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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봄일춘 Mar 02. 2022

쓰기생활 “루틴이”


문제는 시작이다. 항상 시작이 문제다. 어떤 일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늘 쉽지 않다. 운 좋게 시작을 하더라도 도중에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려면 처음보다 더 힘들다. 처음에 겪었던 어려움을 다시 겪어야 한다는 불편함이 시작을 주저하게 한다. 다이어트가 그렇고, 버킷리스트가 그렇고. 글쓰기가 그렇다.


글쓰기. 동기는 늘 충분한데도 시작이 쉽지 않다. 어렵사리 시작을 하더라도 매일매일 쓰지 않으니 감각을 계속 유지하지가 어렵다. 자주 하면 시작이 수월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이미 잘 알고 있지만 내가 마주하는 현실은 늘 녹록지 않다.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일인데 이상하리만큼 쉽지 않다.


오늘만큼은 노트북 앞에 지긋이 앉아 글을 써야지 하다가도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수시로 나를 책상에서 밀쳐낸다. 갑자기 날아든 지인의 장례식 소식에 조의를 표하러 가야 한다. 오늘따라 아내의 귀가가 늦어져 저녁 준비를 하고, 미술학원으로 딸내미를 픽업하러 가야 된다. 새로 시작한 드라마가 취향저격이라 도저히 본방사수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고, 막 업데이트된 웹툰 내용이 무지무지 궁금하다. 이것저것 산만하게 찝쩍거리다 글의 첫 문장도 쓰지 못하고, ‘내일부터 다시 시작!’을 외친다. 오늘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덤이다.


어떤 날은 영감靈感이 떠오르지 않아서, 어떤 날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아 소심해져서, 어떤 날은 청탁도 없는데 이딴 걸 써서 뭐하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어떤 날은 피곤해서, 어떤 날은 날이 좋아서, 어떤 날은 비가 와서, 그리고 어떤 날은 그냥 쓰지 않는다. 써야 할 이유는 잘 설명 못하겠는데, 쓰지 않는 이유는 끝이 없다.


대부분의 세상 일이 그렇듯 글쓰기도 관심과 지속을 먹고 자란다. 이 관심과 지속을 위해 나는 일부러라도 책방을 찾는다. 책방에 가면 왠지 글이 잘 써질 거 같은 설화를 나는 줄곧 믿고 있다. 그래서일까? 지난 몇 년간 다녀온 책방이 제법 많다. 물론 그 숫자만큼 글을 쓰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이 설화는 오늘도 열일 중이다.


몇 주 전 인스타그램을 통해 집 근처에 「도심산책」이라는 책방이 오픈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매번 원거리로 원정을 가다시피 했는데 마침 근거리에 책방이 생긴다니 여간 반갑지 않았다. 도심산책, 도심에서 살아 있는 책을 만날 수 있는 산책 공간. 책방 이름의 의미가 마음에 든다. 덩달아 감성도 돋는다. 하지만 반가움이 행동으로 옮겨지기까지는 예열-침대에서 현관문까지의 거리를 한 번에 감행할 수 있는 단단한 마음- 과 제반 상황의 뒷받침이 요구된다. 예열은 이미 끝났고, 오픈 날이 마침 단축근무 기간이라 직장동료에게 같이 가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다.

“오늘 칼퇴해서 요기(도심산책)를 가보려고. 오픈 이벤트로 선물도 받고 ㅎㅎ”

“오~ 딱 오늘 오픈이네요!”

“응, 그래서 가보려고. ㅎㅎ 생각 있음 같이 갈려?”

“그럴까요?”

“그럼 3시 땡 하면 고고씽 합시다.”

“넵!”


호기롭게 들어선 책방은 규모가 크지도 작지도 않다. 한눈에 사방을 둘러볼 수 있어 딱 좋다. 책장에 닿는 은은한 조명과 잔잔한 클래식 음악도 감미롭다. 무엇보다 책방지기의 미소가 넉넉했다. 깃들어 글을 쓰기에 안성맞춤이다. 앞으로 종종 와서 뭐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책방을 둘러보는데 《일간 이슬아 수필집》 이 눈에 띈다.

‘이슬아? 아, 요즘 핫한 MZ세대 작가!’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는데 그녀의 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한 터였다.

‘일간? 매일매일 글을 써냈다는 건가?’

‘헉, 매일매일 한 편의 글을 발행하고 그것을 책으로 엮었다니. 대박!’

놀라움에 평일 오후가 나른하고 열정적이다.


이 우연한 조우遭遇는 지난 몇 주 동안 내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갔다. 책에서 본 것은 그녀의 화려함이 아니라 성실함이었다. 그것이 내 안의 무언가를 자꾸 건드렸다.


“자발적으로 책상에 앉아 뭔가를 쓰는 이들. 남의 책들을 참고해가며 자기 문장을 쌓아가는 이들. 도대체 어째서일까. 잘 설명 못하겠는데 나 역시 그랬다.”(p.535) 이슬아 작가의 진솔한 고백. 이 고백은 내 고백이기도 하다. 나도 잘 설명 못하겠는데 책상에 앉아 생각을 공글리고 뭔가를 쓴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지난 2년간 격주로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며 뭐라도 썼다. 안 쓰는 것보다 낫다고 믿으며 무작정 써왔다.


