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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목 Oct 12. 2023

내가 지켜낸 나의 이야기 - 선물 인터뷰(1)

자신의 삶을 일궈나가는 법


 선물 언니는 지난해 셰어하우스에 살면서 만나게 됐다. 언니를 처음 보자마자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종종 점심과 저녁을 같이 먹으며 언니의 따뜻하고 다정한 심성을 더욱 자세히 알게 됐다. 시간이 지나 우리 둘 다 셰어하우스를 나오게 됐지만, 여전히 한 달에 한 번씩은 만나며 근황을 주고받는다. 언니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쩌면 이렇게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가 있지’ 하며 감탄했다. 인터뷰를 기획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난 인물도 선물 언니였다. 언니라면 자신의 경험을 풍부하고 솔직하게 담아내줄 것 같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난 후에 언니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솔직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평소라면 건네지 않았을 내밀한 질문들을 언니에게 내밀었고, 언니는 오랜 고민 끝에 진솔하게 답변했다. 선물 언니의 선물 같은 답변에 마음이 두둑하게 채워진 기분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선물이에요. 저는 화학공학을 전공했고 치의전(치의학전문대학원)을 준비하다가 실패하고, 취업시기를 놓쳐 중고등학생들 수학과외를 7년 정도 했어요.

그러다 3D 디자인을 배우고 제품디자인 산업기사를 따서 자동차 패턴 디자인 회사에서 1년 이상 근무했습니다.

현재는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만들고자 나전칠기를 배우고 있습니다. 제품디자인과 나전칠기를 접목해 오래도록 간직될 아름다움을 실현하고자 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언니를 존경해요. 대학 전공과 지금 준비하시는 일이 전혀 다르잖아요. 계속해서 새로운 일을 도전할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저의 가장 장점은 세상을 열린 눈으로 보고, 편견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좋아 보이는 것들이 제 눈에 많이 그리고 자주 들어와요.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센스를 갖추게 된 것 같아요. 센스가 있다는 건 세상을 살면서 굉장한 이점이 있어요. 뭘 해도 중간은 가거든요. 거기에다가 운이 좋게도 나쁘지 않은 머리와 나쁘지 않은 신체능력, 좋은 손재주까지 타고 태어났어요. 그래서 다양한 분야를 큰 두려움 없이 시도해 볼 수 있었어요. 필라테스, 발레, 스쿠버다이빙, 패러글라이딩 같은 운동뿐만 아니라 그림, 만들기 같은 예술분야, 무언가를 배우고 탐구해야 하는 분야 모두에 흥미가 있고 그것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항상 되어있어요.


그리고 저의 작은 도전과 성공의 경험이 모여 점점 큰 도전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대학생 때 백여 명 앞에서 발표를 하는 작은 도전도 허투루 하지 않았어요. 제가 어려운 주제를 맡아 자료를 준비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죠. 실수하지 않기 위해 스크립트를 짜서 외우고 시간에 맞게 발표할 수 있도록 준비를 철저히 했어요. 내성적인 성격이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게 힘들었지만 최대한 당당해 보이려 노력했어요. 그리고 제가 철저하게 준비했기 때문에 당당하게 할 수 있었죠. 발표할 때 화면을 가리키던 지시봉이 덜덜 떨려서 두 손으로 잡고 발표를 이어 나갔지만 발표 후 제가 떨려 보였다는 피드백은 없었어요. 교수님도 어려운 이론이라 당연히 제대로 설명 못할 줄 알고 제 부분은 따로 수업 준비를 해오셨는데 완벽하게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셨어요. 성공의 경험은 더 큰 도전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는 것 같아요.


수학 과외를 오래 하시다가 작년에 3D 디자이너가 되신 것도 정말 멋진 것 같아요. 원래 가지고 있었던 수학적 지식이 3D 모델링에 도움이 됐는지 궁금해요.

사실 제가 수학과외를 한 건 제 인생에서 가장 쉬운 선택이었어요. 수학이 쉽다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고 싶지 않은 순간에 선택했던 직업이에요. 앞서 언급했지만 저는 치과의사가 되고 싶어서 대학졸업 후 DEET 공부를 했었어요. 지금은 없어진 시험인데 전 치과의사가 되면 정말 잘할 자신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 머리가 나쁘지는 않지만 시험에 합격할 정도로 뛰어나지도 않다는 걸 깨닫고 2년여의 노력을 끝맺었어요.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지친 순간이었어요. 이미 이십 대 후반이 되어버렸는데 이룬 것이 아무것도 없고, 이미 대기업에 취업해 돈을 벌고 있던 동기들에 비해 한참은 뒤처져 있는 느낌이었어요. 그렇다고 무언가를 도전하고 이루어 낼 힘은 없는 상태였어요. 그런 제가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게 수학 과외였어요. 다행히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고 말도 조리 있게 하는 편이다 보니 학생들이 늘어갔어요. 그리고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성장과,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제 기쁨이 되었어요. 게다가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보니 좋아하는 여행도 자주 다닐 수 있어서 말 그대로 ‘꿀직업’이었어요.


