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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목 Jun 15. 2023

어제의 빛과 오늘의 빛은 다르다

어깨가 망가지더라도 항시 카메라를 들고 다녀야 하는 이유

 


 낯선 동네에 갈 때는 꼭 카메라를 챙기곤 하는데, 요즘엔 어깨가 아파서 ‘다음에 챙기지 뭐’ 하는 마음으로 놓고 다닐 때가 있다. 꼭 그럴 때마다 사진으로 꼭 담고 싶은 풍경을 목도하게 돼서, 나는 눈물을 삼키고 미러리스 카메라 대신 핸드폰 카메라를 가져다 댄다.     


 그 날도 나는 카메라를 챙기지 않았다. 도서관에 하루종일 있을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루종일 한량처럼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내게 주어진 시간을 마음껏 누릴 요량이었다. 내 몸과 책만 있으면 되지 뭐, 안일하게 생각하고 도서관으로 향하는 차에 몸을 실었다.     


 그 날의 날씨는 사랑스러울 정도로 환했다. 햇볕이 나뭇잎을 한올 한올 코팅하고, 구름은 손오공이 타고 다니던 근두운처럼 탐스럽게 피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도 틈틈이 창문을 바라봤다. 구름이 지나간 모양대로 마음이 움직였다. 결국 예정보다 이른 시간에 밖으로 나와 온몸으로 햇빛을 맞았다. 도서관 바로 앞에 뚝섬한강공원이 있어서 그곳으로 향했다.     


 뚝섬한강공원의 분수는 왜 이렇게 예쁘고, 유월의 장미는 왜 이렇게 아름다운지. 운동하는 사람들과, 밝은 빛의 녹음과, 잔잔하고 푸른 한강. 나는 뚝섬을 쭉 지나오며 내일은 꼭 카메라를 가지고 와야지, 다짐했다. 이날은 셔터를 누르는 대신 눈으로 풍경을 가득가득 담았다.     



 하지만 어제의 빛과 오늘의 빛은 같지 않다. 나는 전날 다짐한 대로, 다음날 카메라를 챙기고 호기롭게 밖을 나섰다. 일기예보에서는 분명 이날도 쨍쨍하댔는데 하늘은 몹시 흐렸고, 미세먼지 농도도 낮지 않았다. 시무룩한 마음으로 셔터를 몇 번 눌러봤지만 내 마음이 사진에 그대로 반영된 것인지, 사진이 자꾸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오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이날에는 소나기가 내렸다. 분명 아이폰으로 날씨 확인했을 땐 비 온다는 말 없었는데. 나는 큰 창문 앞에 앉아 갑자기 내린 소나기를 바라봤다. ‘우산 안 챙겼는데, 곧 그치겠지’ 하며 속으로 걱정하면서도 창문에 맺히는 물방울이 운치 있어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다행히 비는 곧 그쳤고, 나는 이날도 한강으로 향했다.     


 분명 전날에는 분수가 예쁘게 작동되고 있었는데, 이날엔 분수가 물 없이 텅 비었다. 전날엔 장미꽃도 풍성하게 피어있었지만, 하루 새에 다 말라버렸다. (비가 온 탓인가?) 사진을 찍고 싶은 바로 그 순간에 셔터를 눌러야 하는구나, 순간은 영원하지 않구나. 당연하지만 평소엔 인식하지 못했던 진리(!)를 사진을 통해 느꼈다.      


 사진은 빛이다. 사진을 사랑하는 사람이 으레 사용하는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빛이다. 빛이 사진기에 얼마나 들어오느냐에 따라서 사진은 다 다르게 찍힌다. 나는 사진이 빛을 다루는 예술이라는 점이 좋다. 어제의 빛과 오늘의 빛은 같지 않으니까. 나는 순간의 빛을 계속 좇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만 포착할 수 있는 아름다운 순간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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