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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초순보기 Feb 07. 2023

어쩌다 보니 공부하는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 할머니라고 해서 다 공부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2주일 전 손녀딸이 나에게 한 말이다. 공부하는 할머니라는 말에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으쓱해졌다.


2022년 10월부터 손주 등교를 봐주고 있다. 사회에서 말하는 등교 도우미를 하고 있는 셈이다. 등교 준비라고 해봐야 특별할 것도 없다. 6시에 출근하는 딸을 대신하여, 아침마다 밥을 챙겨 먹이고, 등교하는 아이에게 잘 다녀오라는 말을 하고, 낮시간을 자유롭게 보내면 되는 것이다.


아침 등교시간에 엄마가 없기 때문에 어린이집을 다닐 때부터 아이가 스스로 일어나 준비하도록 철저한 교육을 시킨 덕분에 방학중이라도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다.

 

방학이 가까워 지자  방학을 하면 학교를 가지 않고, 학원도 가지 않았던 과거의 방학이 생각나 "  방학하면 좋겠네 ~~"  하는 말을 했다가, 오히려 안 하는 것이 나은 말이 되고 말았다


 " 방학을 해도 노는 시간은 하나도 없고, 특강을 하고, 더  힘들단 말이에요"울상을 지으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짜증을 내면서 울었다.  


방금 잠에서 깨어나 반사되는 조명빛에 눈을 반쯤 가린 동생이 " 친구들 중에는 돌봄 안 가는 애들도 있어요. 게다가 학원도 안 다니는 애들도 있는데..."


아이의 방학에 놀이공원, 박물관, 영화관 등에 같이 가려고 한 나의 계획도 물거품이 된것은 물론  아이들에게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고통의 말이었다.


하루는 진눈깨비가 내려 집에서, 여행지에서 느낀 점을 정리하며, 궁금했던 점을 책을 찾아가며 밑줄을 치고 있었다.  


한창 밑줄을 긋고 있다가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뿔싸.


현관문 여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큰아이가 기척도 없이 문 앞에 와 서 있었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서다가 손에 들은 형광펜을 놓치고 말았다. 떨어진 형광펜이 또르르 굴러 아이의 발밑에 가 멈추었다.


" 미안해, 할머니가 우리 보배가 문 앞까지 오는데도 몰랐어. 정말 미안해 "


" 아니 괜찮아요. 할머니 공부하시느라 그런 거잖아요" 


" 할머니가 공부를 한다고 해도 그렇지, 할머니가 가장 사랑하는 보배가 오는 것도 모르고... 내일부터는  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기다릴게"


" 그런데요. 우리 할머니는 대단하신 것 같아요. 할머니라고 다 공부하는 것은 아닌데, 할머니는 공부하시니까요."


" 그런 말 해주어서 고마워!!  보배는 학교공부 어때? 힘들지 않아?"

" 예. 힘들어요. 방학이라 놀고 싶은데 엄마가 안된데요."


동이 트기 전 직장을 가기 위해 집을 나가 저녁 6이 되어야 집으로 돌아오는 딸은 돌봄과 학원을 한 틈의 오차도 없이 퇴근시간까지 돌린다.


돌봐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딸의 입장과  엄마가 짜 놓은 계획에 따라 하루 종일 뺑뺑이를 돌며 움직여야 하는 손주의 입장을 알고 있는 머릿속은 엄마의 입장을 어떻게 전달해야 좋을지  단어찾기 게임이 시작 되고 있었다.


" 음, 학교 공부는 어른이 될 때까지 해야 하는 공부거든, 그렇기 때문에 하기 싫고, 재미가 없어. 그렇지만 공부는 어른이 되면, 어른으로 살아가는데 바탕이 되는 거야. 보배 기본이라는 말 알지? 아!! 기초라는 말이다. 하나하나 쌓아가는 거"


" 할머니는 학교 다닐때 했던  공부가 기초가 되어서, 지금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되니까 더 재미있어진 거야.  이다음에 보배가 스무 살이 되고, 어른이 되면, 지금 하는 공부가 도움이 될 거야. 그러니까 지금 공부가 재미있다 생각해 봐"  


그래도 공부는 힘들다며, 메고 들어온 가방을 학원 가방으로 바꾸어 메고 현관문을 나섰다.






아이의 등교를 봐주는 일은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까지 이고, 오후에는 속초로 내려간다.  다시 일요일 6시에 서울행 버스에 오른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모닝페이지를 쓰고 독서 한 시간을 한다. 저녁에는 그날 방문한 곳을 블로그에 기록을 하고, 간단하게 감사일기를 남긴다.


물론 이 모습만이 나의 모습은 아니다. 노트북을 통해 유튜브를 보고, 쇼핑을 하기도 하고, 책만 펴놓기도 하며, 아이가 집으로 오는 시간을 알람을 맞추고 놓고 낮잠을 자기도 하며, 하루종일 돌아다니다가 아이보다 먼저 집에 와서는  집에 있었던 것처럼 할때도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3개월 동안 지켜본 손녀에게는  공부하는 할머니로 비친 모양이다.  정말 어쩌다 보니 공부하는 할머니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공부하는 할머니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젠 정말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주변사람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하며, 아이들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어른을 모방한다고 한다.


아이들의 모방은 부모와 가족 이외 학교, 학교밖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미디어를 통한, 사회적 자극이 심하다. 이런 시국에서 나라도 아이에게 좋은 모범이 되고 싶다.


그러려면 나는 계속 공부하는 할머니가 되어야 한다. 제 부모보다 나하고 있는 시간이 더 많은 아이에게 좋은 모범이 되어 주고 싶다. 이것이 손주를 사랑하는 할머니의 마음이다.



#공부하는할머니 #할머니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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