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봄일춘 Oct 21. 2021

상상을 선발합니다

 한 학생이 컴퓨터 모니터에 놓였다. 학생의 지난 3년간의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궁금증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학생이 이야기하는 정의로운 사회는 어떤 것일까?’, ‘학생이 생각하는 생존을 위해 더불어 살아가야만 하는 현시대에 필요한 지혜는 무엇일까?’, ‘적극적인 행동을 모색하게 된 학생의 문제의식은 무엇이었을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면 나의 전형적인 ENFP 성격유형이 한몫 단단히 한다.

 질문의 끝에 이 이야기의 주인공과 한 번쯤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 눈에 보이는 자료 너머 학생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일상에서 겪은 경험이라는 땅에서 나름대로 상상의 새싹을 키워낸 학생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눈에 보이는 현상 너머 학생이 상상하는 세상이 궁금해졌다. 궁금증을 해결하고픈 마음에 나는 그의 상상을 읽고 사유하고 상상한다.     



 일정 시간을 투자하여 무언가를 탐색하고 그 탐색의 과정을 통해 정확하게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기대나 희망 또는 꿈을 키워본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상상이다. 상상은 어떠한 행동을 실행에 옮기는 시발점이 되곤 한다. 상상은 실현 가능성을 이미지화하고 그 가능성을 현실화하기 위한 행동의 동인動因이 된다. 이 동인을 알아차려주고 지지하는 것-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이 일련의 과정-자신의 상상을 실현하기 위해 탐구하는 학생을 만나는-은 내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며 대학 입학처에서 근무하는 존재 이유를 일깨워준다.               


 대학 선택과 입학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상상이라고 말한다. 한 인간의 생애커리어 설계 과정에서 대학 진학은 생애 첫 결정의 집합체라 할 수 있다. 이 생애 첫 결정에 상상은 생각보다 깊이 관여한다. 상상을 사로잡은 것이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희망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지? 대학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대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등.     

 상상은 이 일련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끔 한다. 결정하게 한다. 자신의 상상을 사로잡은 대학 또는 학과에 진학한 학생은 이미 멋진 시작을 한 셈이다. 그런 멋진 시작을 위해 기울인 치열했던 몰입의 흔적을 나는 읽고, 사유하고, 상상한다. 이 또한 얼마나 멋진 일인가!      


 하지만 아쉽게도 대학 선택과 입학 과정에서 상상은 늘 뒷전이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현실은 고민하고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평화롭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스트레스와 혼란 속에서 수험생들은 생애 첫 결정을 한다. 나도 그랬다. 시간을 좀 허비하도록 허락해 주고, 실패에 관대하길 바랐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무언가를 하도록 강요당하기에 바빴고, 기대는 수시로 무시되었다. 희망과 기대의 밑그림인 상상은 30년 전에도, 지금도 늘 저만치의 거리에서 머물고 있다.  


 다행히 기존의 탁월함이란 가치보다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상상의 가치가 더 중용되는 요즘이다. 기억보다 승률이 낮은 상상력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다름은 사색을 넘어선 탐색의 결과물이다. 즉, 상상의 결과물이다. 세상은 이미 기존의 제도와 생각을 뛰어넘는 메타 상상력을 더 필요로 하고 있다.   



 컴퓨터 모니터에 놓인 학생의 이야기 너머를 나는 상상한다.     

‘학생은 일상에서 도움이 필요한 상황과 사람을 자주 만났다. 그럴 때면 쉽게 지나치지 못하고 그 언저리를 맴돌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 곧 학생의 일상에서 사라졌다. 문득 학생은 자신의 이러한 행동양식이 궁금해졌다. 그 순간이, 그 사람에게 마음이 쓰이지만 이내 사라지는 이유는 무얼까? 연민했을 뿐, 자신과 관련지어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문제가 학생 자신의 일부가 되면서 적극적인 행동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살아가는데 보편적으로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자 노력했다. 느리지만 함께 가는 사람만 있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이 마음속에 들어섰다. 그리고 상상한다. 더불어 살아가는 자신과 우리를’      

   

 2008년 10월. 대입제도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상상하기 시작한 순간, 나는 입학사정관에 입직했다. 어쩌면 지금 이 대입제도를, 교육 현실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며 한걸음 한걸음 내딛어 왔다. 물론 그렇지 못한 순간의 연속에 좌절이 더 많은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만난 학생의 이야기에 다시 한번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 결국 세상의 모든 것들은 누군가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닌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