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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약사 Feb 16. 2022

이별 후에 필요한 것

모든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질 수는 없기에 연애의 끝에는 반드시 이별이 있다. 


이별은 두 남녀가 서로 맞지 않음을 깨닫고 상호 간의 합의를 통해 이루어질 수도 있고, 마음이 변한 어느 한쪽의 선언으로 느닷없이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 둘 중 어느 쪽이든, 그동안 매일같이 일상을 공유하며 가장 가까운 관계로 지내던 사람을 잃게 된다는 점에서 이별에는 상실의 아픔이 따라온다.



가슴 설레는 연애를 시작하며 마지막을 미리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냥 좋을 거라 믿었던 관계도 하루아침에 모래성이 무너지듯 허무하게 끝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별 후유증을 심하게 앓은 사람들은 더 이상 새로운 연애를 하기 싫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는 마치 죽는 것이 두려워 살 수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이별 후에는 다양한 형태의 반응들이 있다.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외치는 분노, 

'연애가 다 그렇지 뭐'라는 식의 한탄,

'다시는 누구도 만나지 않겠다'는 어리석은 다짐,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 거야' 되뇌며 대책 없는 만남을 반복하는 것.


하지만 이런 반응들은 모두 이별 후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별해도 삶은 이어지고, 이별 후에도 우리는 잘 살아야만 한다. 이별이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차라리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발전적인 방향으로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20대 시절, 나의 첫 연애는 롱디였다. 그 당시 남자 친구는 KTX를 타도 2시간이 넘게 걸리는 도시에 살았다. 나와 남자 친구 모두 차도 없고 주머니 사정도 가벼운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자주 볼 수 없었고 기념일도 함께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매일같이 전화와 문자로 연락은 했지만, 함께하지 못하는데서 쌓이는 사소한 불만들 때문에 점점 다툼이 늘어났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의 의미를 경험을 통해 느끼던 때였다. 


새내기 대학생이었던 나는 매일 만나며 일상을 공유하는 과 CC들이 부러웠다. 결국 어느 날 남자 친구와 통화를 하다 사소한 일로 크게 다투었고, 서로 먼저 연락을 하지 않다가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첫 연애였고 첫 이별이었기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소한 안부를 묻고 일상의 이야기를 주고받던 사람이 연기처럼 사라졌고, 온종일 바쁘게 울리던 휴대폰 역시 조용해졌다.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기도 했다.



집중할 대상이 없어지고 주말에 만날 사람이 없으니 내 삶에 채울 수 없는 공백이 생긴 느낌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일부러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서 여기저기 놀러도 가고, 동아리 활동도 하며 바쁘게 살아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쉽게 괜찮아지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로부터 소개팅 제안을 받았다.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힘들었던 시기라 잠시 망설였지만, 처음 하는 소개팅이고 궁금한 마음도 있어서 수락하게 되었다. 소개팅 상대는 같은 학교는 아니지만 지하철로 30분 거리의 대학에 다니는 사람이었다. 전공이 같아서 말도 잘 통했고, 어른스럽게 나를 챙겨주는 모습을 보며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세 번 정도 만나고 그로부터 사귀자는 고백을 받았다. 사실 나에게 그는 친절한 과 선배 같은 느낌이었다. 이성으로서의 매력은 크게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별 후 나를 괴롭히던 공허감을 달래고 싶었고, 보란 듯이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며 잘 지내고 싶었다. 그리고 롱디라서 외로웠던 이전 연애의 시간들을, 가까이 있는 이 사람을 통해 보상받고 싶다는 다소 이기적인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다.


평일 저녁 수업이 끝난 후 만나서 함께 밥을 먹고 카페를 갔고, 주말이면 근처 여행지를 찾아다녔다. 그동안 내가 부러워하던 다른 커플들같이 일상적인 데이트를 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유행하던 싸이월드에 데이트하며 찍은 사진들을 보란 듯이 올렸고, 아마도 궁금한 마음에 몰래 훔쳐봤을 전 남자 친구로부터 "자니?"라는 문자도 받았다. 물론 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이별 후폭풍을 맞이한 듯한 그로부터 연락이 계속 왔다.


구구절절한 전 남자 친구의 문자를 보며 왠지 내가 이긴 기분이라 통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뭔가 빠진듯한 기분이었다. 새 남자 친구와의 관계는 좋았고 함께 보내는 시간도 즐거웠지만, 집에 돌아와 혼자 있을 때면 또다시 공허했다. 혼자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될지 몰랐고 혼자서 잘 지내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나를 잃어가는 느낌이었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주인공 리즈는 남편과의 이혼으로 공허감에 빠져있던 중,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연하의 배우 데이빗과 사귄다.


리즈와 데이빗


하지만 리즈의 속마음은 '그를 사랑한 건 아니었다. 도피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리즈의 독백처럼 도피성 연애의 결말은 아름답지 않았다. '외줄 타기가 무섭다고 뛰어내려 물컵에 코만 박은 것과 같다. 그렇게 날 잃었다.'


이별 후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 시작한 연애, 그때의 내가 딱 그랬다.




이별 후에 필요한 건 스스로를 돌아보고 혼자서도 단단하게 설 수 있도록 자신을 온전하게 채우는 시간이다.


섣부르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 허전한 빈자리와 공허한 마음을 채우려고 하지 말자. 이별로 생긴 내 안의 공백은 오직 나의 힘으로 채워야만 한다.


그래서 하나의 연애가 끝난 후에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이번 연애에서 문제는 무엇이었는지, 스스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연애를 하다 보면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나의 문제점을 발견할 때도 있다. 누군가와 깊은 관계가 되고 갈등과 다툼을 겪으면서, 그 과정에서 나도 몰랐던 내 모습, 때로는 밑바닥이라고 느껴지는 부끄러운 모습까지 마주하게 된다.


따라서 이별을 통해 한 단계 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문제가 있다면 고치고 다음번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픈 상처겠지만 해부하듯 하나하나 들춰보고, 그 속에서 깨달은 것들을 건져 올린 후 예쁘게 봉합하는 것이다. 물론 이 작업은 고통을 수반한다. 하지만 힘들어도 그 시간들을 견뎌내야 더 단단해질 수 있다. 만약 아프다는 이유로 이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상처는 제대로 봉합되지 않을 것이고 이는 다음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스스로 더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어야 비로소 다음 연애를 시작할 수 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면서 발전해.
우린 서로를 떠나야 변할 수 있어.
두렵지만 한 번은 무너져야 해.



영화 속 리즈의 대사다.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해서는 아프고 힘들겠지만 기존의 것이 파괴되는 것을 바라봐야 한다. 모든 것은 파괴를 통해 새로 지어진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새로운 문이 열린다는 것을 기억하자.


이 사실을 깨닫는다면 이별이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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