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래, 아마추어 같이!”
끝날 거 같지 않은 입학사정대장 검토 업무에 불평을 쏟아내자, 한 동료가 내게 불쑥 말을 던진다. 대학입시 관련 전문가라고 나름 인정받고 있는 내게 감히 ‘아마추어 같다’니. 순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르고 한쪽 다리가 찌르르 저려온다. 그녀의 말 한마디가 싸고 싸 둔 내 인내심을 대담하게 헤치며 나를 끌어내린다.
전례 없는 코로나19 팬데믹은 대입전형 운영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큰 방해물을 자처했다. 학생 선발과 관련된 평가업무만으로도 진이 빠지는데 코로나19 방역까지 더해져 정말 고된 시간이다. 발열체크, 문진표 제작, 방역, 서류 평가장 수시로 환기, 비대면 면접 시스템 구축 및 점검, 유증상자 관리 체계 구축 등등 끝이 없는 군일이 추가되고 추가되었다. 순간순간 깜짝깜짝 놀라고,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자다가도 번쩍번쩍 눈이 떠지곤 한다. 출구 없는 통로를 향해 땀 흘렀다, 으스스 추웠다를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대입전형을 운영하면서 불안한 마음이 수시로 솟아올라온다.
동시에 이왕 하는 거 보통이나 보통 이하로 하기보다는 보통 이상으로 해내고 싶다는 마음도 꿈틀꿈틀거린다. 완벽까지는 아니더라도 잘 해내고 싶다. 생각과는 달리, 업무 중간중간 높은 하늘 꺼지고 낮은 땅 솟구치게 할 만큼 한숨을 연신 쉬어댔다. 충분하지 못하고 질이 떨어지는 수면으로 인해 심신의 피곤이 극에 달했다. 신경이 예민하니 행동과 말투가 하나하나 예리한 칼날 같다. 눈앞이 캄캄하고 정신이 아뜩하기를 수차례. 다행히 세월이 빨라 수시모집 합격자 발표 목전까지 왔다.
입학사정대장 검토가 우선이었기에 문득문득 바스스 일어나는 불쾌한 감정을 억지로 누르며 대장을 일일이 확인하고 검토했다. 어찌어찌해서 마지막 1명까지 검토를 마무리하고 나니 무언중에 웃음이 베어 나온다. 순간의 감정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 체를 쓴 것 같은 눈을 비비며 합격자 웹 테스트를 시작해도 된다는 메일을 담당자에게 보내고 기진맥진한 몸을 일으켰다. 밤 11시 35분. 근 하루 동안 1년은 더 늙은 거 같다. 업무를 마무리했다는 시원함보다 까닭 없이 밀려오는 그 어떤 무언가에 서럽다. 마음 턱 놓고 한 시간만이라도 잠 좀 실컷 자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동료가 했던 말이 내 신경을 본격적으로 빡빡 갉죽거린다.
대학 입학 업무와 관련해서 ‘나는 프로가 아닌가?’ 아니, ‘프로가 될 자격이 없는가?’ ‘당연히 자격이 있기에 지금 이 일을 12년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아무리 이리저리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보지만 연차 외에는 별다른 자격이 없다. 무시로 빽빽 투덜투덜되고, 예기치 못한 허다한 군일을 참고하라는 말이 죽기보다 싫고, 영혼까지 끌어 모아 한 명 한 명 평가하는 것도 예전만큼 쉽지 않다.
전문가, 다시 말해 프로는 그에 따른 실력과 책임을 겸비해야 비로소 자격이 주어진다. 보통 프로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아마추어와는 달리 하기 싫은 일도 끝까지 완벽하게 해내곤 한다.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유연하게 맡은 일을 마무리한다. 어쩌면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는 숙련된 기술과 그 직무를 수행한 기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 마음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잠재력의 크기와 행동의 강도가 결정되고 내가 얻게 될 결과가 판가름 나는 경우가 많음을 새삼 돌아본다.
불면의 밤, 마음 담쏙 담아 예사로이 즐기는 아이스 연유 라테.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며 스스로 나 자신을 대접한다. 손수 내 삶을 근사하게 만드니 그렇게 이상히 흐리던 정신이 상쾌하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맛있게도 아프다. 마음은 몽글몽글하고 이 밤은 다디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