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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목 Oct 12. 2023

아름답게 지속될 그녀의 이야기 - 인터뷰 (2)

지속 가능한 아름다움을 꿈꾸며

언니가 지금까지 거쳐온 일들 중에(공부도 포함해서) 가장 사랑한 일은 무엇인가요?

현재 하는 일을 가장 사랑해요. 과거에 했던 경험과 일들 모두 다 좋아하고 소중한 일들이에요. 모든 경험과 일을 통해 배운 것이 많고, 쓸모없는 건 없었어요. 하지만 과거의 제가 했던 경험들은 지금의 나를 만들기 위한 과정일 뿐이에요. 과거의 경험들이 모여 지금의 일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줘요.


앞으로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나요?

관심 있는 게 너무 많아서 걱정이에요. 저는 스스로 관찰력과 통찰력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범죄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실마리를 통해 범인을 예측하고 심리를 파악하는 걸 아주아주 좋아해요. 그래서 범죄심리학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어요. 언젠간 프로파일링 하는 디자이너가 되어있을지도 몰라요. ㅎㅎ


귀여운 이모티콘도 만들고 싶어요. 요즘 큰 관심사 중 하나가 제 안에 있는 감정을 제대로 아는 거거든요. 그래서 감정에 대한 글쓰기 수업도 참여해 봤어요. 그러면서 제가 가진 감정들을 표현하는 이모티콘에도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디자인 툴에 대한 이해가 높으면 제 직업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매주 월요일 저녁에 일러스트 수업을 신청해 뒀어요. 디자인 기술과 제 감정 바로 보기를 접목해서 이모티콘 만드는 건 틈틈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천천히 해보려고요.

 

이번에 퇴사하시고 미술, 글쓰기 등등 다양한 것들을 많이 배우셨잖아요. 최근까지 발레 학원도 다니셨고요. 원래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 흥미가 있는 편이셨나요?

뛰어나게 잘해서 돈과 연결은 안 되지만 좋아하는 것들을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만큼 좋아하는 것도 많고요. 제가 배우는 것들을 보면 제 내면과 깊게 연관되어 있어요. 제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저는 그리는 행위 자체에 매료되는 사람이에요. 제 실력과 상관없이.


이번에 퇴사하자마자 경남 의령이라는 곳에서 잠시 시골살이를 했어요. 의령에 신포숲이라는 소나무 숲이 있는데 아늑한 곳이에요. 그곳에서 아침에 오일파스텔을 배우는 수업이 있었어요. 오일파스텔은 처음 사용해 봤는데, 칠하고 문지르고 덮어씌우고 찍어내면서 스트레스를 떠올릴 틈도 없이 집중했어요. 그래서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오일파스텔 수업을 들었어요.


마음이 좀 편안해진 요즘은 나전칠기를 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는데요, 또다시 마음이 복잡해지면 저의 들썩이는 마음을 다스려주는 무언가를 배울 것 같아요.


저도 인터뷰를 하면서 좀 명확해진 부분인데 마음이 심란할 때 무언가를 배우면서 그것을 통해서 불안정한 마음을 달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네요.


언니의 학창 시절도 궁금해요. 개인적으론 학원 열심히 다니는 모범생이지만 놀 때는 잘 노는 학생이었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저는 학창 시절에 굉장히 소심했어요. 그림 그리고 글 쓰는 걸 좋아했는데 시골 동네에서 갑자기 공부에 두각을 나타내면서 공부에 전념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전국모의고사를 보게 되었는데, 그다지 노력하지 않아도 반에서 1-2등을 해오던 터라 모의고사 첫 성적을 받고 정말 처참했어요. 수학문제를 풀다가 뒷부분을 포기해 버렸거든요. 첫 성적은 4등급이었어요. 우물 안의 개구리임을 알게 되니 자존감이 바닥을 쳤어요. 모든 행동에 자신이 없었어요.


