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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lolife Feb 19. 2019

"괜찮아"라고 말하지 않아도 난 괜찮을 거야

생애 최초의 경험 - 난자 채취

결국 어렴풋이 상상만 해보았던 그날이,

오늘의 나에게 다가왔다.


결혼한 지 1주년을 기념하는 케이크에 꽂은 촛불을 후~ 불고는 우리는 박수를 쳤다.


"우리가 함께한지 벌써 일 년이라니."


어제 일을 회상하면서 애써 수술대에 누워 있는 이 순간의 내 모습을 잠시 잊으며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겁나진 않았다.

건강검진 때처럼 위내시경 하듯 마취가 깨고 한숨 자고 일어나면 끝나 있을 거라는 의사의 말을 믿었고,

어제 새벽까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후기글을 읽어보니 예상 가능한 상황이었으니..

다만 "결국"이란 단어는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열흘간에 집에서 배에 주사를 맞아야 하는 일을 시작해야 할 때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1년 동안 "혹시나" 하면 예상 가능한 일이었으므로,


수술실의 공기는 차가웠다.

내가 수술실에 들어서자 간호사들은 분주하게 내 주위로 모여들며 각자 맡은 일을 빠르게 헤쳐나갔다.

오른쪽에선 오른팔에 맞고 있던 수액 대신 다른 주사를 놓기 위해 준비를 하고 난 후 내 오른손을 가볍게 묶었고, 왼쪽에선 혈압을 잰다며 내 왼팔을 감싼 후 왼손마저 가볍게 묵었다.

이미 인터넷의 많은 글의 후기를 읽어서 수면 마취 중에 내가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거라 익히 알고 있었지만, 간호사는 양팔을 묶는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고 나도 구태여 물어보지 않았다.

 

스스로 괜찮다, 별일 없을 거다 생각하면서 누워있는데 수술대에 누운 내 몸은 마음과 다르게 전신이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긴장을 많이 한 것 같다며 한숨 자고 나면 끝나 있을 거라고 안심하라며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후의 기억은 끊긴 채 눈을 떠보니 회복실이었다.


"환자분, 다 끝났어요~ 눈 떠보세요. 졸리셔도 다시 주무시면 안 돼요. 힘들더라도 눈 뜨고 계세요."


방금 '난자 채취'라는 난임시술 중의 하나인 체외수정(시험관 아기)의 과정 일부가 끝났다.


위내시경이 끝났나? 아니지. 난자 채취가 드디어 끝났구나.

수술 전에 수면마취에 대해 동의서에 동의한다고 서명을 남길 때, 별일 없이 눈뜨겠지 하고 서명을 하지만 막상 끝나고 마취에서 잘 깨어나니 안도가 되었다.

산소호흡기가 내 코와 입을 감싸고 있고, TV 드라마 병원 수술실에서 보던 맥박 관찰하는 기계가 울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눈은 자꾸 감기고, 정신은 아직 몽롱한데 아랫배가 점점 고통이 느껴진다.

평소에 생리통이 심한데, 그 고통의 세배 정도는 아픈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고통을 아는지라 진통제 없이 점점 아파오는 통증이 너무 무서워졌다. 다시 간호사를 불렀고, 진통제를 놔주었다. 이후에 괜찮아지는지 10분 정도 기다려보자고 했다.


10분 동안 조금은 나아졌지만 그래도 너무 아프다고 하니 진통제를 한번 더 놓아주었다.


시간이 지나니 점차 정신도 맑아지고 있고, 고통도 참을만해지니 궁금증들이 들었다.


회복실에선 나와 같은 환자들이 몇 명이 누워있을까?

보이지 않지만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나와 공감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동료애를 느끼고 싶었을까.


지금 몇 시쯤 되었을까? 얼마 동안 누워있는 걸까?

남편은 기다리느라 지루하겠다. 빨리 회복하고 일어나야겠다.


그리고, 몇 개의 난자가 채취 성공하였을까?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애초에 채취수에 연연하고 싶지 않았었다. 실망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회복이 되기까지는 마취에서 깨어나고 난 후에 한참이 걸린 것 같다.

시간은 알 수 없었지만 일어날 힘이 쉽게 나지 않았다.

다행히 간호사들도 재촉하지 않고 충분히 기다려 주었다.


이제 일어날 수 있다고 간호사에게 알리니, 간호사가 맞고 있던 수액의 주삿바늘을 뽑았는데 꽤 많은 양의 피가 잠깐 흘렀다. 간호사가 난자 채취 결과를 알려주었는데 결과는 생각보다는 좋진 않았다.

시술 전 초음파 상으로는 채취할 수 있는 양이 괜찮아 보였는데 공난포가 많아서 채취 양이 적어서 좀 아쉬웠다고 했다. 사실 어느 정도 채취되는지 적은 지 많은지 가늠을 할 수 없어서 그런지, 담담했다.

때론 모르는 게 약이듯 자세히 모르니까 실망하지 않고 담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한편으론 양보다 질이 좋길 바랄 수밖에,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기에.


지혈을 마치고 환자복을 벗고 다시 평상복으로 갈아입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밖에선 기다리다 지친 남편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내 걱정을 해주었다.

거울을 안 봐도 내 얼굴은 너무 초췌했었을 것이다.


이게 사람들이 말하던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고생한다던 체외수정(시험관 아기)의 큰 과정 중의 하나인가 보다.


수술 후엔 항생제를 며칠간 먹고, 복수가 찰 수 있으므로 이온음료를 1리터 이상 먹으라는 주의사항들을 듣고 병원을 나섰다. 3시간 반만이었다.

그날의 첫 시술이라 대기시간이 없이 짧게 걸린 것 같다.

"일찍 끝났으니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난 괜찮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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