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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슈가 Oct 26. 2020

뭐든 다되는 쇼핑몰에 안 되는 것 한 가지

소심한 주인장의 소심한 소신


쇼핑몰 고객과의 인연은 내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경우보다 고객들이 쇼핑몰을 찾아오면서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 작은 상점에 찾아오는 고객들은 늘 고마운 존재였다. 문의가 들어오면 가볍게 심호흡을 한 뒤 기분 좋음을 유지하며 응대하려고 노력한다. 고객들은 '웬만하면 다 괜찮은 타입'부터 '작은 것도 못 참는 타입'까지 그 스펙트럼이 참 다양했다. 그중에는 판매되는 옵션이 아닌 다른 조합을 원하는 분들도 꽤 있었다.


"안녕하세요 엘라스틱 헤어타이 중 A세트의 브라운과 B세트의 블랙을 바꿔서도 구입 가능할까요?"

"안녕하세요! 네 가능할 것 같아요 그렇게 보내 드릴게요"


"헤어핀 체크무늬가 고르고 결이 예쁜 것으로 골라서 보내 주실 수 있나요?"

"네, 그렇게 해드릴게요!"

어떻게든 판매를 하기 위해 안 되는 일을 억지로 되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가능하기에 가능하다고 답을 한 것이었다. 애초부터 제품을 구성할 때 고객 입장에서 어느 정도의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게 기획한 의도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고객들이 무엇인가 변경을 요청할 때마다 기쁘게 '가능할 것 같아요'라고 답을 할 수 있었다. 왜 그렇게 했을까를 생각해보면, 내가 구매자 일 때 조금 변형하기만 하면 마음에 쏙들텐데 싶은 상품들이 많았는데 어떤 쇼핑몰은 아예 그런 여지를 두지 않는 듯한 문구가 쓰여 있었다. 나는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다.


또 이런 나의 성향은 내가 광고대행사 AE, 광고기획 일로 커리어를 시작한 영향을 받은 때문도 있었다. 광고대행사에서 일한다는 것은 광고주를 '주님'이라고 부르는 태생부터 '을'출신 아니던가! 그냥 ‘을’은 아니고, 좀 잘 나가는 것 같고, 좀 세련된 이미지 같고, 같은 직급이면 연봉을 많이 받는 것 같은 그런 '을'. (실제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음)그래서 '돼요, 됩니다'라는 말이 나오는 게 남들보다 어려운 편은 아니었달까. 이런저런 이유로 내 작은 상점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웬만한 요청은 다 들어주는 쇼핑몰'


하지만 내 작은 상점이라고 해서 모든 게 다 되는 것은 아니었다. 웬만하면 되지만 안 되는 것이 있었다.


천연 원석과 담수진주 이어링을 판매했었을 때였으니까 아마 1~2년 전이었을 것이다. 문의 게시판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방금 제품을 받았는데 듣자마자 포장이 좀 뭔가 이상했어요. 쓰던 거 보내신 거 같고 제대로 밀봉되어 있지도 않고요~ 이것 새 제품 맞나요?”

새 제품이 맞냐니? 놀라서 작성자가 주문한 상품과 도착 날짜를 찾아보니 어떤 제품인지 기억났다. 성수기 주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제품을 내가 꼼꼼히 검수하기 때문에 상품의 포장 컨디션을 유추할 수 있었는데 포장에서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엘슈가입니다 남겨 주신 게시판 글을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혹시 택배 뽁뽁이 봉투를 들으실 때 칼로 뜯으셨을까요? 아마 밀봉이 되어 있지 않다는 말씀은 개봉하실 때 칼이 깊숙이 들어가면서 내부 포장지까지 잘려 나간 것 같습니다. 개봉 당시 사진을 저에게 메시지를 보내 주시면 제가 살펴보고 좀 더 정확하게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사진 기다릴게요, 감사합니다!"

10분이 지났을까 핸드폰으로 이미지가 전송되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사진상으로 봤을 때는 정말 밀봉되어 있지 않고 이게 새 제품이 만나 싶게도 느껴지는 상태였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제품을 개봉할 때 칼로 너무 깊숙이 잘라서 내부 봉투까지 잘렸던 것. 그 내용을 정확하게 안내해 드렸다.


