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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초순보기 Jan 17. 2023

손주와 수상한 호떡


아침 7시 30분이다. 거실로 나가면 이미 손자와 손녀가 거실에 나와 있다. 


6시에 출근하는 딸을 대신하여 아침 등교를 봐준 지 3개월이 지났다. 손녀는 10살, 손자는 8살이다. 초등학생이므로 많은 손이 가는 것이 아니지만, 차도남의 손자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아침밥부터 그렇다. 밥을 먹을까 싶어 밥을 준비해 놓으면, 빵을 먹는다고 하고, 잼까지 발라 빵을 준비해 놓으면 시리얼을 먹겠다고 한다. 손녀는 그래도 해주는 대로 잘 먹는다. 그런데 손자 녀석은 한 번에 통과하는 법이 없다. 그렇다고 원하는 것을 주면 다 먹는 것도 아니다.

 


가끔은 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분이 상해서 " 그럼 뭘 먹을 건데?" 하며 쏘아붙일 때도 있다.


빵, 밥, 시리얼 중 제 손으로 선택하게 하여 먹게 한 후에는 밤새 기세 좋게 뻗어나간 머리카락에 물을 뿌려가며 빗질을 한다. 


그런데 이 녀석  차갑다며 쏘아붙인다. 퉁명스러운 말투와 쑥 하고 내민 입술을 못 알아들은 척, 못 본 척 정돈해 주면,  옷을 입고는 한마디 한다. 할머니 때문에 지각한다며.


 가방을 메고 현관을 나선다.  열린 현관문으로 빠르게 찬바람이 들어온다


오늘 추운데 잠바 잠그지... 하면  아! 안 춥다니까요. 하며 또 쏘아 부친다.  혼자 등교하는 것이 안쓰러워 따라  나갈라 치면, 문을 밀어 닫고, 못 나오게 한다. 


그럼 안 나가는 척하고 있다가 나가보면 아파트 내를 벗어나 빠르게 들어오는 찬바람 보다 더 빨리 사라진다.


 학교까지 가는 길에 할머니가 동행하는 것이 창피해서 그런가 하고. 하루는 아이가 등교하는 길을 따라 학교 앞까지 가 보았다. 저학년 아이들은  부모나, 조부모와 함께 등교하는 아이들이 꽤 있었다. 


엄마가 아닌 내가 할머니라는 것을 떠올리는 것은 서글프지만 , 젊은 엄마처럼 보이려고 화장을 하고, 잘 차려입고 나가 보았다. 


 여전히 까질 하게 군다.  이럴 땐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져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땅바닥에 널브러진 느낌이다.


일주일에 3번은 돌봄 교실이 끝나면 바로 학원으로 가는데, 학원 교재까지 들어가다 보니 가방이 무거워지기 때문에 내가 가방교체해 주기 위해 학교 앞으로 간다.


그런데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가방이 왜 그렇게 무거운지 모르겠다. 어른인 내가 들기에도 힘든 가방을  그 조그마한 아이가 짊어지고 다니니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며


가방을 교체해 주는 것은 저를 위한 일이고, 짐을 덜어주는 일이니까. 반갑게 맞아 주지 않을까 하여 잔뜩 기대를 걸고 학교 교문 앞에 섰다.


한꺼번에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고,  고만고만 아이들 틈에서 손자를 놓치지 않으려고 눈에 긴장이 잔뜩 들어갔다.


아이들 틈에서 손자는 보이지 않았고, 마음은 점점 급해져서 멀어진 아이들을 흟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 녀석 좀 보게나.. 내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아이들 틈으로 허리를 숙이고 슬금슬금 뒤를 돌아보며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재빨리 달려가 가방을 건네주면, 지고 있던 가방은 바닥에 내던지고 쏜살같이 학원차를 타기 위해 달려가 버린다.




학교 앞이라 꿀밤을 한대 먹일 수도 없고, 서운한 감정이 들면서 , " 그래, 무거운 가방 맨날 들고 가보라지" 한다. 그래도 다음날이 되면 손자의 행동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또 학교 앞으로 간다.



