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박사 레오 Apr 13. 2020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

상담선생님도 사람입니다

1. 22년 전 오늘


22년 전 1998년 4월 13일을 저는 정확히 기억합니다. 그날은 바로 제 딸이 태어나던 날이기 때문입니다!^^


오전부터 시작된 산통에 부리나케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아직은 좀 더 있어야 한다면서 오후에 다시 보자는 의료진의 피드백에 당시 박사과정이었던 저는 학교에 가서 급한 일만 빨리 처리하고 오겠다고 하며 병원을 나섰습니다. 번갯불에 콩 볶아먹는다는 말처럼 아주 시급한 몇 가지만 처리하고, 며칠 못 나올 수도 있다는 얘기를 던지고 다시 병원으로 달려왔습니다.


아뿔싸.. 그 사이에 이미 분만실로 들어가 버렸더군요..ㅠㅠ 생전 처음 출산을 맞이하는 예비 아빠로서 분만실에 들어가는 부인에게 무엇이라고 해주어야 하나... 고민도 많이 하고 준비도 많이 했었는데... 그래도 손 꼭 잡고 들어가는 모습을 당연히 보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을 놓치고 말았습니다ㅠㅠ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두려움과 걱정 가득하게 분만실에 홀로 들어갔던(물론 어머님이 계시기는 하셨지만..) 저희 집사람에 대해서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입니다.  


이후 5시간을 분만실 앞에서 초조한 발걸음으로 왔다 갔다 하며 꼬박 서서 기다렸습니다. 혹자들은 '네가 그렇게 서서 기다린다고 애가 쉽게 나오냐?'라고 구박하는 경우도 있으나 직접 분만을 하는 제 배우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솔직히 그때는 아무 생각 안 났음! 나중에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 보니 그랬던 것 같음!).


갑자기 분만실 인터폰이 울리는 순간 우연찮게 제가 그 인터폰을 받았습니다. 'OOO님 보호자분, 애기 나갑니다!'라는 말에 그러잖아도 쿵쾅거리던 심장이 정말 터질 듯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다시금 생각을 해 보아도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심장이 빨리 뛴 날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분만실 문이 열리고 강보(?)에 싸여서 나온 제 딸의 첫 모습을 보았습니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정말로 손가락과 발가락이 다섯 개씩 있는지부터 세어보게 되더라고요.


그때의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그 감동은 평생 잊을 수가 없답니다. 그리고 조금 후 침대에 실려 나오는 제 집사람을 보는 순간, 계속해서 울컥했던 마음에 결국 눈물이 터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진짜 고생했어요ㅠ'부터 시작해서 왠지 '미안해요'와 '고마워요' 등등 말로 형언하 수 없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말로는 '고생했어.. 고생했어..'만 반복하고 말았답니다.



2. DINK족이고 싶었습니다.


당시에는 나름 신세대였던 저도 나름대로는 비혼도 생각해보고 결혼도 생각해보는 등 여러 가지 잡생각들을 하기도 했었지요. 그런데 분명한 것은 '결혼은 하더라도 아이는 안 낳을 수 없나?'라는 생각은 분명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저를 키우신 부모님들을 보면서 너무 힘들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과연 내가 아이를 낳아서 책임질 수 있을만한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원래부터 아이들을 좋아하기도 했고, 아이들도 저를 잘 따랐으며, 집안 행사가 있으면 아이들은 제가 돌보는 것으로 다들 기대할 정도로 아이들과 잘 지내는 편이었습니다. 이런 외적인 행동을 보이는 제가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에 사람들은 믿지 못하는 눈치였지요. 하지만 아이가 주는 심리적 부담감이나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무한 책임감을 어찌 안 느끼겠습니까?!


그래도 아이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을 때 한편 부담스러웠으나 기뻤으며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노력을 한다고는 했습니다. 내가 언제 DINK족을 꿈꾸었는가라는 생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으며, 10개월을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아빠였지만 마음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몸이 무거워 불편해진 배우자를 돌보는 것으로만 해도 벅찰 정도였지만..



