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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lolife Feb 21. 2019

'난임'이란 단어가 나에게..

설마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기겠어?

나는 평범한 30대 중후반을 달려가는 직장인이고

결혼 1주년이 지난 지 얼마 안 된 신혼부부이다.


연애기간은 꽤 긴 편이었지만 늦게 결혼하게 된 이유는 여러 상황들이 있었다.


우리 부부는 비혼 주의자도 아니었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애는 갖지 않는 딩크족은 더더욱 아니었다.

연애할 때 종종 우린

결혼해서 애 낳으면 우리 애는 이렇게 키우고 싶어!


를 자주 이야기하는 그냥 평범한 삶을 꿈꾸는 커플이었다.




29살이 되어 회사를 구직하려고 본 면접에서 면접관은 질문이 다 끝나고 일어서는데 마지막에,


"아! 중요한 걸 안 물어봤네요. 혹시 남자 친구가 있나요?"


아.. 이게 뉴스에서 보던 능력과 상관없는 사적인 질문이구나..

더구나 더 문제는 이 질문이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전형적인 보수적인 분야도 아닌데 생각지도 못한 그런 질문을 받이니 너무 불쾌했다.


“능력과 상관없는 그런 질문이 불쾌합니다.”

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구직하는 입장은 힘이 없으니 마음속으로만 삭힐 뿐이었다.


"있습니다"


일 때 이어지는 질문은,


"결혼은 언제 할 건가요?

아기 계획은 있나요?"이겠지.. 여자이기 때문에 들어야 할 면접 질문에 씁쓸했다.


어차피 당장 결혼 생각은 없기 때문에 


"없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아마도 그때 "있습니다"라는 대답이었다면 면접에 붙지도 않았을 거란 믿음은 회사를 다니면서 더욱 확신이 들었다. 역시 면접 질문을 보면 회사 분위기를 면접 때 간접적으로 알 수가 있다.


중견기업이고 전문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같은 분야엔 여직원이 한 명밖에 없었다. 입사 후 알게 된 거지만 여직원을 대놓고 뽑지 않는 조직이었다. (나는 어떻게 뽑혔나 모르겠다..) 


직장에서 잦은 야근이 계속되었다. 정기적으로 새벽에 작업을 해야 할 때도 있어서 밤에 출근해서 점심이 되어 퇴근할 때도 있었다.

일은 처리하는 시간보다 쌓이는 시간이 훨씬 빨랐다. 일을 처리해야 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은 채 하루 종일 회의가 이어졌다. 회의에서는 또 다른 업무가 생겼다. 일할 시간은 주지 않으면서 위에서는 언제까지 되는 일정인지만 물었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번아웃 증후군이 날 오랫동안 괴롭혔다. 

극복할 자신이 없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거 생각하기도 전에 그냥 미혼 직장인이어도 힘들었다.

내가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주말엔 모두 잊고 놀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스트레스 쌓인다며 놀면서 시간을 보낸다면 결국 쳇바퀴만 돌며 계속 번아웃 상태로 불평하며 회사를 다녀야 할 것이다. 

주말에는 남자 친구를 만나서 노는 시간 대신에 카페를 전전하며 공부를 했다. 우리 둘 다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그렇게 우리의 시간은 무심히 도 계속 흘러갔다.


“요즘 젊은 애들은 결혼도 늦게 하고, 애도 낳을 생각도 안 하고. 쯧쯧.”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서럽고 억울한 마음에 우리 사정이 이러이러하다며 구구절절 설명할 수 없음에 답답해하던 시절이 그래도.. 지나가고 있었다.


이직을 하고, 어느 정도 직장에 적응을 하고 드디어 양가의 결혼 승낙을 받고 결혼식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건강검진 결과지에서 낯선 수치인 CA-125가 보였고 난소암 가능성이 있을 수 있으니 정밀검사가 필요하다고 의사 소견으로 나왔다.


