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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봄일춘 Oct 21. 2021

책상, 나를 나답게 하다


“이 책상 앞에 앉으면 뭐든 더 잘할 거 같아”  

        

몇 해 전, 딸내미 공부방을 꾸며줄 양으로 책상 하나를 구입했다. 딸아이가 최소 대학 진학할 때까지 사용할 수 있는 괜찮은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나와 아내는 몇 날 며칠 온라인 서핑을 했다. 생각보다 책상 종류가 다양했다. 책상의 종류도 종류지만 문제는 ‘괜찮은 책상’의 기준이 나와 아내가 달랐다. 나는 부피가 작은 무난한 일자형 책상을, 아내는 캐비닛이 다리 역할을 하는 편수형 책상을 고집했다. 나는 실용적인 면에서 편수형 책상도 좋지만 너비가 긴 일자형 책상에 2, 3명이 같이 앉아서 사용하면 더 좋지 않으냐고 아내를 설득했다. 사실 새 책상에 내 공간을 만들고 싶은 마음도 컸다.      


여러 날 논의 끝에, 눈의 피로를 최소화할 수 있는 녹색 바탕의 가성비도 좋은 일자형 책상 하나를 구입했다. 며칠간의 힘겨루기를 비웃듯 책상은 하루 만에 배송이 됐다.


매뉴얼에 따라 나는 손수 책상을 조립했다. 설명서의 안내대로 조립하는데도 이상하게도 아귀가 잘 맞지 않았다. 전형적인 문과생의 한계를 드러내며 30여분의 ‘사투’ 끝에 겨우겨우 책상 조립을 마쳤다. 조립에 비하면 배치는 간단했다. 거실의 채광이 가장 좋은 위치에 책상을 놓았다. 책상이 놓이자마자 딸내미는 그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무언가를 끄적거리고, 책을 읽는다. 여간 뿌듯하지 않다. 딸내미 왈, 이 책상 앞에 앉으면 뭐든 더 잘할 거 같다나 뭐래나. ‘그래, 그림이 쓱쓱 그려지고, 책장도 술술 넘어가면 좋겠다. 그래서 자주 이 앞에 앉길’ 나는 속으로 바랐다.                    




그 바람은 여전히 유효하다. 책상이 크고 널찍한 까닭에 30cm 정도의 거리를 두고 딸과 나란히 앉아 저는 저대로 나는 나대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딸내미는 책상 앞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웹툰을 보면서 키득키득 웃기도 하고, 이따금 엎드려 잔다. 그 모습 하나하나를 근거리에서 볼 수 있어 좋다. 사춘기의 딸내미가 곁을 내어주는, 내 손때가 묻은 이 책상이 더없이 마음에 든다.       

    

내게 할당된 책상 위에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마음껏 쌓아둘 수 있어 좋다. 때때로 책상 위에 딸이 읽으면 좋을 법한 책을 올려놓고 딸내미가 읽어주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책상 위에 무심한 척 놓아둔 책을 딸아이가 집어 들고 읽을 때의 감동은 그 어느 것보다 강렬하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길 기대하며 딸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나는 이 책상 앞에 앉아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다. 내 기분을 언짢게 하지 않을 만큼의 딸내미의 곰상스러운 말씨와 고물고물한 행동, 스스로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이 호젓한 공간과 시간을 즐긴다. 때때로 열심히 생각을 공글리고 글을 쓴다. 가만히 몇 번 돌아볼 수 있는 하찮은 순간순간을 담는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SNS에 업로드한다. 이 그럴싸한 일련의 과정이 설렘이 된 지 오래다. 이 설렘은 내 일상에서 어찌할 수 없는 것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나는 SNS의 ‘좋아요’의 숫자에 울고 웃는다. ‘좋아요’ 숫자에 생각을 공글리고,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행복감을 느끼고, 나다움을 찾았다는 간증은 어느새 온대 간데없다. 타인의 인정이, ‘좋아요’의 숫자가 내 만족스러움을, 나다움을 대변하기 시작했다. SNS에서 번뜩이는 영감을 근사하게 표현한 글을 만나면 수시로 질투와 시기의 마음이 샘솟는다. 이 타인과의 비교는 나를 한없이 초라하고, 끝없이 교만하게 만들었다. 살아가는 데 변치 않는 기준이 나 자신이 되어야 하는데 나다움이 충충해졌다.     

     

‘좋아요’에 대한 집착과 타인과의 비교는 나를 나답게 이끌어주었던, 나를 나 그대로 느끼며 살게 했던 글쓰기를 버겁게 했다. 글쓰기를 통해 솔직한 나의 감정을 깨닫고, 그 가운데에서 삶의 활력을 찾고, 기쁨을 만끽했었는데 그러지 못하니 속상하다.          




일일삼성(一日三省)이라고 했던가? 요즘 나는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쌓인 먼지를 쓱쓱 닦아낸다. 일상에서, 글쓰기에서 나 스스로를 돌아본다. 책상 앞에 앉아 나답지 않다고 느끼는 ‘좋아요’에 대한 집착과 비교의 마음을 마주한다. 나답게 산다는 건 내 생각대로, 내 느낌대로 사는 것의 다름 아닐 터.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마음이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다. 나다움은 결국 나 자신이다. 나다움을 잃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며 내 마음을 채우면 그만인 것을 다른 이들이 나를 알아주길 바랐다. ‘좋아요’를 더 많이 받겠다는 마음에 욕심이 생기고, 그 욕심을 이루지 못하니 마음 가운데 노여움이 생기고, 그 노여움이 타인뿐만 아니라 나도 해치고 있었다. 무엇을 하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내 삶을 살고 누리는 게 먼저다. 내 감정을,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써내려 가면 그만이다. 그것만으로 이미 아름답고, 아름답고, 아름답다.         

           



하루도 쉽지 않은 날이 없다. 늘 그러했듯이 우여곡절 끝에, 오늘도 나는 나를 나답게 느끼게 해주는 책상 앞에 앉았다. 이 녀석은 이제 오래 입어 목이 늘어난 니트처럼 편안하다. 그 편안함 위에 노트북이 하나 더해진다. 내 마음이 나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인다. 한글 빈문서에 한 문장 한 문장 내 마음이, 내 생각이 아로새겨진다. 삐뚤삐뚤 그려진 질곡의 경험이 고르게 늘어선다. 그럴싸하다. 보기 좋다. 새 살을 키워내기 위해 커서가 깜빡깜빡 인다. 이 또한 정겹다. 뭉근한 하루가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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