3. 책임감과 부담감을 능가하는 선물의 가치


제 업의 특성상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내용의 글을 씁니다. 그 안에는 비혼 주의자를 위한 글('혼자라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도 있으며, 아이를 낳지 않고 싶어 하는 DINK족에 대한 도움글도 있습니다. 그 글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내용은 '하고 싶은 대로 해라!'입니다. 결혼을 하던 아이를 낳던, 억지로 혹은 타인의 강요에 의해서 하지 말고 본인이 원하는 대로 혼자 또는 배우자와 상의해서 결정하고 실행하면 되다는 것입니다. 단, 본인의 결정이 존중받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타인들의 결정을 비난할 것도 없으며 강요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아이가 저에게 있어서 새로운 활기와 원동력이 되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어렵고 지치며 힘들 때 혹은 포기하거나 좌절하게 될 때, 아이를 보면서 다시금 기운을 내게 하는 원천인 것은 확실합니다. 반면 때로는 아이가 없었더라면 좀 더 자유롭게 부담 없이 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 같은 부담감과 책임감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래도 모두를 종합해서 판단해보라고 하면... '우리 딸이 있어서 행복합니다!'가 제 결론입니다!^^ 게다가 이와 같은 행복은 그 어떤 것과도 비길 수 없는 독특하고 고유한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는 누군가를 설득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저 스스로 느끼는 개인적인 감정입니다. 타인에게 '너도 꼭 느껴봐!'라고 권할 것도 아니며, '너도 꼭 느껴봐야 해!'라고 강요할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신비로운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아이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능가하고도 남을 만큼의 가치와 행복이라고 설명하면 좀 감이 오시려나...?



4. 감사합니다!


아이를 가지고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부모의 감정이라는 것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부모들끼리는 별로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들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우나 모두 각자의 색깔과 느낌으로 경험하는 독특한 감정이니까! 특히 오늘처럼 우리 딸이 태어난 것을 기념하는 날이면 이와 같은 감정들이 더욱더 북받쳐 오릅니다.


이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저희 어머님이십니다. '우리 엄마는 어떻게 우리를, 그것도 셋이나 되는 자식들을 키우셨대?ㅠㅠ'라는 울컥함이 가장 먼저 옵니다. 그래서 제 딸 생일이면 저희 어머님께 전화를 드립니다. 말하는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엄마에게 통화할 때면 무뚝뚝한 아들이 되어버리는 제 표현으로 '그냥 감사해서요..'라는 말로 제 모든 감정을 대신합니다.


또한 저희 아이가 어렸을 때 엄마와 아빠가 모두 직업이 있는 관계로 항상 아이를 돌보아주셨던 저희 장모님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게 됩니다. 저희 딸이 비교적 성격이 좋은 편이고, 환하고 밝게 자라나도록 해주신 일등 공신이 어머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 딸 때문에 행복하다고 생각할 때마다 어머님을 같이 떠올린답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보다도 저희 아이를 열 달이나 품고 있느라고 고생했고, 스무 살이 넘도록 항상 사랑과 애정으로 돌본 저희 집사람에게 가장 감사합니다. 항상 좋은 엄마로서 적절한 공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행복한 아이로 자라게 해 주었으며, 그 어려운 영유아기와 청소년기에도 좋은 엄마로서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훌륭하게 소화해준 우리 딸의 엄마에게 마음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글 머리에 있는 사진은 제 딸과 저의 발(?) 사진입니다. 어느 날 외출하려고 나가던 길에, 서로 짠 것도 아니고 상의한 적도 없는데, 똑같은 스타일의 신발과 청바지를 입은 모습을 보고 소름이... '아.. 이래서 DNA가 무서운 거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도 제 스마트폰 바탕화면에 배경으로 지정하고 매일 보면서 기운을 얻게 되는 사진입니다.


물론 감사한 분들도 많고 여러모로 도와주신 덕에 이렇게 저희 딸이 무사히 22번째 생일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우리 딸에게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마음 깊이 감사함과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 보면 '정말 아빠는 하는 일이 없었네ㅠ'라는 반성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 딸 OO이~ 너무 잘 커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는 그 존재만으로도 아빠한테는 더할 나위 없는 특별한 선물이었습니다!

네가 태어났을 때부터 너는 아빠에게는 행복과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우리 딸에 대해서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딸이 행복하도록 아빠가 최선의 노력을 다할게요~^^

사랑합니다. 우리 딸! 진심으로 생일을 축하합니다^^



한없이 부족한 아빠 드림



https://brunch.co.kr/@mindclinic/252





이전 03화 전문가의 품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