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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기념일

by 에코바바

사람들이 용쓰듯 끙끙대며 버스 짐칸에 캐리어를 쌓아 올리고 있다. 뒤이어 푸른색 캐리어를 힘겹게 올린 나는 힘이 쭉 빠졌다. 여행에서 가장 힘을 많이 쓰는 때는 언제나 캐리어를 옮길 때인 걸 알지만, 루아시 버스 안에서 캐리어를 수직으로 쌓는다는 건 상당한 난이도와 힘을 요했다. 캐리어가 선반 위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나서야 겨우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른다. 나는 지금 샤를 드골 공항에서 파리 중심가로 향하는 공항 도심 버스, '루아시 버스'에 앉아 있다. 버스는 신혼 여행객으로 보이는 커플들과 다른 여행객들로 가득 찼다. 만원인 버스에는 도심까지 서서 가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한바탕 땀을 흘린 사람들은 가쁜 숨을 내쉬지만, 아쉽게도 루아시 버스에는 에어컨 서비스가 없다. 7월의 찌는 날씨에도 말이다. 습도가 높지 않은 파리 날씨지만, 여름 한가운데 관광객을 실은 버스 인심이 참 박하다고 느낄 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잠시 프랑스의 진짜 풍경을 잊고 있던 것일 뿐, 사실 이 모습은 그들이 사는 방식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에어컨을 켜는 일이 매우 드물었다. 덕분에 버스 안에 흐르는 뜨끈한 공기는, 들숨과 날숨 때마다 내가 프랑스에 와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우리는 모두 열린 창문에서 가까스로 들어오는 산들바람에 의존해 겨우 더위를 달래고 있었다.


여행객들이 품었던 설렘은 더위에 제압당한 듯, 즐거운 기대로 빚어지는 유쾌한 소란도 조용히 묻혔다. 버스 안의 관광객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꾹 다문 입술을 하고 아무 말이 없다. 차창 밖 풍경만 빠르게 지나갔다. 얼마나 달렸을까. 한 줄기 햇살이 비치며 열린 창문 사이로 민들레 홑씨 하나가 바람을 타고 날아 들어왔다. 흔한 민들레 홑씨가 날리는 모습을 보니, 그래도 내가 지구별 어디쯤 있다고 확인해 주는 듯이 반갑다. 아무 의미 없는 홑씨 하나가 전하는 안심과 무해한 희망이라니… 생명이 주는 동질감에 한동안 날아가는 홑 씨의 행적을 쫓았다.


버스가 파리 시내로 들어서며 멀리 18구 몽마르트 사크레쾨르 성당이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터져 나오는 감탄사와 함께 사람들의 모든 시선이 좌측의 사크레쾨르 성당을 향한다. 오랜만에 보는 산 중턱에 우뚝 선 몽마르트 성당에 내 심장도 덩달아 콩닥였다. 더위로 점점 생기를 잃어가던 사람들도 하나둘 자리를 고쳐 앉았다. 고개를 늘여 하얀 성당을 찾던 사람들은, 연이어 나타난 시내 풍경에 서서히 활기를 되찾고 있었다.


버스는 8구의 생 오귀스탕 성당(L’Église St-Augustin)을 지나 오스만 대로를 따라가며 마침내 여정의 끝에 다다르고 있었다. 오페라 가르니에의 뒷모습이 보인다. “아. 드디어 왔구나…” 설렘이 반가움으로 바뀌며 아득했던 마음이 선명해졌다.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찾은 사람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낯설면서도 익숙하고, 기쁘면서도 따뜻한 품에 안기는 기분. 다시 내가 속했던 곳으로 돌아오는 듯한, “탕아가 고향에 돌아온 마음과 비슷할까."


층층이 쌓아 올려졌던 캐리어들이 내려지고, 내 캐리어도 마침내 파리 거리를 밟았다.

‘덜컹덜컹’, ‘덜덜덜…’


파리 거리의 상징인 파베(Pavé) 바닥 돌은 여전히, 어김없이 내 캐리어 바퀴를 호락호락 구르게 두지 않았다. 균일하지 않은 네모난 돌들의 굴곡이 만들어낸 단차가, 직진하는 내 캐리어 바퀴에 어깃장을 놓고 있었다. 돌과 돌 사이의 낭떠러지처럼 깊게 팬 틈으로 바퀴들이 빠지며 방향이 엇나가기 시작했다. 덜컹덜컹 소리와 함께 방향키를 잡고 걷던 나는 "그래, 왔네. 왔어."라며 욱신거리는 손목과 파베 바닥을 번갈아 내려다보다 웃음이 났다.


