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 업계 종사자 ‘메탈선녀’와의 인터뷰
나의 친구 메탈선녀는, 닉네임처럼 통통 튀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지녔다. 셰어하우스에 같이 거주하는 기간 동안, 나는 종종 그를 보며 ‘사람이 저렇게 착할 수가 있나’ 생각하곤 했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선뜻 나눠주고, 늘 친절함을 유지했다. 심지어 CG를 업으로 삼아 영화 작업을 하는 그는 남다른 미감을 갖고 있기도 했다. 따뜻한 심성을 가진 영화인, 나는 메탈선녀를 내 마음대로 이렇게 정의한다. 늘 예술의 근처에 머물고 있는 메탈선녀의 깊은 이야기에 나는 한 번 더 마음이 동했다.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만 25살^^ CG 업계에서 일한 지 1년 반 정도 된 메탈선녀입니다.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에요. 호호호.
이제 어느덧 20대 중후반을 달려가고 있어요. 10년 전 생각했던 미래와 지금을 비교해 봤을 때 많이 다른가요? 아니면 계획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나요?
10년 전이면 고등학교 1학년이네요. 저는 제가 계획대로 살 인간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고등학교 1학년 때쯤 대학교 학과를 탐색하는 시간에 본인이 바라는 희망 직업을 발표했었어요. 그때 발표했던 것과 똑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네요. 이렇게 될 줄 몰랐는데, 정말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전공하셨죠. 전공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고, 언니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났어요. 그래서 주로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그 덕에 텔레비전을 아주 많이 봤답니다. 부모님과 언니도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했어요. 한 번은 셋이 같은 영화관에 가서 각자 인셉션, 이끼, 스텝업을 따로 예매해서 ‘혼영’을 한 기억도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근본적으로 영화를 누가, 어떻게 만드는 건지 굉장히 궁금했어요. 영화의 이미지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는데 그게 바로 CG였어요. 그래서 애니메이션, CG 전문 대학교를 목표로 입시를 준비했어요.
대학 생활은 어땠는지도 궁금해요. 저는 철학과랑 국문과라 고등학교 때 공부랑 어느 정도 이어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컴퓨터 그래픽은 정규 교육과정에선 전혀 안 배우잖아요. 대학 공부를 하면서 적성에 맞는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들었나요?
저는 오히려 아예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재밌었어요. 고등학생 때는 이과였고, 입시 미술도 안 했던 터라 책 펼치고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단조로운 생활을 보냈었어요. 그런데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부산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도 찍고, 동기들과 다 같이 조조 영화를 보러 가서 영화에 쓰인 CG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리포트를 제출하는 과제를 했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만 잘하면 성적을 주는 게 진짜 재밌었어요. 하지만 이제 고학번이 되어가면서 세부적인 전공에 대해 깊이 있게 배우는 것도 그랬고, 체력이 달리기도 해서 여러 가지로 고민의 시기도 겪었죠.
꽤 오랫동안 청년 실업 사태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잖아요. 취업 준비를 오래 하는 주변 친구들도 많고요. 대학 졸업 후 취업 준비 기간은 어느 정도였나요?
저희 전공은 포트폴리오 하나만 잘 만들면 졸업 전에도 취업이 돼서 보통 취업 준비 기간은 따로 없어요. 하지만 저는 2년 정도 다사다난하게 ‘제2의 사춘기’를 보냈어요. 대학교 고학년 때 ‘이 길이 맞나’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고, 갑상선 문제로 졸업하자마자 수술을 했어요. 휴학한 적이 없어서 일 년 정도 쉬고 싶었고, 쉬는 동안 네일아트와 메이크업에 빠져서 뒤늦게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보겠다고 일러스트를 켜서 작업물을 만들었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포트폴리오와 평소에 찍었던 사진들을 모아서 화장품 회사랑 네일 회사에 인턴까지 지원했어요. 면접도 가고, 좋은 경험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네일이나 메이크업을 깊이 알지도 못하고 도전했으니 최종에서 떨어졌고, 쇼핑몰 디자이너로 붙긴 했었는데 결국 ‘아니다’ 싶더라고요. 저랑 적성에 안 맞았어요 결국엔 영화 관련 일을 하는 게 내게 맞는 길이구나 생각했죠. 가족들도 좋아했구요.
지방에서 취업 준비를 했잖아요. 지방에서 취업 준비를 할 때 가장 큰 어려움은 뭐였나요?
모든 게 어려웠어요. 면접을 보러 가는 교통비부터 시간들이 정말 많이 허비됐고, 이틀 연이어 면접이 있을 땐 게스트하우스에서 잤어요.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서 면접에 들어가면 지방에 사는데 어떻게 올라와서 살 거냐고 걱정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런 말을 매번 들어서 나름의 계획을 말씀드려도 잘 안 통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게 너무 싫었죠. 저라도 똑같은 스펙을 가졌으면 서울 사는 사람을 뽑았을 것 같아요.
취업을 하고 처음 상경했을 때 저와 같이 셰어하우스에 살았잖아요. 셰어하우스는 어땠나요? 저는 주변 지인들에게 한 번쯤 사는 걸 추천하는 편인데, 메탈선녀 씨의 생각도 궁금해요.
인생에 있어서 잘한 선택 중 하나예요. 고시원은 무섭고, 돈은 없으니 하는 수 없이 선택한 건데 저와 같은 상황의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서로 공감도 되고, 같이 돌아다니고, 밥도 먹으니까 외로운 서울 살이에 도움이 엄청 됐죠. 서울에 처음 올라오는 청년들에게 정말 추천해요. 결론적으로 저는 너무 행복했어요.
저는 메탈선녀 씨가 작업한 작업물들 라인업 보고 감탄했거든요. 엔딩 크레디트에 본인 이름이 올라가면 ’내가 봐도 나 좀 멋있다‘ 할 것 같은데, 어떤가요?
첫 영화가 나왔을 때 ‘난 정말 영화인’이라는 생각에 잠식되어 있었답니다. (앗 tmi를 말하자면 실제로 영화에 참여하면 영화인 데이터에 제 이름이 올라간답니다)
첫 번째로 작업한 영화는 세 번을 봤어요. 편집본을 보고, 기술시사회 때 한 번 보고, 친구와 영화관에 가서 또 봤어요.
그런데 처음으로 작업한 영화를 마친 이후부터는 제가 너무 삐약삐약 신입 같아서 오히려 전 아직 멀었다 생각이 들어요. 저는 초라한 존재, 배울 게 너무 많은 존재라는 걸 일을 할수록 느껴서 이제는 무덤덤해요.
회사에서 가장 보람이 있던 순간과, ’이건 좀 힘들다‘ 하는 순간이 있다면 언젠지 궁금해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어 내가 한 장면인데’ 싶을 때 보람차요. 팀장님과 선배님들이 잘하고 있다면서 칭찬해 줄 때 ‘정말로 내가 잘하고 있는걸까’ 하는 불신이 약간 들지만 (칭찬을 의심하는 편)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 보람을 느껴요.
그리고 진짜 간단한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숏을 작업하다가 막히면 자괴감을 느낍니다. 항.상. 그리고 이건 일보다는 인간관계 이야기인데, 여자 선배님의 19금 대화는 아직까지 힘들어요!! 19금 대화를 시작하려고 하셔서 다급히 퇴근한 적도 있습니다. (선배님, 저 이제 좀 어른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