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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우 Apr 10. 2021

자꾸만 전에 걔가 생각나

비밀; 사랑할 때 감춰야 하는 마음들

한때 세상을 틀에 가둬놓고, 그 안에서만 살 수 있다고 믿기도 했다. 

 작게 만든 그 세계에서 내가 할 일은 여기저기 바코드를 새기는 일이었다. 사람을 만나고, 어떤 가치관을 마주하게 되는 때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에 대한 정보를 바코드로 제작하는 일이었다. 허세 부리는 남자를 가리켜 쟤는 허세로 망할 거라 했고, 남을 자주 속이려는 (친구라 부르기도 멋한)친구는 빠르게 신뢰를 잃고 재산을 잃게 될 거라고 믿었다. 마음대로 재단한 세상에서 나는 용감했고, 행복했다. 하지만 인생은 자꾸만 이상하게 흐르고, 같은 바코드를 놓고 나의 인식과 세상의 인식이 자주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인생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축적된 실패는 넘어설 수 없는 두려움을 만들었다.     

 사랑에 대한 정의는 대게 시도되는 순간 실패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자꾸만 사랑을 규정하고, 틀에 가두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 것은 당신도 어느 순간 사랑이란 감정에 바코드를 붙여놓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지 모른다. 지금 곁에 있는 연인의 결점을 전 남자친구의 장점으에서 찾으려 하고, 그때의 사랑에 더 충실하지 못했던 자신을 후회하기도 한다. 때로는 이전의 사랑이 더 좋았던 건 아닌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이 사랑을 시작하려고만 하면, 어디선가 느아르풍의 전 남자(드라마에서는 주로 전 남편이다.)가 나타나 주인공의 사랑을 마구 흔들기 시작한다. 극의 중반부까지 확고하기만 했던 여자의 마음은 일순간 요동치게 되는데, 이때 시청자들은 답답함을 느낀다.(어머님들은 애정하던 여주인공을 처음으로 바보라는 호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드라마 속에서는 그 장면을 연민이란 감정으로 풀어내지만, 실은 지금 만나는 그 남자에게 어떤 결핍을 느끼기 때문에 흔들리는 것이다.      

 주변에 그런 친구가 있다. 연애를 시작하면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헤어진다. 헤어지고 나서 힘들다고 뱉은 말들은 잘도 까먹고 새로운 연애를 금방 시작하는 유형인데, 얘가 또 사교성이 좋거나 소이 잘 노는 친구가 아니다. 오히려 내성적인 성격에 가깝다. 그래서 이 친구가 어려웠고 궁금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헤어지고 며칠 되지 않던 날, 우리는 시끄러운 카페에서 만났다. 주변의 소란스러움과 달리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완벽한 사랑을 하고 싶어.” 여자는 안정되고 검증된 사랑에도 자주 불안해한다고 했다. 남자인 나를 가리켜, 남자와는 다르다면서 말이다. 

 나는 그녀의 첫마디를 듣고서 더는 대화에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남자가 그렇다는 말은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겠으나, 완벽한 사랑을 원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전제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도대체 완벽한 사랑이 무엇이란 말인가. 사랑은 사람과 사람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덧셈인데, 애초에 사람자체가 완벽할 수 없는 존재이질 않은가. 

 틀려서 사랑할 수 없다는 말은 있어도, 달라서 사랑할 수 없다는 말은 성립조차 될 수 없다. 애초에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군가를 껴안고 베개를 공유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에게 성장을 권하고 싶었다. 성장이란, 더 이상 과거에 미련을 두지 않는 냉철한 상태이며, 그 냉철함으로 같은 상황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인간의 불완전성을 보완한다. 그녀도 불안이 깊어질 때마다 자신이 과거의 연인과 지금의 연인을 비교하게 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어쩌면 다음과 같은 것들만 해왔기 때문에 늘 같은 자리를 맴돌았을 뿐 조금도 성장하지 못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반성, 죄책감을 없애버리려는 이기적인 반성 아닌 반성 같은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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