CA-125
CA125(cancer antigen 125)는 고분자 당단백으로 난소암 및 자궁내막암 등의 부인과계 암에서 증가한다. 그 외에도 췌장암, 폐암, 유방암, 대장암, 위장관암에서도 증가할 수 있다. 선별 검사로는 가치가 떨어지나, 자궁내막암의 예후 결정 및 난소암의 크기, 병기 및 생존율과 연관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CA125  (서울대학교 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 병원)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심을 안고 꽤 큰 산부인과에 갔더니 심각한 얼굴로 의사가 자궁내막증이 의심된다며 소견서를 써줄 테니 대학병원에 가서 더 검사가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자궁내막증을 처음 들어보기도 했고, 심각한 표정으로 의사가 설명을 해주긴 했지만 두려움에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대학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해보고는 자궁내막증 의심으로 보이는데 정확한 병명을 확진하려면 수술해서 떼어내면서 조직검사를 할 수 있고 떼어내지 않으면 난임의 원인이 될 수도 있는데, 제거하는 수술을 하게 되면 난소를 건드리게 되는 것이어서 사람에 따라 영향에 차이가 있지만 아이를 갖는 것이 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했다. 또 혹을 제거한다고 해도 생기는 사람은 또 생긴다고..


결론은 임신을 원하는 사람은 수술을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라는 것이었다.


자궁내막증
자궁내막증이란 자궁 안에 있어야 할 자궁내막 조직이 자궁 밖의 복강 내에 존재하는 것으로, 가임기 여성의 약 10-15%에서 발생되는 흔한 질환입니다. 자궁내막증은 월경을 하는 여성, 즉 초경에서부터 폐경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령대에서 생길 수 있으며, 관련된 주요 증상으로는 심한 월경통과 하복부 통증, 불임 등이 있습니다. 자궁내막증은 그 빈도가 매우 높은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수술 전 정확한 진단이 어려운 경우가 많으며, 재발을 잘하고 계속 진행하는 특성을 보여 치료에 있어서도 매우 까다롭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궁내막증 (국가 건강정보 포털 의학정보, 국가 건강정보 포털)



살아오면서 아이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이가 없는 삶도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아이를 낳는 게 우리의 선택이 아닐 수도 있게 된 걸 아는 순간 의사 앞에서 눈물이 났고 목소리가 떨렸다.

이제 결혼생활 시작이고 행복한 일만 만끽하면 되는데 왜 지금 이런 일이 생긴 걸까?

결혼이 조금만 빨랐었다면, 혹도 생기지 않았을 텐데..

타이밍이 너무 아쉽고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대학병원에서는 혹을 제거해도 임신이  되는  아니라며 빨리 수술하고 임신 시도하는 게 낫다며 서둘러 수술 날짜를 았다.

수술 날짜가 다가오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술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란 생각에 다른 대학병원 2군데에 갔지만 의사들 모두 똑같이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하고 임신 시도하기를 권유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던 순간에 인터넷에서 자궁내막증 관련 글들을 읽어보던 중

자궁내막증을 난임 병원에선 수술을 권하지 않고 임신을 시도해서 성공하면 혹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는 글을 발견했다.


그 글을 읽으며 수술 외의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이 희망적이었지만

난임 병원이라니..

내가 난임 환자가 될 수도 있다니.. 막막했고 서러웠다.

왜 이런 시련이 나에게 오는지 억울했다.

그리고 무서웠다.

아이를 갖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긴 터널 속에 갇힌 느낌이다.


설마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기겠어?

내 일이 아닌 그저 사회적 이슈일 뿐이라 생각했던

"난임"이라는 단어의 첫인상이 그러했다.


아이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이렇게 내 아이를 원했던가?


“아이는 생기면 좋고 요즘 난임부부가 많다던데 혹시라도 안 생기면 둘이 살지~”


라고 말했던 지난날은 경험해 보지 않은 누군가의 배부른 소리였다.

진짜 생길 수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어느새 나는 아이를 절실히 원하게 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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