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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봄일춘 Oct 22. 2021

실패는 자연스럽고 섹시하다


"최소한 우리가 지나온 길은 바뀌잖아요."  - 한 스쿠버다이버 부부의 말



찌뿌드드한 겨울의 어느 오후. 숯가마 찜질방을 찾았다. 뜨끈하게 지질 생각에 몸은 벌써 숯가마 안이다. 내 간절한 생각에 질투라도 하려는 듯 주차장은 이미 만원이다. ‘이런!’ 피로 좀 풀려고 왔는데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인다. 쓰거운 마음으로 한참을 돌다가, 땔감 쌓아놓은 공간 옆에 차 한 대 겨우 주차할만한 공간을 찾았다.


주차를 하고, 차문을 여는데 수북이 쌓인 땔감 사이로 푸릇푸릇한 것이 눈에 들어온다. ‘뭐지?’ 궁금한 마음에 다가가 들여다본다. 땔감 잡목에 싹이 하나 빼꼼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 잡목은 새 생명이 뿌리내리기엔 뭔가 감때사나워 보였다. ‘생을 다한 잡목에 새 생명이라니!’ 가없는 생명의 위대함 앞에 찜질방에 온 이유도 잊은 채 한참을 들여다봤다.        




찜질방을 다녀오고 나서도 그 조우(遭遇)를 곱씹고 곱씹었다. 그 무렵 즈음, 책방열음 대표가 원고 청탁을 해왔다.      

 “작가님, 책방에서「실패월간」이라는 간행물을 만들어보려고 하는데, 글 좀 써주세요.”

 “제가 그럴만한 깜냥이 될까요?”

 “그럼요, 이미 충분하신걸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하네요. 그런데, 월간지 이름이 실패네요. 주제도 실패와 관련된 내용인가요?”

 “네. 실패보다 더 자연스럽고 섹시한 주제는 없으니까요.”     


한동안 실패월간 취지 등에 대한 책방 대표의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취지가 마음에 들었다. 나를 작가로 불러준 것도 마음에 들었다. 책을 몇 권 출간했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마치 남의 옷을 걸치고 있는 것처럼 여전히 조심스럽고 어색하다. 게다가 나는 여느 작가들처럼 글쓰기에 대한 남다른 사명감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작가라는 호칭에 마음이 들뜬다. 설렌다. 아마도 호칭이 의미하는 바와 내가 오랫동안 그 호칭을 짝사랑해온 연유일터. 작가라고 불러준 대표의 갸륵한 마음과 찜질방에서 움트기 시작한 그 무언가에 힘입어 주제넘게 「실패월간」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실패. 이 단어는 구석지고 어두운 곳에서 나의 경험치에 들러붙어 수시로 마음을 뒤흔든다. 그 작은 요동에 앞이 캄캄하고 불안하다. 속상하다. 그것을 감당해야 할 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 걱정스럽다. 힘들다. 마음이 자꾸 벅차올라 눈물이 날 것 같다. 이 버거운 시간이 어서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않아 화가 난다. 끝날 거 같지 않은 이 상황에 지친다. 무기력하다. 비난과 자책이 담긴 날카로운 시선의 가시권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니 퍽 고통스럽다. 녀석은 멀끔한 눈으로 나를 수시로 쳐다본다. 문득문득 내 신경을 갉죽거린다.     


왜일까? 왜 나는 실패라는 단어에 이토록 신경질적일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명언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돌아서서는 성공에 매달린다. 실패에 가없이 엄격하고 성공에 가없이 집착한다. 부정적인 인식과 평가 때문에 나는 실패를 구석지고 어둑시근한 곳에 처박아두었다. 끄집어내기가 두렵다. 무섭다. 그래서일까? 실패는 점점 음성화 되어 가고 나는 실패를 주저한다.     




「실패월간」간행을 위해 매달 한편씩 실패와 관련된 글을 써냈다. 계획 실패, 대학 실패, 효도 실패, 환경 실패 등등. 주제가 제시될 때마다 처박아두었던 흑역사를 끄집어내야 했다. 글을 쓰는 시간보다 내 과거를 마주하는 시간이 더 길고 괴로웠다. 마주하는 것에 어느 정도 단단해지면, 그다음은 공개적인 글쓰기에 대한 불편함이 밀려왔다. 성공담도 아닌 실패담을 공개적으로 쓴다는 것이 여간 마뜩하지 않다. 시뜻한 마음을 억누르며 한편씩 꾸역꾸역 써냈다.  


“나도 좋은 아빠를 꿈꿨다. 그냥 아빠가 아닌 좋은 아빠를. 세상사가 그렇듯 꿈이 꼭 현실이 되지는 않는 거 같다. 아무리 꿈을 꿔도, 아무리 애를 써도 현실은 늘 불만족스럽다.”


“오랜 세월 그 한자리를 묵묵히 지켜내셨다는 존경과 함께 고단했을 엄마의 생(生)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중략) 내 시계는 늘 바쁘고, 엄마 시계는 늘 빠르다.”




「실패월간」의 지문을 빌려 글을 쓰며, 실패는 지극히 사소하고 익숙한 일임을 새삼 깨달았다. 같은 주제의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공감과 위안도 받았다. 내 실패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힘도 생겼다. ‘실패’ 또는 ‘성공’으로 기록하고, 평가하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실패는 음지에서 양지로 이사를 왔고, 이웃사촌이 됐다. 하여, 실패 경험의 공유를 넘어 실패라는 개념의 파기도 감히 꿈꿔본다.       


나이 40이 넘어, 세상사 성공보다 실패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실패가 많은 인생 실패에 익숙해지기로 했다. 실패에 익숙해지려니 시작에 익숙해져야 했다. 나는 오늘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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