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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우 Apr 10. 2021

우리의 시간이 영원할 거라는 착각

비밀; 사랑할 때 감춰야 하는 마음들

요즘 나는 좀 슬프다. 불 꺼진 집에 들어갈 때마다 외롭고, 누군가 곁을 지켜주는 것만으로 자주 감동 받는 것을 보면 확실히 그렇다. 에세이를 쓰는 작가로서 온당 그래야만 하는 감성이 내게는 별로 없다. 그걸 나도 모르지 않는다. 

 숨을 참는 것만 아니면 웬만한 고통도 잘 견딘다. 잘 울지도 않고, 보고 싶다고 먼저 연락하는 일도 없다. 그럼에도 혼자 있는 시간이 공허하지 않다고 호언장담 했던 때가 불과 몇 개월 전이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세세하게 느끼는 감정들이 확실히 이전과 다르다. 세게 아프고, 오래도록 잔열이 남는다. 뭐가 슬픈지도 모르면서, 자주 슬픈 내가 이상해 언젠가 그 원인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의 의식은 오랫동안 묻어둔 희미한 빛의 과거를 따라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이유 없이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어린 시절 한두 가지 있었다. 붉게 물드는 저녁 하늘과 차안에서 올려다보는 달이 그랬다. 그 중에서도 노을은 유독 나를 아프게 했다. 처음엔 붉어서 아픈 줄 알았다. 아니면 번져서 아프거나. 새파란 하늘이 붉게 물드는 과정은 아이 무릎에서 상처가 번지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 해도 고작 무릎의 상처 따위로 이렇게 슬플 수는 없는 거다. 나는 붉은 하늘을 보며 한참을 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래! 시간이 아픈 거였다. 나는 시간이 아파서 그토록 노을이 아팠던 거다. 해가 저물고 하루가 끝나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다. 내게 낮은 여전히 기회가 남았음을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노을은 시험 종료 10분 전에 울리는 예비 종이다. 이제 그만 됐다고. 이만하면 애썼으니 손에 쥔 것들을 놓으라고 재촉하는 것만 같다.       

 시간은 소중하다. 당신도 모르지 않을 테지만, 살면서 시간에 끝이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졸졸 흘려보낸다. 좋은 감정만 채워도 모자랄 시간에, 자주 화낸다. 가족한테. 연인에게.

 고백하건대 이 글은 내가 나한테 쓰는 반성문이다. 감정 없이 내 일만 묵묵히 했던 시기가 있었다. 사랑도 중요했지만, 항상 돈 버는 일이 먼저였다. 감정이 고갈된 상태에서, 주머니만 채우려는 이기심이 앞서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주 혼자 두었고, 그때마다 변명은 한결같이 똑같았다. “그래도 일은 해야지.” “바쁜 걸 어떡해.” 

 영화 <커런트 워>를 짤막히 소개한다. 이 영화는 인류 최초 전기 개발과 전류 공급을 놓고 토머스 에디슨(베네딕트 컴버배치)과 조지 웨스팅하우스(마이클 섀넌)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이 영화를 굳이 소개하는 이유는, 영화에 나오는 대사 한마디를 인용하기 위해서니 너무 뜬금없다 생각 마시고 천천히 읽어주시라. 

 직렬과 병렬. 둘은 서로 다른 전류를 공급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지만, 어찌됐건 승리는 조지 웨스팅하우스에게도 돌아간다. 그리고 둘은 시카고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전류 박람회에서 재회하게 된다. 토머스 에디슨은 여전히 조지 웨스팅하우스가 자신의 발명을 도둑질 해갔다고 확신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넨다.

 “울타리라는 게 참 독특한 물건 아닙니까? 옆집에서 울타리를 세우면 갑자기 하나가 둘이 되고 우리 집에도 울타리가 생기니. 유일한 문제는 한쪽에서 울타리를 설계하고 직접 만들고 돈까지 대지만, 다른 쪽은 공짜로 울타리를 받는다는 겁니다.”

 “아!” 나는 보던 영화를 잠깐 정지시키고, 한참을 생각에 빠져 있었다. 내가 그랬다. 나는 공짜로 울타리를 받은 사람이었다. 가족도 연인도 친구도, 모두가 힘을 합쳐 내게 울타리를 세워주었던 것이다. 우리의 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내가 그 관계에서 더 이상 이탈하지 않도록, 이탈하더라도 너무 멀리가지 않도록, 본인들의 걱정이 영향을 미치는 곳까지만 이탈하도록 나를 지켜주었던 것이다. 나는 그걸 뜬금없이 토머스 에디슨으로부터 알게 된 것이다. 이거 참.

 이후에 나는 몸이 좋지 않는 시기를 겪었다. 사소한 오해였지만, 당시엔 오해라는 판정을 받기까지 6개월이라는 시간을 꼬박 기다려야 했다. 그때 난생 처음으로, 시간이 영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결국 우린 누군가가 합심해서 만들어준 울타리 속에서 오늘을 사유한다. 그건 당신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우리는 울타리의 노고를 기억해야 한다. 안전지대를 확보함에 있어 가장 큰 공을 세웠을 연인의 땀방울은, 어려움 앞에서 속으로 삼킨 눈물의 양과 비례한다. 그러니 꼭 시간을 내어 연인의 땀방울을 닦아주시라. 고마웠다고. 그 한 마디를 아끼지 않는 것도 사랑이다.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그건 당신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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