 갖출 것. 주는 나도 가격 부담이 적으려면 한 번에 넉넉한 수량을 매입할 것. 이런 상품을 구하기가 쉽나, 그래서 그날도 몇 잔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뜨겁게 보냈었다.


쇼핑몰 운영이라는 것이 판매해서 이윤을 추구하는 업인데, 나는 왜 고객들이 주문하지 않은 상품을 '구태여 더 넣어' 보냈던 것일까?


고마웠다고. 수많은 온라인 쇼핑몰 중에 내 작은 상점을 이용해준 사람들에게 고마웠다. 재구매인 단골 고객들은 어떤가. 이 작은 상점을 잊지 않고 다시 들러줘서 고마웠다. 그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주문한 상품에 작은 선물을 함께 보냈었다. 내 마음도 함께 실어 보냈다.


나도 알 것 같아서. 고객들이 어떤 마음으로 주문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보통 오후 4~5시나 밤 11-12시에 주문이 많이 들어왔다. 사람들은 일상이 무료하거나 지칠 무렵 "힘든 나를 위해 보상할 만한 것, 나에게 줄 작은 선물 같은 거 뭐 없나?" 하는 마음으로 클릭을 했을지 모른다. 그렇게 클릭한 상품이 마음에 들었다면 배송을 받았을 때에도 사진과 다름없이 마음에 들기를 바랐다. 당신에게 이 작은 택배 하나가 어떤 의미일지, 택배 상자를 받고 상자를 개봉할 때 당신의 얼굴에 어떤 미소가 지어질지 나도 상품을 주문해봐서 안다고. 내 작은 선물은 그런 말을 건네고 있었다.


한켠에는 이런 심정도 있었다. 나 여기 있다고. 망망대해와 같은 인터넷 세상에서 내 온라인 상점은 점하나에 불과하겠지만 이렇게 건재해서 나의 작은 상점을 애정하고 이용해주는 당신들에게 이 정도 선물은 줄 수 있다고. 그러니 언제든 쉼이 되고 위로가 되는 감성 소품이 필요하면 떠올려 달라고. 내가 덤으로 보낸 작은 선물들이 고객들에게 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마진이나 이윤만을 추구했으면 그렇게까지 하지 못했을 것 같다. 몇 번 하다가 말았을 것이다. 랜선 너머로 상품을 주문한 사람을 알게 뭐야~ 약속된 물건을 약속된 가격에 약속된 기간에 보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효율성만을 추구했다면 손글씨를 쓰고 꼼꼼하게 포장을 하느라 택배 하나를 포장하는데 2~30분이 걸리는 배송 일은 일찌감치 다른 방식으로 변경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늘 주문서를 확인하고 택배를 포장할 때 손부터 씻고 마음부터 가다듬었다. 기분 좋음을 머금고 준비한 이 배송이 고객들에게도 기분 좋음으로 전해지기를 바랐다. 이러한 원칙을 '먼저' 정하고 '나중'에 효율성을 추구했다. 점점 퀄리티는 유지되면서도 택배 포장하는 시간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매번 덤을 넣어 보낸다는 것은 운영 측면에서 보면 '마진'이 줄어드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래서 재미있다... 당장은 나에게 손해일 수 있었던, 그렇지만 그게 좋아서 고집했던 그 방식, 나조차도 얼마나 이렇게 할 수 있으려나 생각했던 엘슈가샵 만의 배송 방식은 고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퍼지기 시작했다. 고객들은 게시판에, 블로그 댓글에 "다른 쇼핑몰 택배와 뭐가 다른 지는 모르겠지만, 엘슈가샵의 택배는 뭔가 정갈하고 특별해요" "받으면 기분이 좋아요" "운영자의 마음이 느껴져요"라는 후기들을 남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예리하고 영민했다.  집어 알려주지 않아도 엘슈가샵에만 있는 것을 기가 막히게 알아냈다. 그들은 그런 운영방식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주문한 것만 보내지 않는, 어떻게 보면 미련하고 어떻게 보면 정이 넘치는 이 작은 상점에 오래도록 단골로 머물러 주었다. --


* 브런치에 연재하는 모든 콘텐츠(글, 사진 포함)의 저작권은 생산자(원작자)인 엘작가에게 있으며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음을 고지합니다. 저마다의 소중한 저작권 보호에 동참해주세요! Copyright2020.엘슈가.All rights reserved.

이전 06화 잊지 못할 그해 헤링본자켓 고객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