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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약사 Nov 21. 2021

일의 기쁨과 슬픔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약사라는 직업도 나름의 고충과 힘든 점이 있다. 약사들마다 다르게 느끼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가 가장 큰 것 같다.


몸이 힘든 거야 쉬면 괜찮아지지만 마음의 상처는 다스리는 방법을 깨닫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지금도 간간이 상처를 받지만 새내기 약사 시절에 비하면 많이 덤덤해진 편이다.


그중에서도 약사의 전문성을 거절당할 때, 그저 약 하나 팔려는 장사꾼 취급을 받을 때가 가장 속상하다.






배를 움켜쥐고 들어오는 한 여자분이 말한다.


"약 하나만 주세요."

"네. 어디가 불편하세요?"


"어제부터 속도 좀 메스껍고 배도 아프면서 설사도 해요. 오늘도 화장실을 세 번이나 갔어요."

"뭐 특별히 드셨던 게 있으세요? 열은 없으시고요?"


"열은 없는데.. 어제 저녁에 회랑 소주를 좀 먹었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괜찮다는데 저만 그러네요."

"아 그러셨구나. 그럼 약을 좀 드릴 테니까 드셔 보세요. 이 약은 빈속에 드셔도 괜찮은 약이고 통에 든 알약 2알에 이거 1포씩 같이 드시면 돼요. 대신에 당분간 음식을 좀 조심하시는 게 좋아요. 익히지 않은 음식은 피하시고 과일도 지금은 안 드시는 게 나아요. 맵고 짠 음식, 기름진 음식, 밀가루 음식, 커피나 유제품도 드시지 마시고요. 되도록이면 그냥 죽 드시고 물도 따뜻한 물로 마시는 게 좋아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잠시 약을 살펴보더니 하는 말.


"이런 거 말고요. 그냥 훼스탈 하나 주세요."


힘이 쭉 빠진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훼스탈을 달라고 말하지.. 그랬다면 서로 시간 절약, 에너지 절약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본인한테 잘 맞는 약을 기억해두었다가 같은 증상이 생겼을 때 같은 약을 지명 구매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증상과 맞는 약도 아닌데 단순히 광고하는 제품이라서, 또는 남들이 좋다고 했다는 이유로 그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글쎄, 꼭 그걸 복용해야겠다고 고집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빠른 회복을 위해서 그렇게 현명한 선택은 아니다. (배도 아프고 설사를 하는데 훼스탈만 복용한다고 낫지는 않을 거라는 말이다)


아무리 셀프메디케이션 시대라고는 하지만 증상에 따른 올바른 약 선택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약은 약사에게!)


이런 사람들은 약사를 그저 약을 팔아 돈을 벌려고 하는 '장사꾼'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듯하다. 그래서 좋은 약이 아닌 그저 마진이 많이 남는 약을 권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마도 '광고하는 약=좋은 약'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이 박여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런 경우엔 그냥 '그러려니'하고 넘긴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듯, 약국에 오는 모든 사람들이 내 마음 같을 수는 없다. 최대한 덤덤하게 멀리 떨어져서 남의 일 보듯 생각하는 것이 상처를 덜 받는 방법이다.




이렇게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람이지만 반대로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것도 사람이다.


한 달에 한 번씩 혈압약을 처방받아 드시는 70대 할아버지가 약을 받더니 약장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영양제를 하나 먹을까 하는데, 그 뭐냐 아로나민을 먹을까?"

"왜요 어르신, 요새 좀 피곤하세요?"


"아니 뭐 하는 일도 없는데 피곤하긴, 그건 아니고 요새 밤에 잘 때 자꾸 종아리에 쥐가 나고 손발도 저린 것 같고 그래서."

"아 그러셨구나. 혈액순환이 안되시나 봐요. 그 증상에는 아로나민보다는 마그네슘이 들어있는 혈액순환제를 드시는 게 좋아요. 쥐가 안 나게 근육도 풀어주고 저린 증상에도 도움이 될 거예요. 이걸로 아침저녁으로 1알씩 드셔 보세요."


"아 그래? 약사가 그렇다면 그게 좋겠지. 그럼 그걸로 한통 줘봐."


다음 달에 혈압약을 타러 온 할아버지는 한결 밝아진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그때 그 약 먹고 거짓말처럼 쥐가 안나. 그래서 잠도 푹 자고. 좋은 약 줘서 고마워!"


내가 증상에 맞춰 권해준 약을 믿고 사가서, 복용 후에 효과를 봤다며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보람을 느낀다. 내가 가진 능력과 지식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약사로서 자긍심도 가지게 된다. 이럴 때는 '약사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그러니 약이 효과가 있고 좋았다면 약국에 가서 꼭 말해주세요. 약사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ㅎㅎ)


 



여전히 가끔 상처를 받기도 하고 회의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약사라는 내 직업이 참 좋다.


몸이 아프고 힘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좋고, 단골손님들과 인간적인 유대감을 쌓아가며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좋다. 그리고 상처를 주는 사람들보다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이 훨씬 많기도 하다.


그래서 약에 대해 꾸준히 배우고 공부해서 전문성을 높이는 동시에,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 약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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