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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봄일춘 Mar 15. 2022

일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나는 브런치(글쓰기 플랫폼의 하나)의 소비자고 생산자다. 브런치 메인화면의 ‘브런치에 담긴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해 보세요. 그리고 다시 꺼내 보세요. 서랍 속 간직하고 있는 글과 감성을’ 문구는 글쓰기에 대한 나의 욕구불만과 질투심을 매번 자극한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글을 보면서 글을 쓰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놀라고 그 필력에 또 한 번 놀란다. 사고의 전환을 불러일으키는 글을 만날 때면 놀라움을 넘어 경외심마저 든다.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다가 서랍 속에 고이 간직해두었던 글과 감성이 밀물처럼 차오르기도 한다.     


업데이트된 글 중, ‘1인 출판으로 책 만들기 《입학사정관의 계절》’ 제목이 눈에 띈다. 나와 같은 직종에 종사했던 이의 이야기다. 나도 직접 겪고 있는 직업이지만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한숨에 글을 읽고 내친김에 책을 구입했다. ‘조금 헐렁하고 냉담하게’ 써 내려간 이야기에 공감과 위안이 갈마든다. 수식 없이 냉담하게 써 내려간 문장 위에서 그녀의 고뇌와 한숨, 그리고 바람을 본다. 꾹꾹 눌러쓴 마음에 내 마음이 사뭇 들까부른다. 문장 하나하나가 이악스러웠던 숱한 날들의 나를 소환한다.     


10년 가까이 일하다 퇴사를 결정한 그녀는 “어느 순간 내가 쏟았던 애정만큼 바닥난 에너지를 다시 채우기 전에는 여기서 내가 해볼 수 있는 것이 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p.8) 고백한다. 그녀가 그랬듯 나도 그랬다. 두 번째 스물하나를 한창 지나고 있던 2018년의 여름이 그랬다. 그해 여름. ‘왜?’라는 질문이 수시로 고개를 들었다.

‘왜 이걸 해야 하지?’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는데, 왜 주말까지 반납해가면서 해야 하는 거지?’

‘막말로 일한 만큼의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이 업무를 맡아야 하지?’

‘의미 있는 일인데 왜 더 이상 의미 있게 느껴지지가 않지?’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이 뭔지 이제는 도대체 모르겠어!’

‘나도 이전에는 열정 가득한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입직 이후 바쁘고 빼곡하게 보내온 나 자신에게 죄책감마저 들었다. 이 직업에 만족하는지, 계속 이 일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고 고민하고 고민했다. 고민 끝에 퇴사를 감행했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성공했고 난 아직이다.      




입학사정관. 이 직업은 어릴 적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악의 없는 질문의 대답에 단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다. 처음으로 이 직업명을 들은 건 첫 직장생활에서 인생 최대의 질문, ‘왜?’를 만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이직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입학사정관이라는 직업을 알게 됐다.   

   

신생 직종을 직업으로 삼을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이직만큼이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낯설고 두려웠다. 불확실이 디볼트였지만 마음에 드는 답을 찾기 위해 몇 날 며칠을 끙끙거렸다.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다른 것들-경제적 보상, 사회적 지위, 안정성 등-보다 조금 앞섰다. 한편으로는 이미 너무 많은 경쟁자가 몰려 있는 직종을 피하고 실제로 이길 수 있는 경주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하다 생각했다. 그렇게 2008년 10월 입학사정관으로 입직했다.          


“봄부터 겨울까지 만나는 수많은 사람과 그 사람을 담은 이야기들을 마주하며 미래를 기대해볼 수 있는 이 일은 어쩌면 참 멋진 일이 아닐까.”(p.167) 일의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이 일을 나는 참 많이 좋아한다. 입학사정관은 꿈의 마음을 읽는 자다. 호기심이 디볼트다. 촘촘한 호기심의 그물에서 다채로운 꿈이 팔딱팔딱한다. 싱싱하고 설레고 벅차며 갑갑하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과정 과정에 박수갈채를 보내는 동시에 평가라는 잣대를 들이밀어야 하는 아이러니한 일. 이 일은 호기심과 더불어 아이러니도 디볼트다.   

   

그럼에도 입학사정관의 일은 학생을 선발하는 일을 넘어, 대입정책과 관련 사회적 이슈에 문제제기를 감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른 일도 그러하겠지만 이 일은 그 무엇보다 소명의식과 책임감이 우선이다. 지금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다.           




봄이 겨울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탈출했다. 정시 추가모집까지 마무리된 지 채 보름도 지나지 않았지만 계절의 변화가 나를 닦달질한다. 봄과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오면 다시 대학 입시다. 신입생이 입학해도 입시는 끝나지 않고 끝나지 않아서 더 가혹하다. 이 일이 적성에 맞아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오늘도 실체도 없는 소명의식과 책임감을 짜내어 너덜너덜하고 새카만 마음에 바른다. 어디서 본 대로 어설프게 따라 하고 실수하고 자책하며 겨우 해내고 있다.     


김보미, 《입학사정관의 계절》, 더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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