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제 생일입니다. 그래도 세상을 못 살지는 않았는지 여러분들이 축하를 전해주셔서 나름 감동적인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외동딸이 아빠 생일이라고 꼭 자기가 돈을 내어 사는 저녁을 사주고 싶다고 하여 맛있는 저녁도 얻어 먹었지요.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아직도 생일이 다 가지도 않은 늦은 시간부터는 다시금 노트북을 켜고 이번 달에 출간될 책의 두번째 교정지를 놓고 일을 하고 있답니다.
솔직히 생일이라고 해서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도 아니고 형식적인 특별함이나 다름은 없지요. 그래도 남들 다 휴가 갈 정도의 더운 시절에 에어컨도 없던 때 저를 어찌 낳고 산후조리를 하셨을까 하는 생각에, 자주 하려고 노력하는 전화이지만 생일이면 아침 9시에서 10시 사이에 어머님께 감사 인사를 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특히 이번 해는 생일이 일요일인지라 하루 종일 가족들과 하는 생일을 보냈다는 점 정도는 특별하겠네요.
그래도 반백세가 넘고 보니 어렸을 때의 생일과는 좀 다른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생일이 되면 나를 울컥하게 만드는 몇가지가 있습니다.
1. 아.버.지. 그립습니다.
개인적인 직업 상 남들의 얘기를 많이 들어주고, 공감하고, 위로하고, 힐링을 합니다. 그래도 심리학 전문가라는 직업을 가진 상담 선생님 개인도 사람인지라 나름대로의 개인적 경험에 기초한 차이가 있습니다. 모든 내담자 분들의 얘기가 가슴 아프지만, 특히 아버지와 관련된 얘기를 할 때면 유난히도 울컥하고 공감을 많이 하게 됩니다.
어디 가서 ‘당신 인생에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저는 항상 ‘저희 아버님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대답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속 썩이던 시절, 미래에는 “심리학”이 반드시 필요한 시절이 올 것이라고 말씀 주셔서 결국 심리학을 전공하고 상담 선생님이 되도록 하는 방향을 정해주신 분이시기도 하지요.
저의 아버님은 벌써 돌아가진지 만 20년입니다. 딱 20년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올해 생일에 그리도 아버지 생각에 더 그리운 것 같습니다. 평생을 교육계에 계셨고, 인자하시고 너그러우셨던 것은 분명하나 ‘교육자로서의 엄격함과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계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충분한 마음의 준비나 예상조차도 전혀 하지 못했던 못했던 50대에, 환갑도 못 넘기시고 지병으로 보내드리고 나니 자식으로서는 평생의 한이 되었답니다. 그래서 아직도 다른 분들의 칠순 잔치나 환갑잔치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짠~합니다. 그래서인지 생일이 되면 유난히도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정말 그립습니다.
2. 사람은 모두 마음속에 후회의 싹을 품고 산다.
개인적으로는 50이 넘고 나서 맞이하는 생일의 또 다른 느낌은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조망하고 리뷰하는 것이 더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크게 못 살지는 않았지만 또한 크게 성공한 사람 같지도 않은지라 생일이 되면 여러 가지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생일이라고 마냥 즐기고 좋아하는 것은 어린 시절의 특권(?)이었다고 생각되며, 그만큼 살아온 시절을 되돌아보아 아쉬움과 후회도 가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살아온 날보다는 살아갈 날이 더 적게 남았다는 생각 때문일 것으로 추정해 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지만 완벽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이와 같은 완벽하지 못함 또한 인간의 핵심적 덕목이다 보니 되돌아보면 항상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남지요. ‘그때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과 더불어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이라는 물음표가 항상 따라다닙니다. 그와 동시에 아직도 못난 남편이자 부족한 아빠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가족들에게 가장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때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갈 걸 그랬나?’, '심리학으로 비즈니스 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무리수였던 것일까?', ‘그때 좀 더 고분고분하게, 아니면 약간은 비굴하게(?) 고객사를 응대했어야 하나?’, ‘그때 새로운 시도를 과감하게 했어야 했던 건가?’ 등등 많은 생각들이 들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묵묵히 함께하고 지지하며 응원해주었던 가족에 대한 감사함과 미안함이 마음속에 가득하게 됩니다. 진심 감사합니다!
3. 내 인생 최고의 생일선물!
제 딸이 저한테 물어보면 ‘아빠가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우리 딸이야!’라고 말해줍니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입니다. 우리 딸은 세상에서 제가 세번째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딸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저의 배우자입니다. 20대에 저를 만나 이제 어언 30년을 항상 옆에서 지켜주었던 그분을 더 사랑합니다. 그래서 항상 감사하고 미안합니다. 그런데 그분도 첫번째는 아닙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저의 “어머니”입니다.
언제 불러봐도, 언제 들어도 가슴 한켠 울컥하고 먹먹해지는 마음과 감정이 드는 “어머니”라는 단어의 느낌처럼, 저에게도 어머니라는 존재는 특별하고 또 특별합니다. 항상 따뜻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시고, 항상 누군가를 걱정하고 돌보시는 모습으로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베푸는 마음을 가르쳐주신 분이 저의 어머니이십니다. 그리고 그런 어머님이 저에게 최고의 생일 선물을 주신 분입니다.
"엄마가 살아가는데 희망과 기쁨을 주며 우리 집의 기둥인 금쪽보다 더 귀한 사랑하는 노주선 현주 수빈이 고맙고 많이 사랑해"
십수년전 제 생일날 같이 저녁 먹으라고 주신 용돈 봉투입니다. 저 봉투에 쓰여진 글 속에 저의 어머니가 살아오신 삶의 방식과 원칙이 모두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는 특별한 표현이 있는 것도 아닐 수 있고 아주 멋스런 글씨체는 아닐지 몰라도 저에게는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그날 밤 혼자 저 봉투를 보면서, 왠지 모를 눈물과 울컥하는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
저 봉투는 항상 제 책상에서 제 손 제일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일이 있을 때에도, 그리고 힘든 일이 있을 때에도 저 글귀들을 보면서 다시금 마음을 잡는 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저 봉투, 그리고 거기에 쓰여 있는 저희 어머니의 말씀이 저를 성장하고 하고 현재의 나를 만들어준 가장 크고 의미있는 선물인 것 같습니다. 어머니! 진심 감사합니다!!
어느덧 글을 쓰는 동안 시간적으로는 제 생일은 끝나고 다른 가족들은 다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별로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생일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마음이 남다릅니다. 그래도 다시금 아주 진지하게 ‘아버지, 그립습니다!’, ‘내 가족들 고맙고, 미안합니다!’, 그리고 ‘어머니, 정말 사랑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라고 말하고 나니 좀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되는 것 같습니다.
다음번 생일에도 제 사랑하는 가족들과 제 주변에서 저를 축하하셨던 분들과 함께 축하와 따뜻한 말 한마디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마음을 먹고 나니 다음 생일까지 부지런히 살아볼 힘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