자발적 동기에 의해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고 있지만 늘 모임 시간에 임박해 시 한 편을 겨우겨우 짓는다. 모임 시간이 임박해야 뭐라도 긁적이기 시작하는 게으른 영혼을 매번 꾸짖지만 강도의 세기가 약한지 매번 실패다. 그에 반해 그녀는 어떠한가? 글 솜씨는 말할 것도 없고, 하루하루 한 편의 글을 발행하는 성실함이라니.

‘그녀는 전업 작가니까 매일매일 글을 쓰는 게 당연하지!’

스스로 위로해보지만 충분하지 않다. 불편하고 부럽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만나고 나서, 쓰기생활 “루틴이”에 대한 동경의 마음이 나날이 커져갔다. 어떻게 하면 나도 해낼 수 있을까 답을 찾던 중,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트렌드 코리아 2022》는 루틴이가 되는 3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1. 목표에 나를 꽁꽁 묶기

2. 조력자에게 도장 받기

3. 하루하루에 의미를 부여하며 되돌아보기


1. 목표에 나를 꽁꽁 묶기

긍정적인 행동을 독려하기 위해서는 부정적 행동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 필요한데 이것이 ‘목표에 나를 꽁꽁 묶기’이다. 책에서는 이 ‘자기 묶기’를 실천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매개체가 바로 ‘돈’과 ‘시간’이라고 말한다. 돈과 시간을 미끼로 일상 루틴을 완성할 수 있다니. 이 글을 내게 적용하면 이렇다.

‘《어쩌다 일간 한봄일춘》의 구독료로 1만 원을 받는다. 한 구독자의 말마따나 1만 원의 가치를 우아하게 만들어 보자!’

‘강제적인 동기를 강화하기 위해 한정된 시간을 활용한다. 하루라는 한정된 시간에 한 편의 글을 발행한다. 이 하루는 일과시간, 수면시간, 식사시간, 드라마 시청-죽었다 깨어나도 드라마는 포기할 수 없는 나다- 등을 제외하고 나면 대략 4~5시간이 남는다. 하루에 글 한 편을 완성하는데 내게 주어진 시간은 최대 5시간 정도인 셈이다. 하루 중, 이 시간만큼은 오롯이 글쓰기에 집중하자!’


2. 조력자에게 도장 받기

‘조력자에게 도장 받기’는 루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타인의 힘을 빌려 강제하는 전략이다. 이 말을 내식으로 풀면 이렇다.

‘나는 나를 전적으로 믿지 못한다. 나는 나를 믿는 사람들을 믿는다. 구독료를 내고 내 글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믿는다. “잘할 수 있을까?” 매번 의심하는 나에게 “그럼, 잘할 수 있어!” 말해주는 아내를 믿는다. 그 믿음으로 오늘도 뭐라도 쓰기 위해 책상에 앉는다.’


3. 하루하루에 의미를 부여하며 되돌아보기

마지막으로 루틴의 결과를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으로 재단하지 않고 나의 하루하루에 의미를 부여하는 ‘되돌아보기’다. 이 글을 적용해 보면,

‘나만의 소소한 일상을, 사유를, 상상을 매일매일 하고 뭐라도 쓰는 것에 가치를 두자!’이다.

세상사가 그렇듯 글이 잘 써지는 날도 있고 안 써지는 날도 있기 마련이다. 아마 어떤 날은 몇 줄 쓰지도 못하는 날도 있을 거다. 글의 첫 문장을 고심하다 끝내 시작도 못하는 날도 있을 거다. 글의 마지막 문장을 채우지 못하고 글을 맺음 할 수도 있을 거다. 그래도 괜찮다고 다독거릴 거다. 왜냐하면 분명 꾸준히 글을 쓰고 있으니까.




《루틴의 힘》의 공동 저자인 그레첸 루빈은 좋아하는 일일수록 자주 실천하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인데 이 말은 왠지 불편하다. 아마도 ‘자주’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 때문일 거다. 그럼에도 일상에서의, 쓰기에서의 루틴은 시작을 수월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자연스럽게 부담도 줄어들 거다. 그럴 거라 믿는다.


이전처럼 영감이 찾아오길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영감을 담을 수 있는 ‘루틴’을 만들어 볼일이다. 《어쩌다 일간 한봄일춘》이 쓰기생활 “루틴이”의 시작이고 끝이길 소망한다. 매일매일 뭔가를 읽고 무언가를 쓰다 보면 “딱히 들뜨지도 가라앉지도 않는 정서”(p.526)를 유지하면서 오래 쓸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쓰기생활의 루틴에서 편안함을 발견하고 심신心身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시작도 못 해 본 일처럼 지루한 것도 없다. 오늘도 빤한 일상에 일탈을 꿈꾼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헤엄 출판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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