그런데 혼자서 일하는 수학 과외를 오래 하다 보니 제가 사회의 구성원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학생들의 성장을 보며 성취감을 느꼈지만, 정작 제 자신의 성장은 없이 서른넷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도 사회에 소속되어 무언가를 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무렵 건강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하게 되면서 제 미래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게 되었고, 제가 진짜 원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서른다섯에 다시 제로베이스로 돌아가길 자처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하루를 살더라도 하고 싶은 걸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초등학생 때까지는 미술,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자주 탔어요. 저는 예술에 타고난 재능이 있고, 그 사실을 저도 알고 있었어요. 주변에서 저를 특이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평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에 상처를 받으면서 저의 색깔을 잃어갔지만 이젠 그러고 싶지 않아 졌어요. 살면서 제가 지켜낸 나와 세상과 타협한 내가 뒤섞여 있지만 지금이라도 그냥 나대로 인정받고 나대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저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에 매료되는 사람이에요. 무아지경에 빠진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거든요. 그렇다고 제 그림 실력이 뛰어난 건 아니에요. 초등학생 때 재능이 있었지만 예술가와 비교했을 때 한참은 뒤떨어지는 실력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어서 컴퓨터로 그리는 걸 선택했어요. 제가 상상하고 있는 걸 손으로 그린다고 했을 때 화가와 비교해 현재의 내가 경쟁력이 없는 건 당연하지만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면 전문가와 비교해도 경쟁력이 있겠다 판단했어요. 전 아이디어가 좋은 사람이고 3D 모델링이 저의 창의성을 더 돋보이게 할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제가 아무리 창의적이고 번뜩이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제 손끝에 경험과 기술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컴퓨터로 디자인하는 3D 모델링을 선택하게 되었어요.


저는 Rhino 3D모델링을 배웠어요. Rhino는 subD 기반의 모델링 툴인데 3D MAX 나 지브러쉬 같은 툴보다 수학적 접근이 가능해요. 3차원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공간감각도 중요해요. 길이나 면적 부피에 대한 수학적 명령도 가능해서 저의 수학적 센스가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저는 오히려 컴퓨터 다루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어요. 초반에 어려움을 겪고 난 후에는 오히려 좋았어요. 똑같이 샴푸용기를 디자인해도 저는 한 펌프에 나오는 용량을 계산해서 디자인할 수 있었거든요.


인터뷰를 요청드린 현재는 퇴사를 하셨는데, 첫 회사를 퇴사하게 된 계기를 짧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인간관계에 어려움이 있었어요. 전 살면서 사람들이 저에게 늘 호감을 가졌고, 저에게 호감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과 원만하게 잘 지낼 수 있는 성격이기에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인간관계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거라는 생각 없이 입사했어요. 주변 친구들도 어딜 가나 예쁨 받을 것 같다고 해줬어요. 그래서 저는 일을 잘하고 동료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기 위해 정확하고 실수 없이 일하는 데에 집중했어요.


그런데 예기치 못하게 팀장님과의 불화가 생겼고, 부정적인 관계에 익숙하지 않은 저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몰라 상황이 더욱 나빠졌어요. 게다가 중소기업이다 보니 제가 맡은 업무 외에도 CS 업무까지 도맡게 되면서 회사 생활이 점점 힘들어져 퇴사를 결심했죠.


퇴사 후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저의 잘못을 알게 되었어요. 주변 지인들과는 나이가 어리든 많든 수평적인 관계로 서로 존중하며 지냈는데 회사에서도 그런 말과 행동이 나오니 주의를 자주 받았어요. 저의 가장 큰 잘못은 팀장을 팀장으로서의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부하직원의 임무임을 몰랐다는 거예요. 팀장은 “팀장님 최고십니다”하는 말들을 직접적으로 여러 번 요구했는데 저는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아 퇴사할 때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거든요. 새로운 직장에 들어간다면 제가 이 경험을 반면교사 삼겠지만, 어떤 선택을 할지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아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다를 것 같거든요.

선물 언니의 작업 기록

퇴사하고 난 후, 지금은 옻칠나전을 배우고 계시죠. 이번에 또 다른 직업에 도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다른 직업은 아니고 3D디자이너의 연장선상에 있어요. 이전 직장에서 자동차를 모델링했지만 각종 제조사의 차량을 리버스모델링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디자인을 창조해 내는 일은 아니었어요.


저는 평소에 아름다운 것을 좋아해요. 제가 가장 힐링한다고 여겨질 때는 파랗고 맑은 하늘을 볼 때, 예쁜 꽃을 볼 때, 아기들의 순수한 웃음을 볼 때, 빗소리를 들을 때, 햇빛에 일렁이는 나뭇잎의 반짝이는 순간을 볼 때, 이런 순간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할 때 마음이 가장 편안하고 행복감을 느껴요. 이런 아름다운 것들이 우리 일상에 있다면 우리 삶이 조금 더 행복하지 않을까 싶어요. 실제로도 사무용품, 문구, 주방도구, 전자기기 등 을 살 때 기능보다 디자인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요. 그리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잖아요. 그래서 퇴사를 하면서 이번에는 작고 예쁜 제품을 디자인해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런 제품들이 개개인의 행복을 위해 소비되기에는 자연 파괴가 심하다고 느꼈어요. 대부분의 제품들은 사용되고 버려지는 주기가 짧아요. 환경파괴와 아름다움 사이에서 고민하면서 인터넷을 뒤지며 다양한 것들을 찾아보다가 나전칠기를 알게 되었어요. 나전칠기는 목재에 천연 옻칠을 하여 자개문양을 올리는 우리나라 전통 공예인데, 모든 것이 자연에서 와서 버려지더라도 자연에 해가 없고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진 나전칠기는 1000년가량 유지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제 제품디자인에 나전칠기를 접목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름답지만 오래 지속될,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해보고 싶어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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