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이 무거워 난초 이파리 지그시 고개를 수그리고
김연수 님의 청춘의 문장 중 좋은 문장을 옮기고, 읽고 떠오른 생각들을 기록합니다.
어린 시절에 나는 빨리 커서 서울 아저씨가 말한 강변도로에 가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이제 강변도로를 달리게 되니까, 그때 술 취한 서울 아저씨와 아버지 사이에 앉아 달려가던 시골길이 그리워지다니.
삶이란 그런 것이구나. 그래서 어른들은 돌아가시고 아이들은 자라는구나.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까 온 곳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것이구나. 울어도 좋고 서러워해도 좋지만.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게 삶이로구나.
우리가 왜 살아가는지 이젠 조금 알 것도 같다. 아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렇게, 그냥 그 정도로만. 그럼. 다들 잘 지내시기를.
몇 주 전 주말 내 기준으로는 조금 먼 친척의 결혼식 때문에 부모님이 오셔서 자취방에서 하루 자고 가게 됐다. 내가 대학 다닐 때였으면 아마 왔다가 그날 바로 내려갔을 것이다. 그때 자취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던 이유는 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중에 하나는 엄마가 와서 자고 가는 것이었다. 엄마가 가지고 온 반찬을 먹고 싶기도 했고 내가 사는 곳, 공부하는 곳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뭔지 모르게 둘 곳 없는 마음을 엄마가 와서 좀 잡아주기를 무의식 중에 바라기도 한 것 같다. 엄마는 놀러 오라고 하면 너무 멀다, 잘 곳이 없다며 오지 않았다. 그러다 내가 졸업을 하고 자취를 하게 되니 가끔씩 이렇게 올 일이 있으면 자고 가기도 한다. 그렇게 대학 내내 바랐던 게 지금 생각하니 너무 소소해서 좀 우습다. 지금은 온다고 하면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귀찮기도 하다. 며칠 전부터 잔소리 대비 대청소를 해야 하니까. 인생의 일부분은 별 것 아닌 것을 괜히 바라고 막상 그 일이 내 옆에 오면 미지근한 마음이 되거나 알아채지도 못하는 그런 것들로 구성되어 있나 보다.
근처에 사는 외삼촌도 잠깐 들러서 코딱지만 한 내 밥상에 모여 앉아 밥도 먹고 술도 마셨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외삼촌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즈음 대해 물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고2 올라가던 해에 돌아가셨다. 늦게 발견한 암 때문에 병원에서 몇 개월 고생하시다 댁으로 돌아와 마지막을 준비하셨다. 아무도 전날인지 몰랐던 날 아빠와 동생은 먼저 할아버지 댁에 가 있었다. 엄마와 나는 밤에 출발하려다 남쪽 지방엔 잘 오지도 않던 눈이 너무 많이 와 날이 밝으면 출발하기로 했다. 새벽에 집으로 전화가 왔고 우리만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엄마는 집에서도 울고 버스에서도 울고 할아버지 댁에 도착해서도 울었다. 장례를 5일장으로 집에서 치렀다. 할아버지가 누워 계시던 안방에 빈소를 마련했다. 음식을 부엌에서도 하고 바깥의 가마솥에서도 했고 마당에 천막을 쳐서 손님을 받았다. 집안이고 바깥이고 오랜만에 만난 이들과 인사를 나누는 소리, 음식을 나눠 먹는 소리들이 가득해 꼭 잔칫날 같았다. 출상하는 날 마당에는 큰 상여가 놓였다. 동네 할머니들이 와서 곡을 하셨다. 상여꾼이 모여 있는 이들에게 할아버지 가시는 길에 노잣돈 하시라고 상여 꽃장식 틈에 돈을 끼우라고 했다. 그해 중학교에 들어갈 내 동생도 삼베옷을 입고 울면서 돈을 끼웠다.
그 당시를 이야기하면 엄마는 꼭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상여가 선산을 올라갈 때 동생이 할아버지 영정사진을 들고 걸었는데 몸을 왼쪽, 오른쪽 돌리면서 올라가길래 작은할아버지가 왜 그러냐고 물었다고 한다. 동생은 마지막 가시는 길에 풍경들 다 잘 구경하고 가시라고 보여드리는 거라 답했다고 한다. 기특하게 느끼셨는지 후에 엄마에게 이야기하신 모양이었다.
나에게 제일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장면은 조금 다르다. 그때 엄마는 임종도 못 지켰다는 아쉬움에 출상 길을 따라가려 했는데 동네 할머니들이 따라가면 안 된다고 한사코 못 가게 하셨다. 엄마는 떼쓰는 아이처럼 대문 앞에 누워서 왜 못 가게 하느냐고 울었다. 상여가 나갈 때 액을 물리친다고 흰 질그릇을 깨고 나가서 바닥에는 조각이 널려 있었고 엄마가 입고 있는 소복은 너무 얇았다. 엄마가 그릇 조각에 찔리지 않을까 너무 무서웠다. 엄마는 평소 감정 기복이 크지 않은 편이라 그전까지 우는 것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 엄마의 모습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그 기특하던 아이는 이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도 졸업하고 밥벌이하고 사는 어른이 되었고 그토록 서럽게 울던 엄마는 그때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눈물이 끝없이 흐를 것 같던 날도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 괜찮아지다 못해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기 때문에 삶은 계속되는 걸까? 나 역시 여전히 삶이 계속되는 이유를 잘은 알지 못한다.
다음날 엄마 아빠는 점심에 볼 일이 있다며 아침을 일찍 먹고 집을 나섰다. 비가 와서 여전히 새벽 같은 아침 나는 창문을 열어 놓고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드는 둥 마는 둥 누워 있었다. 그 흐르는 시간 동안 엄마가 바란 것들, 아빠가 바란 것들은 얼마나 이뤄지고, 이뤄진지도 모르고 지나가고 또 이뤄지지 못했을까 생각했다. 시간이 더 흐르면 언젠가는 내가 내 아이의 집에서 하루를 자고 나가면 아이는 누워서 선잠을 잘 날이 올까도 생각했다.
'청춘의 문장' 읽고 쓰는 마지막 글입니다. 꾸준함에 컴플렉스가 있어서 시작할 때 책의 마지막 챕터까지 쓰지 못하고 그만 두지 않을까 좀 망설였습니다. 이 책 덕분에 다른 분들처럼 멋진 소재나 주제를 가지지 못한 저도 브런치를 시작하고 꾸준히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좋은 문장 가득한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무리를 잘 지을 수 있어서 다행이고 이 글들을 좋아해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