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대한민국에서는 괜찮은 분야인의 제조업체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공개채용으로 입사하여 동기들도 있고 실전 업무 배치 전 2개월가량 집체교육도 하였습니다.
교육 후 첫 배치받은 날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국내에만 2천여 명 정도 되었고, 제가 속한 공장에 1천여 명 근무했던 곳이라 30여 명의 신입사원들이 배치받으러 회사에 들어가니 무슨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지원하고 배치받은 부서는 노경지원팀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솔직히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도 몰랐고 패기 하나로 입사했기에 뭐 하나 잘할 수 있는 게 없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3차 최종 면접이 생각이 나네요.
높으신 분들께서 앉아있고 저 포함 최종 3명이 있는데 질문이 이거였습니다.
'노사 업무를 하려면 주량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할 텐데 주량이 어떻게 되십니까'
전 세 번째였고 첫 번째 지원자가 대답합니다. '저는 소주 1병 이상 충분히 마실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지원자가 곧이어 대답합니다. '저는 2~3병 마실 수 있습니다'
제 차례입니다.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전 3병도 못 마시는데.. 에라 모르겠다.
'전 몇 병을 마시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 얼마를 마시던 다음날 멀쩡합니다'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 모르겠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면접관 모두가 웃으며 박수를 치더군요. 그때 전 결과를 통보받지 않아도 합격을 예감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부서 내에는 저를 포함하여 8명이 근무했는데 제가 뭘 하나 할 때마다 다 저를 쳐다보는 것 같고, 뭐가 뭔지도 하나도 모르는 아주 불편한 상황이 한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솔직히 당시에 무슨 일들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매일 늦게 갔던 것 같습니다. 선배 한 명이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어차피 결혼도 안 했고 기숙사 갈 건데 그냥 사무실에서 일이나 하자, 아니면 나랑 술이나 마시자'
지금 생각하면 무슨 개똥 같은 말인지 모르지만 그때는 그 말을 듣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제 기억에 대략 4개월 정도는 일주일 7일 중 평균 6일은 근무했고(7일 근무한 날도 있다는..) 그 6일 중 3일은 최소 저녁 9시 이후에 퇴근했으며, 나머지 3일은 '회식'이라는 명목으로 저녁과 술을 먹으러 다녔습니다.
그런 날이면 기숙사에 빨라야 11시에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기숙사는 2인 1실이었는데 오죽했으면 매일 늦은 퇴근시간으로 인하여 룸메이트한테 너무 피해를 주어 2달 만에 주변 원룸으로 이사를 했을 정도였습니다.
제 주요 업무는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항상 현장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다 보니 '아 이게 대한민국 제조업 체구나' 싶었습니다.
이런 생활이 지속되니 건강이 안 좋아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원래 술을 좋아했지만 내가 좋아서 마시는 것이 아닌 술은 더 이상 제가 좋아하는 그것이 아니었으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출근시간 1시간 전 출근했던 의지는 점점 약해졌습니다.
올라간 월급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갔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만큼 주변사람들에게는 조금씩 인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뛰어난 업무성과를 낸 것도 아니었습니다. 미생의 안영이만큼 스마트하게 업무를 처리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았어도, 무조건 YES맨이 되지 않았어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조금씩 인지도를 쌓아 가는 것, 조금씩 회사에 대해 알아가는 것, 조금씩 인간관계에 대해 눈을 뜨는 것, 서투르지만 천천히 나아가는 것.
신입사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