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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목 Sep 17. 2023

예술을 사랑하는 신약 연구원, 떠모 인터뷰 (1)

내일도 내 일을 사랑해―27살 신입 연구원의 삶과 직업


떠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난, 나의 10년지기 친구다. 우리는 생년월일이 같아 쉽게 친해졌다. 우리가 같은 반에서 함께 지냈던 시간은 1년이지만, 아직까지도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서로의 곁에 머물고 있다.  

   

10년 동안 봐온 친구 떠모를 인터뷰하는 건 처음이었다. 질문과 답을 주고 받으며 그의 솔직한 생각과 내면에 대해서 많이 알게 돼 새삼 충격을 받았다. 이를테면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치즈와 새우라는 점을 나는 모르고 있었고, 그가 전공한 미생물학과에 대해서도 아는 게 전무했다. 10년 동안 무수한 대화를 나누며 이런 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어쩐지 부끄러워졌다.     


나는 떠모를 친구로서도, 직업인으로서도 존경한다. 그를 나의 첫 번째 인터뷰이로 정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떠모는 바쁜 와중에도 인터뷰에 응해주고, 수정 요청에도 응해주는 의리를 가졌다. 내가 조심스럽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도 단번에 수락하며, 너무 재밌겠다고 기뻐해줬다.     


그는 이제 1년 차 연구원이지만, 4년 간의 대학 생활과 2년 동안의 석사 과정을 거치며 외길을 팠다. 그가 한 우물만 판 것과는 반대로, 나는 대학생 때 복수 전공을 했다. 졸업 후에도 공무원 시험, 취직 준비를 거쳐 첫 취업한 지 1년 반 만에 이직까지 해버린 '프로 탈주러'다.      


나와는 너무도 다른 삶을 경험해온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너무나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떠모를 모르는 독자들도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생관과 직업관에 대해 반추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떠모가 직접 찍은 사진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27살 병아리 연구원입니당. 따끈따끈하게 취업해서 정신없이 일배우고 있어요. ㅎㅎ

제일 좋아하는 건 새우랑 치즈고 취미는 그림과 피아노입니다.     


떠모님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미생물을 공부하셨어요. 미생물학과는 문과인 저로서는 조금 생소한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는 건가요?

생명체를 이루는 세포에 대해 공부하는 학과입니다. 물론 미생물학과이니 미생물을 집중적으로 공부하였지만, 인간세포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할 수 있었어요.

대표적으로 흔히 알고 있는 마이크로바이옴, 다양한 환경에 있는 미생물이 살아가는 대사 과정 등 지구를 이루는 미생물의 분자 단위에서의 특징을 배울 수 있어요. 또 인간세포의 대사 과정이나 동물 실험에 대한 공부, 치료제 개발을 위한 약물 전달 시스템 등 다양한 공부를 할 수 있었어요. 세포를 구성하는 DNA나 RNA 연구를 위해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한 생물정보학에 대한 수업도 있었습니다.     

 

생물학과와 미생물학과 중에서 미생물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언제부터 미생물에 관심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저희 학교는 1학년 때 생물학부로 입학해 2학년 때 세부 학과를 선택하는 커리큘럼이에요. 생명 현상에 대해 공부하는 것을 좋아해서 생물학부에 입학했고, 처음부터 미생물학과로 세부 전공을 선택할 생각은 없었어요.      

관심 없는 식물까지 배워야 했던 생물학과와 달리, 미생물학과는 생화학과처럼 생명체의 메커니즘을 배우면서 인간 세포뿐만이 아닌 다양한 미생물에 대한 공부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2학년 때부터 전공 수업을 들으면서 여러 미생물이 소비하는 물질들이 순환하여 지구의 환경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었습니다.      


 '생명 현상'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궁금해요. 심장이 뛰는 것, 아니면 살아있는 그 자체?

생물학과는 생명체를 세포 단위로 공부하는 학과예요. 세포 단위부터 조직, 개체단위까지 유기체를 이루는 기초를 공부할 수 있어요. 그 중에서도 저는 세포 단위에서 세포가 어떻게 외부 자극에 반응하고 그 반응의 결과로 어떠한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가지게 되는지 공부했어요. 이 생명현상을 응용한 다양한 치료제 개발법도 배울 수 있었어요.     


여러 미생물이 소비하는 물질들이 순환해 지구의 환경을 구성하고 있다는 부분이 저도 흥미로워요. 혹시 짧게 한 사례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조금 재미없을 수는 있지만 하나 예를 들어볼게요. 미생물A는 A라는 물질을 사용해서 대사를 하게 돼요. 그리고 대사의 산물로 물질 B를 만들어 냅니다. 이 물질 B를 같은 환경에 있는 미생물B가 소비하게 되는 거죠. 이러한 과정을 통해 A->B->C->D->E를 거친 다음 다시 A로 물질 순환이 일어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나오는 물질들을 식물이 사용할 수도 있게 됩니다. 다양한 미생물들의 각개의 대사 과정이 아주 체계적으로 생태계 순환에 영향을 주고 있는 거죠.     


