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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우 Apr 10. 2021

공감되지 않는 이야기, 건성으로 듣고 싶은 마음

비밀; 사랑할 때 감춰야 하는 마음들

그렇게 오래 서서 당신을 이해하려고 내 모든 집중을 동원했지만 가슴 한 가운데 묘한 귀찮음만 남을 뿐이었다. 나는 이 암호화된 마음들을 내 심장으로 해독하기 위해 밤마다 종이에 무언가를 써내려갔지만 결국엔 차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 년에 네 번 바뀌는 계절뿐만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저마다 기다리고 떠나보내는 계절이 다르기도 하다. 나에게 이제 단풍이 펴서 온통 세상이 울긋불긋 한데, 화려한 시절을 지나 당신은 이미 함박눈의 무채색에 흠뻑 젖었는지도 모른다. 대전역에서 서울행 열차를 기다리던 나와 달리 십분 전 창원행 열차를 타고 떠난 당신처럼, 한동안 우리의 대화는 서로가 기다리던 주제가 엇갈리기도 했다. 

 고백하자면 말하는 것을 꽤나 좋아한다. 단, ‘당신이 웃어줄 때’라는 가정이 효력을 유지하는 동안에 말이다. 

 말을 하려는 마음에는 사랑을 받으려는 넓은 ‘바다’가 차지하고 있다. 공간은, 강이 아닌 바다라는 명칭에 걸맞게 드넓기도 해서,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대륙과 대륙의 사이는 쉽사리 가닿을 수 있는 거리가 되질 못한다. 화자와 청자사이의 간극이 그렇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나 책, 갖은 것들을 그와 나누고 싶어 하기 때문에, 당신이 나의 얘기를 건성으로 듣고 있는 것을 눈치 채게 되는 순간은 조금 씁쓸하다. 그럼에도 사랑을 자꾸 옷걸이에 걸어두지만 말고 정리하고, 입고 그리고 껴안아야 한다. 사랑에 관해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없겠으나, 사랑을 한다면 장면과 장면 사이, 연기가 필요하다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면 명연기를 펼치시라. 최선을 다해.

 연인의 제스처를 침묵으로 오래 잠식시켜서는 안 된다. 침묵은 누구의 편도 아니어서 아주 냉정하고, 한여름에도 등이 서늘해질 만큼 차갑다.

 고백하자면, 빵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묻고 싶겠지만, 밀가루만 몸에 들어가면 화학반응이 일어나 자주 탈이 난다. 그런데 빵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것도 직업으로 빵 굽는 일하는 사람을.

 그때부터 나의 연극은 시작이었다. 휴일마다 골목골목으로 예쁘게 빚어진 밀가루를 맛보기 위해 부지런했고, 빵 때문에, 계속해서 바늘로 찔리는 이 느낌. MRI 기계를 통과하면, 몸속에 온통 빵이 그려진 사진이 인화되어 나올 것만 같은 기분. 

 자주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면 또 어떤가. 아랫배 아픈 느낌은 화장실 한번만 들어갔다 나오면 지나갈 고통인데 심각하게 고민할 것도 없다. 

 아무개 신도 따르지 않는 나로서도 사랑의 힘은 조금 믿는 편이다. 일 더하기 일은 여전히 삼이 될 수 없다고 믿는 공학도의 감성은, 여전히 눈에 보이는 것들만 주로 믿으며 산다. 

 빵 빚는 사람을 만나 빵 잘 먹는 연극에 한동안 취했더니, 이제는 하루에 견딜 수 있는 밀가루의 양이 대폭 늘었다. 빵으로 1차, 2차까지는 거뜬하거니와 가끔 3차로 들어간 베이커리에서 달달한 브라우니를 먹는 때, 대범하게 라떼를 시켜 마시기도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만하면 속는 셈치고 한 번 믿어볼만한 것도 사랑이겠다.

 사랑은 ‘다름’에서 봉우리 맺고, ‘인정’으로 꽃이 핀다. 그리하여 사랑하게 되었다는 말은, 당신이 지어놓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 한 일 년 살아보고도 싶다는 뜻이겠다. 당신과 같이. 당신처럼.

 그 속에서 자꾸만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거나, 무관심으로 자신을 증명해내는 일은 사랑이 아니려니. 그래서 그 이기심의 바다는 점점 더 건널 수 없도록 대륙과 대륙 사이에서 끝없이 팽창하다 결국엔 지구 반대편에 두 사람을 데려다 놓고서야 바닷물의 움직임은 멈추게 된다. 그러기에 지독히 앓을 뿐이다.

 이성만 취하려는 사람은, 단 것만 먹으려는 아이처럼 그것으로 인해 성장을 방해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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