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목 Sep 21. 2023

기록하는 것, 기억하는 것-영상 PD 윤 인터뷰 (1)

한 번의 퇴사를 거친 이후, 이직을 위해 정진하고 있던 윤의 기록.

 

 윤은 나와 중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친구다. 학교 다닐 때 매번 같은 버스를 타고 집에 갔고, 대학교도 같은 지역으로 갔다. 전공도 비슷할 뿐더러(윤의 주전공은 한국어문학이고, 나는 국어국문학과를 복수전공했다) 지금도 둘 다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다.


 나와 윤의 가장 큰 공통점은 취업과 이직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사실 20대 후반이라면 거의 대부분이 겪는 통증일 것이다. 취준생이라서 막막하고, 이직을 준비해야 해서 답답하고, 이미 직업이 있는데도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불안하고. 책이나 유튜브를 보면 다 훌륭한 사람들만 나오니 나의 현실은 더없이 초라해보이고.


 꼭 큰 꿈이나 포부를 갖지 않더라도, 우리는 우리 자체로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윤과 대화를 하고 나서 깨달았다. 나는 늘 내 앞에 있는 사람들만 보면서 조급해하고 괴로워했는데, 윤은 자기 내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일례로 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글을 쓰고 잘 썼다는 칭찬을 받고 싶어하지만, 윤은 자신이 만족하는 영상을 만들기 위해 골몰하는 사람이었다.


 상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회 초년생인 우리의 대화를 보고 희망을 갖는 독자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기쁠 것 같다. 그게 이 인터뷰 시리즈를 기획한 이유기도 하다. 대단한 직업을 가진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정말 평범하게 살아가는 20대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영상PD이자 백수인 윤입니다.


(윤은 이 인터뷰를 마친 직후 이직에 성공했다)


대학 전공은 한국어문학과고, 부전공이 영상방송제작학과였죠. 부전공을 하게 된 이유와 영상으로 진로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영상 만드는 건 원래 어렸을 때부터 취미로 좋아했어요. 영상 프로그램 무료로 다운 받아서 혼자 알아서 만들고. 그런데 직업으로 연결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고, 전공을 할 거라는 생각도 안 했었어요. 제 성향이 창의적이지 않아요. 영상을 만드는 그 자체가 재밌던 거지, 영화나 방송을 만들고 드라마를 찍는 거엔 관심이 없었어요. 그래서 영상을 전공할 생각은 안 했고, 성적에 맞춰서 대학교에 갔는데 마침 제 한국어문학과 지도교수님이 유명 방송사 피디 출신이셨어요. 그래서 영상을 적극적으로 권하셨어요. 그 분이 영상을 적극적으로 권유하셨어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애들한테 권유하셨는데, 제가 얻어 걸린 거죠.


교수님 말씀만 듣고 영상으로 진로를 결정하게 된 건가요? 구체적인 계기도 궁금해요.

-그땐 영상 쪽으로 일을 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전문적으로 영상을 배워보고 싶었던 거예요. 저희 학교가 영화과가 유명했어서, 제가 쓰지 못했던 프로그램으로 영상을 편집하는 방법이나 이론을 배우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취미의 연장선으로 여겼었는데, 취업을 해야 될 때쯤이면 어떻게든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처음엔 한국어교사가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서 전공을 살릴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취업할 때가 되니까 한국어교사도 저랑 안 맞는 거예요. 사람들 앞에서 나서서 말하는 걸 힘들어해서. 그래서 전공 아니면 내가 돈 벌 수 있는 능력이 뭐 있지, 하니까 부전공이 떠오르더라구요. 마침 고향에서 국가 사업으로 디지털 관련 취업자들을 지원해 주는 게 있어서 그것을 계기로 영상 일을 시작하게 됐죠.


문학과 영상예술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기록하는 거죠. 제가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니거든요. 제가 느꼈던 감정, 생각들도 까먹어요. 그래서 그걸 글이나 영상으로 만들어내면 '내가 진짜 이런 감정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저는 두 개의 공통점은 기록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이점은 확고하게 말을 못하겠는데, 영상으로 남기고 싶은 것과 글로 남기고 싶은 게 달라요. 그게 무슨 차이인지는 모르겠어요.


글쓸 때랑 영상을 만들 때랑 마음가짐이 다른가요?

-글보다 영상이 조금 더 직관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글을 쓸 때 조금 더 솔직하게 쓰고 영상을 만들 때는 조금 더 은유적으로 표현하려고 해요. 글은 제가 말로 하지 못하는 생각을 정리하는 수단에 가까워서 직설적으로 솔직하게 쓰고, 영상은…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어요.


글을 쓰거나 영상을 만들고 나면 친구들에게 보여주나요?

-글은 안 보여줘요. 글은 너무 솔직해서 보여주기 싫어요. 알몸을 보여주는 느낌? 영상 같은 경우에는 보여주는 것 같아요. 만들고 나면 느낌이 어떤지 피드백을 받으려고 해요. 색다른 도전도 많이 해보려고 하는 것 같고.

어떤 영상을 만들 때 가장 보람을 느꼈나요? 그 반대도 좋아요.

-아직은 없는 것 같아요. 제 스스로 만족이 안 돼요. 저는 제 자신을 스스로 인정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면 영상을 보여줄 때, 스스로 만족이 안 되더라도 일단 보여주는 건가요?

-네. 그럴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여기까지밖에 제 능력이 안 되는 거예요. 제 이상향이 너무 높긴 해요. 제 능력이나 환경에 비해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길 원해요. 그래서 만족을 못 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만든 영상 중에 가장 아쉬운 것이 있다면.

-모든 영상이 아쉬워요. 아직 '와, 이거 잘 나왔다' 싶던 건 없었거든요. 이직 준비를 하면서 이전 영상들을 보는데 계속 부족한 점이 보이는 거죠. 제작을 할 때 영상을 거짓말 조금 보태서 천 번은 보는 것 같은데 그럴 때마다 아쉬운 점과 부족한 부분이 계속 보여요.


그리고 사실 제가 뭘 만들고 싶은지 아직 잘 몰라요. 그래서 마음에 드는 작품이 안 나왔던 것 같아요.


만들고 싶은 영상을 아직 찾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영상을 만드는 행위 자체가 재밌어요. 그걸 지금 즐기고 있는 거지, 지금 단계에서는 '어떤 영상을 만드는 게 즐겁다'라는 생각은 아직 없어요.


영상 만드는 사람 중에 닮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최근에 뉴진스 '디토' 뮤직비디오 만든 분들, 돌고래유괴단. 원래 광고 영상을 주로 만들던 분들인데, 이 분들이 뮤직비디오 제작하는 게 멋있었어요. '디토' 뮤직비디오를 보고 '이런 영상 만들면 재밌겠다'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이야기가 담긴 영상을 만드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전 02화 예술을 사랑하는 신약 연구원, 떠모 인터뷰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