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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우 Apr 10. 2021

관리 안 하니?

비밀; 사랑할 때 감춰야 하는 마음들

나는 주름이 싫다. 주름은 피부의 탄력성이 상실되어 느슨해진 상태를 뜻하는데, 정확히는 이 사전적 의미에 부합하는 주름이 싫은 거다. 오므라이스 위에 올릴 계란지단을 부치는 때, 먹음직스럽게 보이기 위해 겉에 일부러 낸 주름은 예외다. 꽃 필 때쯤 여자들이 즐겨 입는 원피스에 난 주름도 그렇다.

 내가 싫어하는 주름은 시간이 만든 주름이다. 본래 빳빳했던 것들이 시간 앞에서 기력을 잃고 생겨나는 미세한 굴곡이 싫은 거다. 대표적으로 이마에 패인 주름이 그렇다. 얼마 전부터 거울 앞에 서 있기가 두려운 이유, 아직 이마에 생길 주름 걱정할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벌써 세 줄이나 패인 건 좀 속상하다. 작년에는 한 줄도 없었는데 이거 참. 주름은 한 번 지면 다시 펴지지 않는 속성 때문에 나는 계속해서 저항해볼 생각이다. 분명 새로 구입한 아이크림이 도와줄거라고 낮에 만난 판촉직원이 그랬다.     

 늙고 싶지 않다. 나는 늙고 주름살 깊게 패인 얼굴을 당신한테 보이고 싶지 않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하지 않던가. 만약 내가 관리되지 않은 채로 당신 앞에 서게 된다면, 당신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엉망인 나를 보면서 자신의 생기를 오해할지도 모른다. 

 짝사랑하는 친구를 옆에서 지켜본 적 있는가. 누군가에 대한 관심정도는 그 사람의 준비성을 보고 판단한다. 호감 있는 사람한테 잘 보이려고 일부러 머리에 실핀을 꼽기도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한 사람의 마음을 얻는 과정은 우주를 얻는 것과도 같아서 노력해도 늘 어딘가 어색하고 부족하다고 느낀다. 이때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 사람의 마음을 얻게 된 후로는 어떤가. 불과 몇 달 지났을 뿐이지만,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한다. 연인이 집에 놀러 온다 해도 더 이상 집을 치우지 않는다. 마시다 만 맥주 캔은 방바닥을 굴러다니고 있고, 환기되지 못한 방 안에는 담배냄새가 찌들어 있다. 한껏 부푼 마음으로 오래 준비하고 나선 크리스마스 데이트에 모자만 대충 뒤집어쓰고 나온 상대방의 모습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전자레인지에 살짝만 데워도 한 맛 더할 것을 그조차 귀찮아 차갑게 식은 음식으로 식탁을 차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성의가 없어도 이 정도일 수가 없는 거다. 둘은 바나나를 많이 닮아, 싱싱했던 노랑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검은 반점으로 뒤덮여서 결국엔 시큼한 냄새를 풍기고 마는 운명에 처한다. 멍든 자국에 더 이상 애정은 없는 거다.       

 몸이 늙으면 당신에 대한 애정마저 함께 낡아서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기력을 잃고 쓰러지진 않을까 걱정스럽다. 사랑이 당연해질까봐 두렵다.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고, 그래서 자주 화내고 토라지면 어떡할지 가끔 걱정스럽기도 하다. 나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일그러진 마음이 깨어나지 않도록 잘 다독이는 일 또한 사랑하는 이에게 주어지는 숙제와 같다.

여전히 일주일에 5일씩 피곤한 몸을 이끌고 헬스장에 가는 이유에는, 내가 늙지 않아서 당신이 늙지 않기를, 아니 늙더라도 당신의 거울인 나를 보며 생기를 유지했으면 싶은 바람이 내게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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