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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약사 Oct 29. 2022

퇴사, 휴식, 그리고 새로운 시작

퇴사 매거진을 마무리하며

작년 12월, 계획에 없던 퇴사를 하게 되었고 올해 1월부터 퇴사 매거진을 만들어 퇴사 후의 일상을 담은 글을 발행해왔다.


직장인들에게 '퇴사'라는 키워드는 언제나 인기가 많고, 요즘은 특히 퇴사 콘텐츠가 주목받고 소비되는 시대라서 그런지 이 매거진의 많은 글들이 다음 포털과 브런치 메인에도 올라갔다. 그래서 더욱 애정이 가는 매거진이라 잘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글을 써본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쉼이었지만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처럼, 퇴사를 한 덕분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긴 휴식을 가질 수 있었다. 마냥 쉬기만 했는가 하면 성격 상 그건 또 아니라서 혼자 조용히 이것저것 했다.


가장 많이 한건 역시 책 읽기와 글쓰기. 블로그도 열심히 키워나갔고 브런치에도 꾸준히 글을 썼다. 그리고 이 콘텐츠들로 카카오뷰도 시작해보았다. 블로그에 애드포스트를 달고 카카오뷰로 수익 정산을 하면서 소소하지만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만드는 즐거운 경험도 했다. 브런치의 글들을 모아 브런치북도 5개나 만들었고 내 글을 좋게 본 출판사와 함께 전자책도 만들었다. 역시 뭐든 꾸준히 하면 새로운 기회가 생긴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동안은 시간이 없어서 못 갔던 여행도 많이 다녀왔다. 부안, 여수, 강릉으로 세 번의 가족여행을 다녀왔고, 엄마와 단 둘이 밀양 여행도 가고,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제주도도 다녀왔다. 정말 행복한 시간들이었고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게다가 엄마와 이모가 반찬가게를 시작하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반찬가게 매니저도 한 달 정도 했다...ㅎㅎ


생각해보니 일은 안 했지만 나름 분주하게 보냈던 9개월이었다. 사실 실업급여가 7개월 동안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처음에는 3~4개월만 쉬다가 다시 일을 하려고 했다. 한 번도 오랫동안 쉬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7개월을 꽉 채워 쉰다는 것은 애초에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쉬다 보니 9개월도 금방이었다. 사람 일은 이렇게 알 수가 없다.




쉬면서 '일'에 대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근무약사도 물론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 자리에 머물고 싶지는 않았다. 새로운 곳에 가서 일해도 별반 차이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계속 그렇게 일하면 몸은 편하겠지만 더 이상의 발전이 없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개국 쪽으로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개국을 하기로 마음먹고 자리를 찾아보았지만 그마저도 쉽지는 않았다. 노력만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고 운도 따라줘야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개국병이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개국은 하고 싶은데 마땅한 자리가 없거나 여건이 되지 않아 개국을 못하는 약사들이 걸린다는 병이다. 누군가는 운 좋게 한두 달 만에 마음에 드는 자리를 찾기도 하지만, 몇 년씩 기다려도 마음에 드는 자리를 못 찾는 사람도 많다.


나는 다행히 개국병 3개월쯤 되었을 때 약국 자리를 찾게 되었고, 9월 30일에 약국을 오픈하여 이제 개국한 지 한 달 정도 되었다.


내게 권고사직이라는 이벤트가 없었다면 이 매거진도 없었을 것이고 아마 개국도 좀 더 늦어졌을 것이다. 언젠가 개국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아무래도 근무약사로 일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개국이 그렇게 절실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라고 권고사직이 아무렇지도 않기야 했을까. 얼마 전 한의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을 때 원장님께서 나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 겉으로는 쿨한 척 하지만 사실 그렇게 쿨한 편은 아닌 것 같다고. 어떤 의미로 한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나는 쿨하려고 노력하지만 사실 마음도 여리고 상처도 잘 받는 편이다. 그래서 처음 퇴사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자의로 직장을 그만둔 적은 있었지만 권고사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에서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그 이야기를 전달받은 방식 역시 배려나 예의가 없었기 때문에 더 그러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한 정도였으니..

 

한 달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퇴사 이야기의 첫 번째 글을 쓴 것도 그래서였다. 조금 마음을 다독일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퇴사와 9개월의 휴식은 나에게 좋은 기회였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일이든 결국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결과도 달라진다는 것을 느낀다. 만약 그때 내가 단순히 기분 나빠하거나 다시 직장을 구하는데만 급급했다면, 지금쯤 아마 전혀 다른 미래가 펼쳐졌을 것이다.

 



사실 퇴사를 하냐 안 하냐 보다 중요한 것은, 직장이 주는 안정감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에 대해 그리고 진짜 자신이 원하는 일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뭔가를 하고 싶다 무조건 퇴사를 하는 것이 답이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직장을 다니며 그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나처럼 원치 않는 퇴사를 한 상황이라면, 내 글을 통해 용기와 위안을 얻고 퇴사가 새로운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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