꺄미에게 프랑스로 가겠다고 전하자, 그녀는 아들 ‘준이’도 같이 오는지 먼저 물었다. “이번 여행은 나 혼자 가”라는 대답에 까미는 꽤나 아쉬워했다. 세트처럼 늘 함께 다녔던 준이를 꺄미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한때 우리의 일원이었고, 즐거운 순간을 함께 했던 준이의 존재감을 정작 나는 잊고 있었다. 꺄미의 집에 초대를 받을 때마다 우린 늘 함께였기에, 준이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꺄미가 꽤 서운했을 법했다. 대신 얼마 전 찍은 사진을 전송하며 아이가 얼마나 자랐는지 전하고, 작은 위무를 보냈다.
시험이 끝난 주, 우리는 앙제(Angers) 시내에 있는 꺄미의 집에서 조촐한 자축 식을 열었었다. 여럿이 함께 준비한 요리를 들고 베란다로 나가 파티를 즐겼다. 시험의 속박에서 벗어나 기뻐하던 우리는 해방의 바람과 햇볕을 맞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웃었다. 말없이도 그냥 웃을 수 있었다. 꺄미, 나, 오헬리 모두 흥이 났지만, 시험의 구성원이 아닌 준이의 웃음에 우리는 더 큰 해방감을 느끼며 함께 웃었다. 그렇게 준이는 엄마 친구들 사이에서 하끌렛뜨(raclette) 치즈 파티를 즐기고, 베란다에서 산들바람을 맞았다. 통기타를 연주하던 꺄미의 연주에 열렬한 박수를 보내던 열혈 방청객이기도 했다. 그런 준이를 빠뜨리고 가는 여행이었다.
소환된 기억에 빠져 있는 사이, 꺄미가 다소 서먹한 소식을 전했다. 꺄미를 대신해 한번 본 적 없는 꺄미의 남편 아르노가 역사로 마중을 나온다는 것이다. 상상하자니 벌써부터 겸연쩍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기분이다. 물론 사진으로는 구면이지만 쑥스러운 긴장감이 밀려왔다. 결혼식 초대에 가지 못한 관계로, 초면 인사를 역에서 하게 되었다.
여행에 나서며, 나는 프랑스 브르타뉴 ‘생브리외’에 사는 파스칼과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 살고 있는 미나에게도 소식을 알렸다. 파스칼 역시 꽃 학교에서 만난 사이로 BP 과정 이전 수업인 CAP 반에서 처음 만났다. 꽃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다른 도시에서 이제 막 이사 온 내가 낯선 환경에 적응할 수 있었던 건, 파스칼이 나눠준 따뜻함 덕분이었다. 예상치 못한 예전 학우의 방문에 파스칼은 반색하며 비행기 날짜와 떼제베(TGV) 기차 시간을 물어왔다. 나는 몽파르나스발 TGV 열차를 예매하며 티켓 화면을 메신저로 전송했다. 파스칼과의 만남을 약속한 후, 에스토니아에 있는 미나에게도 탈린공항 도착시간을 알렸다.
미나는 나와 20대에 숙소를 나눠 쓴 사이로, 드물게 만나도 늘 한결같이 편안한 사이다. 평소 연락이 잦진 않아도 내 마음속에는 늘 미나의 자리가 있어왔다. 미나는 자주 연락을 하는 편은 아니어서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할 즈음, 그녀는 종종 전화로 안부를 묻고 내 주소를 물었다. 그런 뒤 며칠 후엔 어김없이 집에 엽서가 오곤 했다. 제주도 여행 중 내 생각이 났다며 복된 말과 행복을 기원하는 바다 내음 나는 엽서를 보내는 사람이 바로 미나였다. 밝고 꾸밈없는 성격으로 외국에서 가져온 아기자기한 기념품들을 선물로 나누며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미나는 몇 년째 해외 파견근무 중이다. 파견을 갈 때마다 내게 놀러 오라는 초대를 했지만, 마음과 달리 나는 한 번도 응하지 못했다. 그러다 이번에 파리를 경유해 약속을 지키게 되었다.
출국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사실 아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밥 데우는 법, 쓰레기 버리는 법, 빨래 돌리는 법 등을 가르쳤지만, 효용이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부단히 가르쳤지만, 그 외의 중요한 부분은 남편을 믿고 맡기기로 했다. 미안하게도 해외 근무 중인 남편이 몇 년간의 외국 생활을 마치고 귀임하는 3일 후가 내 출국일이었다. 나는 마치 바통을 넘기듯 아들을 부탁하고 출국했다.
나의 공백으로 펼쳐질 상황들에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간섭받고 싶어 하지 않는 사춘기 시기에 떠나서였을까? 아이는 ‘엄마의 부재’의 아쉬움보다는, 곧 있을 여름방학 캠프에 대한 기대가 더 큰 것 같았다. 불과 1, 2년 전만 해도 눈물을 흘리며 쉬운 이별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텐데…아무래도 청소년기의 호르몬들은 ‘나에게 관심을 쏟지 마세요’라는 구호를 내걸고 활동하는 듯, 무심하고 쿨하게 나를 보냈다. 그리하여 아쉬운 내색 없이, 가벼운 포옹과 ‘건승’을 비는 말로 다소 건조한 이별을 하고 떠나게 되었다. 이번 여행은 ‘생브리외(Saint-Brieuc)-라발(Laval)-탈린(Tallinn)-파리(Paris)’ 순으로 ‘파스칼-꺄미-미나’를 만나고 돌아오는 긴 추억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