나 스스로가 자신이 없으니 다른 사람이랑 자꾸 비교하게 되었어요. ‘쟤는 나보다 공부 잘하네’, ‘쟤는 나보다 예쁘네’, ‘쟤는 나보다 노래를 잘하네’ 자꾸만 비교하면서 자존감은 더 바닥이 되었어요. 대학생 초반까지도 자신감이 없었는데 작은 도전을 성공으로 바꾸며 남들에게 향한 에너지를 나에게 향하게 했어요. ‘내가 이걸 잘 해냈구나!’, ‘나는 착한 마음씨를 가졌구나!’, ‘나는 말을 예쁘게 하는구나!’ 내 장점들을 인식하면서 자연스럽게 남들과 비교도 안 하게 됐어요. 그리고 내 장점을 더 보완하고 성장시키려고 노력했고 그것에 기쁨을 느끼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는 이런 과정들을 겪으면서 남들과 비교하는 게 정말 쓸데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보다 공부 잘했던 그 친구는 고등학교 생활동안 저를 질투해서 저를 미워했다고 사과하더라고요. 나보다 예뻐서 내 자존감을 떨어지게 했던 친구도 하나하나 비교하자면 제가 더 나은 부분도 많은 거예요. 저보다 노래를 잘해서 내 자존감을 떨어지게 했던 친구 역시 하나하나 비교하면 제가 더 나은 부분이 많을 거고요. 사실 제가 비교했던 대상은 완벽한 미지의 인간인 거예요.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공부도 잘하고, 예쁘고, 노래도 잘하는 완벽한 허상. 누구나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는데 여러 사람의 장점만을 모아서 현실의 나와 비교한다면 살아남을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지금의 나의 장점을 봐주세요. 그리고 자신의 장점이 보인다면 그걸 지키고 확장시키려는 노력으로도 충분히 멋진 사람이 될 거예요.


제가 아는 언니는 정말 뭐든지 다 잘하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궁금한 건데, 언니가 생각했을 때 '나 이건 정말 못한다' 하는 게 있나요?

베이킹에 큰 흥미는 없었지만 다이어트 때문에 키토베이킹을 도전했던 적이 있었어요. 여러 번 시도했지만 먹을 수 있는 빵을 만든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이래서 키토 베이커리가 빵을 비싸게 파는구나’ 느끼며 수요가 적은 키토빵을 누군가가 만들어준다는 것에 깊은 감사함을 느끼며 사 먹습니다.


언니는 항상 밝고,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에너지가 있어요. 혹시 우울하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는 편인가요?

저는 기본적으로 밝고 긍정적이에요. 긍정적이고 선한 마음으로 선택했던 것들이 제 자신의 행복과도 연결되는 경험이 쌓이면서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그렇지만 살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고, 그로 인해 우울하고 견디기 힘들 때가 있죠.


저는 수다로 풀곤 해요. 정신학적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7년 정도 수명이 긴데 수다로 스트레스를 풀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대요. 실제로 정신의학자들이 믿을 수 있는 사람과 험담을 하라고 권장하기도 하고요. 저는 그걸 적극 사용합니다. 그렇지만 만날 때마다 친구에게 험담을 늘어놓으면 친구에게도 스트레스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히 하려고 해요. 그래서 억울하고 눈물 나는 상황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을 때 진짜 고립되는 마음이 들기도 해요. 그럴 때는 명언을 읽기도 하고, 슬픈 음악이나 슬픈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울기도 하고, 음악을 들으면서 걷기도 합니다. 다양한 방법을 찾아보는데 최근에 도움이 되었던 건 유튜브를 보는 거예요. 정확히는 유튜브 영상에 달린 댓글이에요. ‘삶이 지칠 때’, ‘상사가 괴롭혀서 힘들 때’ 같은 자신의 상황에 맞는 키워드로 영상을 검색해요. 그러면 이런 상황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영상이 나오거든요. 그걸 보면서 댓글을 읽어요. 그러면 나와 비슷한 힘든 시기를 겪거나 겪어낸 분들이 댓글을 달아주는데 그 댓글을 읽으면서 엄청난 위로가 될 때가 있어요. 그러니까 결국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스스로 찾아내는 거죠. 제가 최근에 가장 위로가 되었던 문장은 ‘사과를 떨어트리려고 애쓰지 마라. 썩은 사과는 알아서 떨어진다’ 였어요.


