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역할이 어디까지 인지 잘 모르겠다. 어떤 사람은 자식의 결혼비용까지 대 주는 것이 그 마지막이라는 사람도 있고, 손주까지 돌봐주고, 그 손주가 결혼할 때까지 비용을 이어 대 주고서야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왠지 씁쓸해지고 한숨까지 나온다.
이런 말은 딸이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딸은 제가 벌어서 결혼까지 했으니까. 지금이라도 알고 ' 엄마는 나한테 뭐 해준 것도 없으면서.." 하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아이들 방학 때 휴가를 맞추어 돌봐 주고, 힘들어했던 상황을 아는 지인들은 퇴직이 가까워 지자 손주 봐주면 골병든다며 적극 말렸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지 못한걸 어떻게 거절을 할 수 있을까...
게다가 딸 결혼비용을 한 푼도 주지 못해 육아의 대미도 장식하지 못했다.
퇴직 후 처음으로 아이들이 방학을 했다.
봐달라는 말도 안 했는데, 주위로부터 절대 봐주지 말라는 교육을 단단히 받은 상태임에도 아이들 방학이 다가오자 방학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어떤 추억을 남겨 주어야 할까...
할머니의 사랑을 받아 보지 못했기에 어떻게 해야 아이들에게 기억되는 할머니로 남을까 고민하는 것도 즐거움 중 하나였지만, 내가 받아본 적 없고, 느껴 보지도 못한 할머니의 사랑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느끼게 해줘야 할지 고민이었다.
방학때 아이들은 제부모가 데려다주었다. 자동차가 속초 IC를 빠져 나오면 " 할머니 집에 다 왔다!!" 라고 한다는 말이 기억났기에
들도 지나고, 강도 지나고.. 산허리를 지나고.. 중간역에서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을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 기차를 타기로 했다.
속초에는 기차역이 없기 때문에 강릉역에 도착하여 다시 자동차로 40분을 이동해야 하지만 강릉역에 도착하면, 기다리고 있을 할아버지와의 만남도 기대가 되었고, 할머니 집에 오는 방법이 자동차 말고도 다른 방법이 있다는것을 알게 해 주고 싶었다.
" 기차로 속초 갈까? " " 너무 좋아요!!"
예약을 하고,방학하는 날만 기다렸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장난을 치는 손자를 사람 많은 서울역에서 잊어버리기라도 하면? 하는 아찔한 생각도 들고, ' 애 봐준 공은 없다'는데, 괜히 봐준다고 했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커졌다.
드디어 기차여행하는 날!!
각자 하나씩 배낭을 메고, 물놀이 용품이 들어간 대형 캐리어 하나를 끌고 지하철을 타러 갔다. 긴장된 나와는 반대로 아이들은 신이 나서 앞장서서 걸었고, 잦은 다툼을 하던 남매는 세상에서 가장 친한 사이처럼 서로를 챙겼다.
그리고 교통카드를 사용해서 지하철에 탑승하고, 무겁고 커다란 캐리어를 챙겼다.
할머니 옆에서 멀어지면 안 된다. 혼자 먼저 가면 안 된다. 혹시 할머니 잊어버리면 그 자리 그대로 있어라 등등 출발 전 신신당부는 쓸데없는 것이었다.
서울역에 도착해서는 열차 시간 보는 법, 탑승구 찾는 법 등을 알려주고, 기차역에서 먹는 추억을 위해 아이들과 북적거리는 매장으로 들어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강릉행 기차에 올랐다.
기차를 처음 탄 아이들은 내내 재잘거렸다. 아이들의 이야기는 종착역에 도착해서야 끝이 났는데, 게임 이야기, 누나 말 잘 들어아한다, 엄마한테 매일 전화하자 같은 이야기였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넓은 벌판과 산기슭은 하동 할머니집 가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 했다.
강릉역에 도착하여 내리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아이는 사람이 일어나기 전 뒤 짐칸으로 달려가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반쯤 오고 있었다.
서울역에서 강릉역까지는 중간에 6번을 정차하는데, 그때마다 내려야 하냐며 물었었다. 마지막에 내려야 한다고 말했음에도 계속 물었던 이유는 아이가 짐칸에 둔 캐리어를 챙기려고 했던 것이다.
강릉역에 도착하여 마중 나온 할아버지를 만났다. 전쟁통에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난 것 같은 그 만남에 비교가 안될 만큼 서로 기뻐하고 흥분했다. 그래 이거다. 내가 기차여행을 한 이유가.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걸 경험하게 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이내 아이들은 개구쟁이 모드로 돌아왔고, 이리 튀고 저리 튀었다.
할어버지를 만나면서부터 평상시 모습대로 돌아간 것은 제 딴엔 할머니를 생각하느라 척척해내고 예쁜짓만 했던 것 같다.
기차를 타고 속초로 온 이후에는 눈만 뜨면 바다, 계곡, 물놀이장, 박물관, 카페 등을 원 없이 다녔다.
주변에서 손주 보는것 힘들다고 만류해도 난 계속 이어 나갈것이고, 내년 방학에는 해외로 도전해 보려고 한다.
손주 육아도 다 사정이 있는법, 주변에서 손주 육아를 하는 사람을 만나면, 난 절대 골병든다, 왜 하느냐 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에 이왕하는것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찾아 보세요 한다.
참고( 손주 육아 경력) : 생후 3개월부터 24개월까지(직장생활 하면서), 어린이집, 학교 방학때 마다 전적으로 돌봄/ 2020년 6월부터 손주 등교도우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