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lolife Feb 22. 2019

난임 병원의 '환자'가 된다는 것

자궁내막증과 난임 병원

병원에서 자궁내막증이 의심된다는 말을 듣고 난 후, 다음 생리가 시작되었을 땐 예상 못한 일이 일어났다.


이전에도 생리통이 있어서 심한 날은 진통제를 1~2개는 먹었는데, 회사에서 일하는 도중 생리가 시작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오한과 식은땀이 나서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섰다가 몸을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아파서 주저앉았다. 진통제를 겨우 급하게 먹고 약이 퍼지는 30분 동안 정말 하늘이 노래질 정도로 너무 힘들었다.

이전 생리통의 몇 배인지 셀 수도 없을 만큼 심하게 아팠다.  


진통제의 효과가 들어서 다행히 일은 다시 할 수 있었지만, 진통제를 조금만 늦게 먹었다가 또 그 고통을 느낄까 너무 두려워졌다.


“아, 이런 게 자궁내막증이구나..”




난임 병원에 가봐야 하는데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할까? 막막했다.


포털사이트에 '난임 병원' 키워드로 검색해보았을 때, 수도권에 살고 있지만 생각보다 난임 병원이 그리 많지 않음을 알았을 때 놀랐다.


수도권 병원이 이렇게 많지 않은데 지방의 병원은 얼마나 더 적을까?

뉴스에서 보면 난임 환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는데 다들 어디로 다니는 걸까?


병원에 대한 정보는 시험관 아기 카페에서 여러 가지 질문과 답변에서 얻을 수 있었다.

주변에 알리고 싶지도 않은 상황에서 '난임'에 대해 무지한 나에게 유일하게 기댈 곳은 포털사이트의 카페뿐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마음 둘 곳 없는 나에게 인터넷의 이 공간은 답답할 때, 궁금할 때, 나만 겪는 우울함 같을 때 든든한 친구가 되어 주었다.


운이 좋은 것인지, 내가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울에서 유명한 난임 병원 의사가 원장으로 병원 개원한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는데

“그 의사의 환자들이 병원을 옮겨야 할까요?”

같은 문의글이 종종 보였기 때문이다.


출근길에 병원에 들를 수 있어서

‘휴, 정말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평일에 방문한 그 병원은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30분 정도 기다려서 그 유명한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필요한 검사를 해보고 초음파을 보고 난 후, 의사는


“임신이 중요한 난임 의사가 보는 관점과 난임 의사가 아닌 산부인과 의사가 보는 관점이 달라요.

환자분의 상황에선 수술을 바로 하는 것보다는 임신을 먼저 시도해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차분한 목소리로 너무 걱정하지 말고 심각한 상황이 아니니 임신이 될 수 있다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듣자 그동안 심각하게 수술만 말하던 산부인과 의사들의 얼굴과 겹치면서 눈물이 글썽이는 걸 간신히 참았다.


경험이 많은 난임 의사니,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을 마주 했을 테니 내 상황이 상대적으로 심각하지 않았을 거라 판단했을 수 있지만 그래도 그 의사를 믿고 싶었다.

 

“일단 배란 주기에 맞춰서 자연 임신을 시도해 보죠.”


산부인과에서의 초음파는 건강검진에서 한번 해보았는데 경험은 정말이지 다음엔 피하고 싶었는데..

자연 임신을 준비할 땐 초음파로 자궁의 상태를 보면서 배란이 언제 될지 예측해야 해서 한 달에 한번 이상은 그 상황에 노출되어야만 했다.



의사와 함께 준비하는 계획 임신의 첫 달이 생리와 함께 지나갔다.


“자기야, 역시 이번엔 아니야.. 첨부터 되면 운이 좋은 거지.”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병원 예약을 해놓고 토요일 주말에 병원 입구를 들어서는데 많은 사람들로 이미 꽉 차 있었다.

개원 초기라 의사는 원장밖에 없는데 전광판에 대기자 목록에 내 이름은 몇 번째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예약 시간이 맞춰서 왔음에도 남편과 나는 1시간이 넘도록 전광판에 이름이 나타나지 않자 기다림에 지쳐가고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저희 9시에 예약하고 2시간이 지났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이럴 거면 예약 시간은 왜 있는 거죠?”

의미 없는 질문을 간호사에게 투덜거렸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3시간이 지나자,

’와..이 정도면 병원에서 내가 아기를 가질 자격이 있는지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거 아닌가?’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기다리면서 난임 병원을 찾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에 대해 놀라고 대기 시간이 늘어나면서 또 놀랐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난임 때문에 병원을 찾고 있구나. 몰랐었다.. 그전엔..



뉴스에서나 보거나 듣는 출산할 아기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걱정하던 우려를 몸소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다들 남들에게 말 못 한 채 나처럼 혼자 끙끙 앓고 있는 사람도 많겠지.

나도 그들 중의 한 명의 환자가 되어 난임 의사를 만나려고 주말에 이 많은 시간을 흘러 보내고 있구나.

다들 우리 부부처럼 기다림에 지쳐 보였다.



다음달도 임신이 되지 않아서 병원을 찾았고 접수는 대기 목록에 생년월일과 이름을 쓰면 되었다.

먼저 적힌 대기 목록에는 20대 후반, 30대 그리고 40대로 다양하게 있었다.


아이, 할머니, 할아버지도 없는 젊은 부부밖에 없는 병원.


그들은 남편과 함께 혹은 혼자서 언제 불릴지 모르는 자신의 이름을 불러지기를 무료한 표정으로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며 긴 시간을 대기하고 있었다.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은 사람들은 어떤지 궁금하여 말을 해보고 싶었지만 내가 말을 걸어볼 리 없었다. 

그냥 상상만 해볼 뿐이었다.

같이 기다리는 그들과 동료애 같은 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들이라면 나의 마음을 공감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서로 위로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난임 병원에서 '환자'가 된다는 건
기다림의 연속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 기다림의 연속.
끝나긴 끝나는 것일까?


 

이전 02화 '난임'이란 단어가 나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