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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약사 Dec 29. 2021

어느 근무약사의 일기

"약값이 또 올랐나? 왜 이리 비싸노?"


약국에서 일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 말이다. 처음에는 약값 계산이 잘못되었나 하고 깜짝 놀라 다시 일일이 확인하던 나도 이제 '그러려니' 한다. 확인했을 때 정말 계산이 잘못된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잠시만요, 제가 한번 봐드릴게요. 음... 예전에 혈압약만 드실 때는 한 달분이 15000원이었는데 두 달 전부터 고지혈증 약이 추가돼서 이 금액이 맞아요. 저번 달에도 똑같이 타가셨는데 깜박하셨나 보다."


잘못 계산된 게 아님을 증명하려는 방어적인 태도 대신, 여유 있는 태도로 웃으며 차분히 설명해주면 상대 역시 멋쩍게 웃으며 "아, 그랬나?"하고 계산을 한다.


심지어 약값이 오른 지가 1년이 지났는데 1년 전 가격을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다. 본인의 리즈 시절을 기억하듯 약값은 가장 쌀 때만 기억하는 걸까?!




"내가 몇 군데를 지나쳐서 여기까지 오는데~~ 500원 그건 뭐한다고 받노? 고마 안 받으면 되지!"


병원이나 마트에서는 10원 단위도 두말 않고 계산하는 분들도 약국에만 오면 흥정을 하신다. 


물론 이런 현상이 그분들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약값은 깎을 수 있다'는 생각을 만들어 준 이전의 경험들이 쌓인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은 하지만, 일하는 입장에서 매번 돈 문제로 실랑이하는 상황이 유쾌하지는 않다. 

 

"저기서는 약값 천 원 받던데 왜 여기는 이천 원이나 받아? 내가 멀리서 처방전 갖고 왔는데 싸게 해 줘야지."


"비타민d 이거 시내 나가서 사면 싼데, 내가 안다고 일부러 여기 왔어. 그러니까 천 원만 빼줘."

천 원 싸게 산다고 살림에 큰 보탬이 되는 것도 아닐 텐데.. 하나도 안 깎고 사면 손해 보는 기분인 걸까? 매번 큰돈도 아닌 작은 돈으로 옥신각신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똑같은 건데 여기는 왜 이렇게 비싸? 얼마 전에 우리 동네에서 이것보다 싸게 샀는데."

똑같은 과자라도 마트마다 가격이 다를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그냥 '여기가 더 싼가 보다'하고 싼 곳에서 사지 가격이 왜 다르냐고 시비하진 않는데 유독 약국에서는 가격 시비가 많다. 


알고 보면 약국 역시 똑같다. 어느 정도 '적정 가격'이라는 것이 형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약값은 고정된 금액이 아니라 약국에서 사입가에 근거해 책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약국마다 다를 수 있다. 특히 광고 제품의 경우에는 제약회사에서 행사를 할 때 대량 주문하면 매입단가가 낮으니 싸게 팔 수도 있는 것이다. 


사고 안 사고는 소비자의 자유이니 상관없다. 비싸서 사기 싫으면 그냥 안 사면 되는데 왜 비싸다고 불평하며 깎아달라고 하는 걸까?




물론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약값이 비싸다고 나에게 따지거나 뭐라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안다. 다만 나이가 들어서 수입은 없는데, 몸은 아프고 약값은 많이 드니 일종의 하소연을 하는 것임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하지만 모든 재화와 서비스에는 그에 합당한 가격이 책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당장 500원, 1000원 깎아주는 것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건강한 약국 문화를 위해서는 그러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기에, 손님들과 옥신각신 실랑이를 하며 좋게 해결하고자 노력한다. 


무조건 싸게 산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가치가 있다면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올바른 소비다.  

 


-약값 시비로 힘든 어느 근무약사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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