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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초순보기 Oct 17. 2022

할머니의 자격증

" 아, 싫단 말이에요!!" 이 말은 손주 녀석이 나한테 하는 말이다.  거부하는 몸짓 또한  완강하다.  내가 잘할 수 있다는데도 이 녀석  할머니가 해주는 것은 싫다고 한다.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할머니가 뭘 할 수 있겠어하고 생각하는 것 같아 아무 말도 못 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데, " 아 정말!! 할머니는 자격증도 없잖아요!!" 한다. 옳다구나. 잘되었다. 


자격증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나는 어깨가 으쓱해지며, 비장의  말폭탄을  날렸다.


" 할머니 자격증 있어. 할머니 자격증이 몇 개인 줄 알아? " " 거짓말 마요. " 있대도" "정말요? 그럼 보여주세요" 한다. 참...


지금 이 실랑이는 손주 녀석 앞머리가 길어 눈을 찌르기 일보직전이어서, 내가 깎아 주겠다고 하자, 손주 녀석이 할머니한테는 자르지 않겠다며, 자격증까지 들먹이며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집에 있다고 하자, 봐야 믿을 수 있다며, 지금 당장은 미용실 가고, 자격증을 보여주면 그때 머리를 깎겠다고 한다.  이 녀석 좀 보게나. 


머리 손질하는 것이 전문가라야 만 가능한 것은 맞지만, 할머니는 무조건 아무것도 못할 것이고 생각하는지, 그것도 아니면, 자격증으로 캐리어를 인정하는 시대라는 것을 아이가 알아서 그러는지.. 알 수 없지만 마음은 씁쓸하고, 야속하다.



앞머리 자르는 것이 뭐 대수라고. 아이들 키울 때는 앞머리도 잘라주고, 손질도 다 해주었는데,  자격증을 내놓으라니..


미용사 자격증을 따고, 미용실에서 잠깐 근무를 할 때 생각이 났다. 당시 미용실에 젊은 남성이 머리를 깎으러 왔다. 머리를 다 깎고, 샴푸까지 한 후 마무리 정리까지 하고 일이 터졌다. 


본인이 생각한 데로 머리가 안 나왔다며, 원위치시켜 놓으라고 생떼를 부리며, 미용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났다. 아무리 설득과 이해를 부탁해도 막무가내였다.


무서워서 부들부들 떨며, 아무 말도 못 하고 죄인인 양 풀이 죽어 있는데, 화가 난 손님이 원위치를 해 놓지 않으면, 내 머리를 자기 머리 모양처럼 똑 같이 만들어  놓겠다며, 가위 달라는 것이었다. 


어쩔 줄 모르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때 선배 미용사가 " 가위 줄 테니, 자격증 있으면 자르라, 이 사람은 자격증이 있어 잘랐다. 당신도 자격증 있으면 잘라라!!" 하며 가위를 건넸다.  


그러자 손님은 한마디 더 욕을 하더니 미용실을 나가 버렸다.  그때 자격증의 위력을 느끼기는 했다. 


그런데 다시 자격증의 위력을 보여 줘야 할 타임이 돌아온 것이다.


 자격증을 보여 주고,, 이 녀석 꼼짝 못 하고, 앞머리를 맡기게 만들고 말 테다 하는 오기로 집으로 돌아와 미용사 자격증이 있을만한 곳을 다 뒤지기 시작했다.


1992년도에 취업을 하겠다고 따놓고 그대로 장롱 속에 넣어 버린 미용사 자격증... 


그런데 아무리 뒤져도 나오질 않는다. 하기야 장롱 속에 들어간 세월이 언제인데... 그동안 이사도 많이 했고, 사용하지 않는 자격증이니 소중히 다룰 필요도 없었던 자격증이었다. 


책상 서랍, 책장을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는다. 큰일이다. 손주들에게 보여주지 못하면 거짓말쟁이 할머니가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할 일이 될 테고, 앞으로 아이들 머리를 깎아 줄 수도 없다.


 어디에 놔두었지.. 하루 종일 집안을 뒤지고 뒤져도 나오지 않는다. 그럼 재발급받아야 하나. 당장 다음 주 집에 오는데, 어떻게 증명을 한다...


궁하면 통하는 게 있다. 몇 년 전 포털사이트에 등록해 놓은 기억이 떠올랐다. 조회해 보니 아!!  나온다. 나온다.!! 회심이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 나도 자격증 있는 할머니야!!" 큰소리 칠 날을 기다렸고, 드디어 아이의 앞머리를 깎았다. 손주 녀석이 할머니 자격증 진짜로 있다며, 미심쩍어하는 누나에게 할머니에게 머리 깎을 것도 적극 추천한다. 


전문가의 시대!! 자격증이 필수라고 하는데, 앞으로 아이와 함께 지내면서 자격증 없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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