숙소는 내가 살던 파리 15구, 꽁방시옹가(rue Convention)에 있었다.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굴린 캐리어 바퀴가 42번 버스 정류장에 멈췄을 때, 나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늘 타던 버스를 타고 11년 전 우리가 살던 그 집으로 가는 것처럼, 버스를 타고 집에 간다. 42번 버스는 시내 주요 관광지, 샹젤리제 거리, 그리고 에펠탑 등 명소들을 연결하는 버스로, 투어버스에 견주어도 부족함 없는 시내버스다. 추억의 노선을 타고 집에 가는 듯한 기대는 버스 정류장 전광판에 뜬 이상한 문구를 보기 전까지 계속됐다.


<행사(Manifestation)로 42번 버스는 운행되지 않습니다.>


도착일이 7월 14일. 프랑스 혁명기념일이었구나! ‘바스티유의 날’로 불리는 이날에는 샹젤리제 거리부터 콩코드 광장까지 화려한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프랑스 최대의 국가 행사인 만큼, 보안상의 이유로 지하철 1호선은 George V 역부터 개선문까지 무정차로 운행했다. 도로 위와 아래의 모든 노선이 행사에 대여되는 날이라는 걸 포맷된 컴퓨터처럼 완전히 잊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택시를 잡아타고 콩코드 다리를 지나 국회의사당과 앵발리드 뒤편인 7구로 우회해 15구로 향한다. 올림픽 준비로 도처가 공사 중인 파리의 도로는 마치 짧게 잘린 도로처럼 방향이 계속 바뀌었다. 단타로 여기저기 튕겨지는 탁구공처럼, 택시 안에서 여기저기 튕겨진다. 덕분에 가보지 않은 작은 길도 탐험해 본다. 에펠탑과 샴 드 마스(Champ de Mars) 광장에 일렬로 선 건물도 ‘올림픽’이라는 이름의 펜스를 두르고 리모델링 중이다. 파리는 모든 것에 ‘올림픽’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에펠탑을 지나 점점 집에 다다르자, 심장이 ‘쿵쾅’이며 비트를 탔다. 바람에 실려 오는 익숙한 냄새와 함께, 좁은 길들까지 헤집고 다니던 탁구공도 어느새 장을 보던 동네 슈퍼 ‘모노프리’앞에서 멈춰 섰다.


나는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얼른 숙소로 들어갔다. 그리고 숙소 방 침대에 풀썩하고 누웠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쉼이 좋아, 이 상태 그대로 머물러도 좋다고 생각했다. 얼마간 누워 쉼을 가졌을까? 밖에서 작은 폭죽 소리가 들려왔다. 들려오는 소리가 점점 커졌지만, 노곤한 몸을 침대에 두고 작은 여독을 풀었다. 하지만 쉼을 이어가려는 의지와 달리, 소리는 더욱 커졌다. 떠들썩한 축포 소리로 바뀐 폭죽 소리는 어느덧 베란다 유리 창문에까지 노크를 하고 있었다. 참견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지만, 나는 몸을 일으켜 베란다로 나가 보았다. 어두운 청 푸른색 하늘 위로 폭죽이 함박웃음으로 크게 터졌다. 그 환하게 터지는 모습을 보자, 나는 더 이상 이 쉼을 이어가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고 싶은 마음도 폭죽 속으로 타들어 가듯 금세 사그라들었다. 더 이상 꾸리기 어려운 살림처럼 빠르게 정리됐다.


곧 에펠탑은 ‘오늘 밤은 절대 그대로, 그냥 넘기지는 않겠어!’의 기세로 빠르게 계속해서 폭죽을 쏘아 댔다. 리듬을 타고 터지는 화려함에 고개가 하늘에 머물렀다. ‘에너지를 소진한 박약한 체력’이라도 “시차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버텨야 했던 참”이라며 반동의 힘을 팔꿈치에 실어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벗어놓은 웃옷을 챙겨 에펠탑이 보이는 샤를 미셸가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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