사실 퇴사 직전에는 스트레스가 좀 심한 상황이었어요. 원래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데 그럴 힘이 없었어요. 집에만 있으니 제 자신이 망가지는 게 느껴졌죠. 힘든 상황 속에서 나를 놓아버리기엔 제 인생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어요. 그럴 땐 후줄근한 채로 밖에 나갔어요.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길을 찾아 혼자 걸으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그러면 월요일에 회사 나갈 힘이 조금 생겼거든요. 이렇게 내가 스스로 마음을 잡아보려 해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에는 거기에서 멀어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퇴사를 하게 된 건 저를 위해서였거든요. 나를 우울하게 하는 무언가가 명확하게 있다면 그것에서 멀어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에요.


언니는 다정하면서도, 부당한 일이 생기면 할 말을 정확히 하는 성격이라고 느껴졌어요. 저는 소심해서 불의를 겪어도 쉽게 말을 못 꺼내거든요. 그래서 언니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가 늘 부러웠어요. 당당하고 힘 있는 태도는 원래 갖고 있던 기질인가요?

저는 소심하고 내향적이지만, 정의로운 성향을 타고난 것 같아요. 누군가가 타인에게 부당하게 굴면 가만히 있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저에게 부당하게 구는 건 참았어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고, 타인이 평가하는 나에 대해 민감했거든요. 그런데 그런 부당한 일들이 쌓이면서 나를 위해 내가 바뀌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예의 없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고, 내 행동과 말이 옳다면 나를 비난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을 필요도 없기 때문에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의 비난에 주눅 들 필요도 없음을 알게 되었어요.


하지만 알게 되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다른 문제여서 연습이 필요했어요. 만약에 누군가가 예의 없는 말을 했을 때 되받아치는 것도 용기와 기술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맞받아치기 좋은 문장을 연습했어요. 그게 바로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라고 되묻는 거였죠. 상대방이 나쁜의 도로 저에게 예의 없는 말을 했을 때 다시 한번 말해달라고 하면 웬만한 사람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침묵하더라고요. 그래서 똑같은 실수를 저에게 하지 않고요.


언니는 주변인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직업 말고, 따뜻한 사람이나 유쾌한 사람, 이런 거요.

‘자신의 신념을 가진, 어디서나 당당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제가 가진 신념이 진실해야 하는 것 같아요. 가짜 역할, 가짜 성취, 가짜 자신감이 아니라 나의 역할을 제대로 알고 행하는 사람, 정직한 노력으로 만들어낸 진짜 성취, 그런 것들로부터 온 진짜 자신감이 내재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가끔 주눅 들기도 하는데 그런 순간마저 당당해지고 싶어요.


올해도 이제 다 끝나가요. 언니는 연초에 계획을 세우시는 편인가요? 계획을 세운다면 계획이 어느 정도 지켜졌는지, 계획을 안 세우는 편이라면 왜 안 세우는지 궁금해요!

저는 계획을 안 세워요. 충동적인 성향이 있어서 계획대로 되지 않거든요. 저는 올해 제가 나전칠기를 배울 거라고 계획하지 않았어요. 회사를 그만 둘 계획도 없었고요. 그렇지만 제가 올해 한 일들을 모두 잘한 일이에요. 그때그때 상황에 정직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려고 노력할 뿐이에요. 쉬운 선택이 아니라 어려워도 행복할 최선의 선택.


삶을 풍성하고 다채롭게 꾸미고 있는 언니의 최종 꿈은 무엇인가요?

제가 디자인한 나전칠기 제품이 인종, 국가에 상관없이 사용되고 쓰이는 게 제 목표예요. 그리고 세계에 당당하게 내 디자인을 소개하고 전시회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 디자인에 자신 있어야 하고 자랑스러워야 하기 때문에 제가 지켜야 할 것들도 더 많아져요. 전통 공예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싶은 것과 지키고 싶은 것에 대해 스스로 갈등이 많을 것 같지만 그걸 지혜롭게 풀어내고 싶어요. 그리고 그 결과물이 전통적으로도 현대적으로도 인정받았으면 좋겠어요.


이제 준비된 질문이 끝났어요. 인터뷰를 마치신 소감은 어떤가요?

현재의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저는 제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고, 그렇게 하기 위해 항상 애쓰고 있어요. 때때로 그 결심을 무너지게 하는 순간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습을 지켜낼 이유를 또 하나 찾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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