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종로구 부암동으로 이사를 왔다. 강남의 회사 근처만 맴돌던 내게 출퇴근 시간만 왕복 두 시간 이상이 걸리는 이곳으로의 이사는 큰 결심이었다. 더군다나 집이 산언저리에 위치한 탓에 눈이나 큰 비가 오면 쉽게 길이 끊겼고 버스를 타려 해도 가파른 언덕을 한참 내려가야 했다. 지인들은 이런 나의 선택을 염려했지만 내게는 스스로를 위해 내린 소중한 결정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깊은 고요가 필요했다.
이곳에서의 하루는 다행히 내 바람을 들어주었다. 매일 아침 동이 틀 무렵, 뜨거운 커피 한잔을 들고 거실 창에 기대 막 깨어나는 하루를 보았다. 기지개를 켜는 인왕산의 얼굴을 바람이 씻기고 아침해가 색색깔 고운 옷을 산 능선에 정성스레 입히는 모습을 보았다. 하루의 시작을 자연과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평온을 주는지 예전엔 미처 알지 못했다. 어쩌면 그만큼의 여백도 내게 준 적이 없기 때문일까. 부산한 것들로 가득 차 있던 곳에서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와서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
이사 후 몇 달간 나를 둘러싸고 있던 많은 물건을 버렸다.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 오래된 식기류, 조잡한 증정품, 판촉용 볼펜들, 금이 간 화분과 그 외 잡다한 온갖 것들. 매일 버리고 버리기를 반복했지만 지나온 삶의 부산물은 어딘가 숨어 있다 끝도 없이 나왔다. 이토록 많은 것을 짊어지고 살았으니 등과 마음이 굽은 것은 당연해 보였다.
잊고 있던 추억의 물건들도 꺼냈다. 편지, 인형, 다이어리, 빛바랜 종이 사진들. 학창 시절 해변에서 주운 조개껍데기는 여전히 하얗고 예뻤다. 하지만 첫 직장에서 찍은 단체 사진을 보고는 의아함이 들었다. 이것이 과연 나의 추억일까. 아무렇지 않게 주말에 불러내 다 같이 등산을 하고 새벽까지 술을 마시는 것으로 애사심을 증명하던 시절이었다. 어찌할 바를 몰랐던 스물다섯의 내가 산 정상에서 억지로 웃고 있는 모습을 본다. 나는 잠시 사진을 보다가 힘을 주어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쓰레기통에 던져진 지난 불편한 조각들에게 잘 가, 안녕을 고하니 왠지 모를 후련함이 밀려왔다.
내 것이라 믿었던 것들을 다시 보고 비울 때마다, 그저 존재하는 자연 앞에 설 때마다 나는 멈춘 것이 아니라 나아가는 듯 느꼈다. 세상의 잣대에 눌린 나만의 소망이 싹을 틔우고 묻혀있던 나만의 근간이 천천히 대지를 뚫고 자라는 듯했다.
바라보고 비우자 비로소 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