우스개소리로 이런 말이 있죠. 대학원생이 물에 빠지면 ”사람 살려!“라고 외치는 게 아니라 ”대학원생 살려“라고 외친다는… 대학원생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웃픈 유머인데요. 이처럼 대학원에 대한 악명이 자자한데 떠모 님은 어떠셨나요. 대학원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저희도 자주 하던 말이었어요. (웃음) 대학원에 가서는 생수 500mL 정도의 눈물을 뿜고 나니 졸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일도, 인간관계도 너무 힘들어서 후반에는 주룩주룩 울면서 일했던 기억이 나네요.      

가장 힘들었던 건 석사 과정을 밟는 2년 내에 어느 정도의 성과가 필요하다는 압박감이었어요. 바이오 특성상 열심히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운이 필요하기 때문에 불확실한 방향성과 한정된 시간이 늘 마음을 조급하게 했어요. 극복했다기보다는 ‘이 불안감을 없애려면 어느 정도의 확실한 성과가 필요하겠다’ 생각했어요. 아침 9시부터 밤 12시까지 연구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어요. 다행히 좋은 성과를 가지고 졸업했지만 그러지 못했더라도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었을 거 같아요.     


열심히하는 것뿐만 아니라 운이 필요하다는 말, 저는 대학원 생활은 해본 적 없지만 공감해요. 후회는 없었다는 게 멋있어요. 미생물학과를 졸업해서 현재는 신약 개발쪽을 하고 계시죠. 혹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조금 구체적으로 설명 부탁해도 될까요?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저는 대학원에서 면역학을 전공해서 개인 맞춤형 치료제를 개발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사람마다 가지는 세포의 특성과 면역 활성이 달라서 암과 같은 질병을 치료할 때 같은 치료법을 사용하더라도 사람의 특성에 따라 치료 효능이 다르다는 한계점이 있어요.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개인의 특징을 파악해 제작하는 개인 맞춤형 치료제가 필요합니다. 저는 이 치료제를 개발하는 연구를 하고 있어요.    

에곤 실레

사전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 꿈이 화가와 의사라고 하셨어요. 어릴 적 꿈에 대한 미련은 없나요? 고등학생 때 친구들의 얼굴을 자주 그려 줬던 게 기억이 나는데 요즘엔 어떤 그림을 그리나요?

한 꿈은 반절은 이루게 되었네요. 의사가 되고 싶었던 건 환자를 치료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는데, 연구원이 되어 신약 개발 연구를 진행하면서 제가 목표했던 꿈에 가까워지게 됐어요. 그 전에는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화가가 되겠다는 꿈은 마음 한 켠에 두었었어요.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됐다면 진심을 다해서 즐길 수 없을 수 있으니 취미로 둔 지금이 가장 만족스럽네요.      


오스트리아 미술관에서 본 에곤 실레의 그림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었고, 그때의 영향을 받아 그림 그리는 방식을 많이 바꿨었어요. 에곤 실레는 선을 정말 잘 쓰는 화가라 저도 비슷한 그림을 그리고 싶어 선을 많이 쓸 수 있는 옷 사진 같은 걸 많이 참고해서 그림을 그려요.     


저도 에곤 실레와 클림트 같은 오스트리아의 화가들을 좋아해요. 에곤 실레는 '선을 정말 잘 쓰는 화가'라는 말에도 공감해요. 저는 아직 실제로 본 적은 없는데 화면으로 봤을 때랑 어떤 점이 다른가요? 어떤 부분이 충격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화면으로 볼 때보다 생동감이 있고 화가가 보여주는 특유의 느낌이 더 잘 느껴지는 거 같아요. 원래 따듯한 색감을 좋아해서 모네 같은 인상파 화가의 그림이나 유화를 좋아했는데, 에곤 실레 작품을 보고 단순하면서도 많은 게 응축된 듯한 느낌에 충격을 받았었어요. 그 느낌이 좋아서 에곤 실레 화풍의 그림을 그려보려 하는데 그 느낌을 살리는 건 어렵네요. 클림트의 제자라 초반에는 클림트 그림과 유사한 작품이 많은데 자기만의 개성을 만들어 다른 느낌의 작품을 그려낸 점도 좋았어요. 그림체의 변화에서 화가의 생각과 고뇌가 느껴졌습니다.     


 그나저나 의사를 꿈꿨던 신약개발자라니. 진짜로 사람을 구하는 게 운명인 것 같아요. 갑자기 생각난 건데 떠모 님은 운명을 믿으시나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감사하고도 민망하네요. 현실은 하루하루 열심히 뚠뚠 살아가는 일개미지만 힘든 와중에도 ‘조금이나마 환자 치료에 이바지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이 저를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이 돼요.

음, 운명은 약간 재미로 믿고 있어요. 운명론자까지는 아니지만 운명이 있으면 재밌지 않을까요? 제가 생물학과를 나와 이 일을 하게 된 건 운명이라기보다는 제 기질인 거 같아요. 생명현상 자체를 흥미로워해서 자연스럽게 이 일을 하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대신에 저랑 같이 놀아줄 티키타카가 환상적인 짝꿍을 만나는 운명은 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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