"제가 개봉할 때 조금 너무 밑에까지 잘랐다고 하더라도 이건 좀 새 제품이라고 보기 어려운데요?”


이렇게 되면 판매자로서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한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보내주신 문자도 받고 이미지도 받아 살펴보았지만 저 그렇게 포장해서 보내는 판매자는 아닙니다. 제가 왜 좋은 마음으로 저희 상품을 구매 해 주신 분에게  쓰다 만 것 같은 상품을 보내겠습니까? 그것은 판매자의 기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 그렇게 장사하지 않습니다”


쇼핑몰 운영자가 '그렇게 장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다니 어디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걸까?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좋은 의도로 주문이라는, 결코 간단하지 않은 절차를 거쳐서 제품을 주문한 고객에게 그렇게 허투루 포장해서 보내지 않는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내 진심이 전달되지 않는다면 환불이든 교환이든 해드리겠노라고 담담히 전했다.


그래서 그 고객은 환불을 요청했을까요- 세상은 그래서 재미있다. 그렇게 강하게 나왔던 고객도 판매자가 정확하게 사실을 전달하고 담담하게 의견을 피력하면 이내 바뀌는 경우를 종종 보았으니까-


"엘슈가님 제가 포장을 들을 때 좀 과격하게 뜯은 것 같아요ㅎㅎㅎ. 이 상품, 포장 상태는 맘에 들진 않지만 제 실수도 인정할게요. 기분 좋은 마음으로 잘 쓰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제품 많이 소개해 주세요!"


나는 주문 리스트에 나와있는 고객 연락처로 이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의미로 커피 기프티콘을 발송했다. 그리고 아까는 조금 세게 말씀드린 것 같다는 메시지도 함께.


얼마 전의 일이었다. 문의 게시판에 글이 올라왔다고 알람이 울렸다. ‘상품 안 보내나요?’ 한 줄이다. 주문 내역을 살펴보니 주문 시각 자정 12시경. 정확히는 24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그런 문의 글을 올린 것이다.


"안녕하세요 엘슈가샵입니다. 엘슈가샵은 3 영업일 이내 발송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문하신 상품은 입고가 되어 검수 중으로 내일 발송 예정입니다. 가급적 빠르게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이렇게 남겼다. 글을 확인했을까? 10초 뒤 알림이 왔다. ‘주문 취소’였다. 나도 이미 떠난, 들을 사람 없는 허공에 대고 알림을 했다. ‘고객님, 저도 고객님처럼 그렇게 급하신 분께는 안 팔아요!’


이 작은 상점을 운영하면서 여기까지 찾아와 준 고객들이 반갑고 고마워서 웬만하면 다 된다고 이야기하는 쉬운(?) 주인장이지만, 무엇이든 웬만하면 다 되는 이 작은 상점에도 안 되는 것이 있다. 막무가내로 제멋대로 구는 고객들의 요구다.



우리가 구매자로 물건을  때를 생각해보면 얼마나 많은 쇼핑몰 중에서 고르고 또 고를까? 손님들이 쇼핑몰을 고를 권리와 자유가 있듯이 때로는 쇼핑몰 주인장도 손님을 고를 자유가 있다. 정말 말도  되는 요구를 할 때다. 그런 고객들이 많지도 않지만 아예 없지도 않다. 그래서 웬만하면 다 되는 쇼핑몰에 한 가지 원칙을 만들었다. 무례한 요구를 하는 분들께 무리해서  상품을 팔고 싶지는 않다는 원칙!


그분들께는 다소 죄송합니다만,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말씀드릴 것이다. ‘ 그렇게 장사하지 않습니다! 무례한 고객님께는 저도  팔아요!’ 이 원칙을 사용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지만 이 원칙을 만든 후 훨씬 마음이 든든해졌다.  작은 상점을 오래도록 지켜내 위해 생긴 소심하다면 소심한 나만의 소신이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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