그렇게 손자의 손자의 까칠함은 몇 주가 지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 할머니가 ~~" 하고 다정하게 다가와 말을 건다. 그동안의 서운한 마음은 어디로 간 것이지 바로 대답을 한다 " 응? 왜? 왜?


다정한 것은 말뿐이 아니다. 몸까지 한껏 밀착한다.  할머니~~ 하고 불러주는 다정한 목소리와 애틋함에 눈물이 핑 돌지경이다.   


그동안 봐온 아이의 성격상 이렇게 다정하게 다가올 수 없는데, 무슨 일일까?  제 엄마한테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서, 아이가 교육을 받았나. 본디 다정한 아이인데, 나에게 바로 다가올 수 없어서 까칠하게 굴었나.


뭐 어쨌든 아이가 다정한 목소리로 다가오니, 그동안 수고가 헛수고가 아니었구나. 이제야 손자와 친해질 수 있겠어. 하며 그 찰나의 순간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물론 그동안 서운했던 감정도 다정한 말 한마디에 봄눈 녹듯 스러졌고, 한순간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할머니~~ , 그런데 말이에요.
저 수상한 호떡 하나 사주면 안 돼요? 

수상한 그녀,  수상한 편의점, 수상한 사진관 등등 수상한 시리즈의 하나인가.


" 어? 수상한 호떡?  " 

" 저기 , 골목 끝에서 파는 호떡이요"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호떡을 굽는 기름냄새가 났고,  학교 골목 끝에 호떡트럭이 서있었다.


 " 할머니, 호떡 사주시면 안 돼요?"  트럭 앞 줄을 서있는 아이들 뒤로 나를 끌어다 세웠다.


수상한 호떡은 다름 아닌 호떡을 파는 트럭 상호였다. 아이의 다정함에는  수상한 호떡을 먹고 싶다는 간절함이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손자의 간절함을 다정함으로 해석하여, 눈물까지 나려 했다.     


아이는 호떡을 3개나 샀다. 하나는 누나 꺼고, 2개는 자기꺼라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 수상한 호떡은 일주일에 두 번 화요일과 목요일에 학교 앞에 나타난다고 한다. 


내가 아이의 가방을 바꾸어 주러 가는 날은 월, 수, 금요일이기 때문에 수상한 호떡을 마주칠 일이 없다. 그날 호떡 장사를 마주친 것은 인근 고등학교가 일찍 끝나는 바람에, 초등학교 앞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아이의 까칠함은 그날 이후도  달라지지 않았다.  


하루는 학교 앞 골목에 있는 전봇대 뒤에 숨어서 아이가 나오는 걸 기다렸다.


우리가 연애를 할 때, 처음 맘에 드는 상대방을 만났을 때, 매일 문자를 보내거나, 연락을 하던 사람이 뜸해지면 은근히 기다려지거나, 내가 너무 소홀하게 대한 것은 아닌가, 내가 너무 무심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아이도 그런 마음이길 바랬다.


여느 때처럼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 틈에서 아이를 발견했다. 3개월을 아이를 맡으러 나가게 되니, 눈을 감고도 느낌 만으로도 아이를 찾을 수 있었다.


아이가 다가왔다 싶을 때쯤 못 본척하며 전봇대뒤로 더 몸을 숨겼다. 아이가 어떻게 반응할지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오늘도 못 본 척한다면 " 이 녀석 다시는 안 온다" 하는 마음이 슬며시 올라왔다.


"두근두근!!"




할머니!! 어디 있는지 다 알거든요!!


" ㅎㅎㅎ 성공이다 "  그동안의 서운했던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  바로 아이에게 달려가 " 우리 손주가 할머니를 봤구나. 고마워라 "


" 다 보이죠. 전봇대 보다 할머니 가 더 뚱뚱한데"  아이쿠야.


그래도 뭐 어떠랴. 나는 오늘도 아이를 기다리러 학교 앞으로 간다.  예전에는 그냥 기다렸지만 이제는 수상한 호떡만큼이나 좋아할 만하게 무엇일까 두리번거리게 된다.  그런 나는 미소가 떠오르고, 머릿속은 웃는 아이의 얼굴이  아른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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