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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박사 레오 Dec 16. 2020

잘못된 마음 습관. 라벨 붙이기

심리학자가 읽어주는 사람 이야기

Photo by Ben Sweet on Unsplash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심한 우울장애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끔 보면 양극성 장애 같은 생각도 듭니다. 때때로는 분노조절 장애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대체 어떤 것부터 치료를 해야 하는 거죠?'


'선생님은 어떤 치료적 접근을 사용하시나요? 인지행동적 접근이 좋다고 하던데요..? NLP가 최신이기는 한 것 같던데 충분히 검증된 치료법인 가요?'


(리더십 강의 중 강사의 직업을 알게 된 수강생 중 한 분이 쉬는 시간에 오셔서..)

'박사님, 정말 반갑습니다! 그러잖아도 요즘 제가 업무 스트레스가 많아지면서 우울증에 걸린 것 같았거든요!! 저랑 담배 하나 피면서 치료 좀 해주세요~'



1. 전문 용어가 주는 무거움


최근에는 상담이나 심리학이 보편화 및 대중화되고, 인터넷이나 유튜브를 통한 정보도 넘쳐납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경우에는 내담자분이 미리(?) 심리치료나 상담에 대해서 많은 정보와 사전 학습(?!)을 하고 오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증상에 대한 연구와 진단까지도 어느 정도 하고 오시는 경우도 있으며, 인터넷이나 유튜브에서 보았던 용어들을 사용하시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이와 같은 접근이 과연 좋은 것일까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며, 부작용이 더 많습니다. 

정확한 진단 절차를 거치지 않은 진단명은 자신의 증상이나 문제를 보다 심각한 것으로 느끼게 하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일상적으로 겪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 중 하나인데, 이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오는 경우들이 흔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의 두 문장을 비교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1) '저의 우울증이 심각해지는 것 같습니다. 내적인 우울감이 더 심화되고 있으며, 이전에 비해서 점차로 심각해지는 것 같습니다'

2) '요즘 기분이 우울해지는 일이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지난주에 비하여 좀 더 심해진 것 같습니다'

1) 번과 2) 번처럼 생각하는 경우 기분이 어떻게 다를까요?

1) 번이 훨씬 더 심각하고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쉽습니다. 

특히 실제로 알고 보면 우울증이 아닌 경우라면 1) 번처럼 생각하는 것은 사실에 부합하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증상을 더욱 심각하게 느끼게 하여 마음의 고통만 불필요하게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2. 라벨링이 주는 이점


그렇다면 왜 이런 진단명이나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일까요?

이는 두 가지 정도 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진단명 등으로 라벨링을 하는 경우 명쾌하고 정리되는 기능이 있습니다.

애매하고 모호한 상태를 세부적으로 기술하는 것보다는 이미 정의되고 공식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명쾌하게 정리되는 느낌을 주게 됩니다. 

'마음이 힘들어ㅠㅠ', '기분이 안 좋아ㅠㅠ', '우울한 것 같아ㅠㅠ'라고 말하기보다는 '우울증'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명확하고 분명해 보입니다. 

그래서 구구절절 세부적인 내용을 설명할 필요 없이 한 단어로 이슈의 현상, 문제점, 그리고 관련된 요소들을 한꺼번에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두 번째 이점은 지적인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마음이 힘들고 우울한 기분이 들어ㅠㅠ'라는 표현은 실제로 우울감을 느끼게 합니다. 

반면에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우울증의 한 증상으로서...'라고 생각하는 순간 좀 더 객관적이고 지적인 분석이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지적인 접근은 실제로는 감정을 생생하게 느끼지 않게 하는 효과를 가지게 됩니다. 

즉, 실제로 우울한 것보다 덜 우울한 것으로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3. 라벨링이 주는 속임수


라벨링이 주는 이점들은 곧 라벨링의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만약 정식 진료를 받거나 전문 심리검사를 받지 않았다면 '우울증'이라는 진단명을 내릴 수 없습니다. 

또한 우울증이라고 하더라도 경도, 중등도, 중증의 우울증 등 세부 우울증 진단으로 나누어지며, 각 진단에 따라서 그 내용이나 증상은 차이를 보입니다. 

물론 치료 방법이나 접근도 다릅니다. 


혹은 직장 내 상사나 혹은 업무 상 관계자들과의 갈등이나 대립은 흔히 발생할 수 있는 현상입니다. 

상사의 지시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혹은 기분 나쁜 일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자연스럽고 발생 가능한 일반적인 대인관계 상 갈등에 대해서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판단하고 지각하는 순간 문제는 심각해지면 엉뚱한 문제로 변질됩니다. 

소통이나 상호 간의 공감을 통해서 해결 가능한 문제에서 상당히 심각하고 진지한 처벌이 부과될 수 있는 법적인 문제로 변질됩니다. 


또한 라벨을 이용한 지적인 접근을 한다고 해서 실제 감정의 해결이나 해소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건강한 감정 해결이나 발산을 막는 부작용을 보입니다. 

예를 들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동시에 나를 사랑해주셨던 부모님 중 한 분이 돌아가시는 경우 당연히 고통스러울 정도로 슬플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를 '삶과 죽음의 의미는 무엇이며, 기독교에서 보는 죽음의 의미와 불교에서 보는 죽음의 의미를 비교하는 종교철학의 견지에서 그 의미를 비교하고 분석하기' 등과 같은 지적인 분석과 논리적 접근을 취한다면 일시적으로는 생생하게 느껴지는 심리적 고통을 피할 수는 있습니다. 


이는 '지적인 접근을 통하여 감정을 통제하고 인식하는 것을 피하는 방어기제(이지화, intellectualization)'입니다. 

보통 학력이 높거나 회사에서 높은 수준의 지위를 가진 분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방어기제의 일종입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감정적 해소나 해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결국 부정적인 감정이 축적되어 계속해서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거나 전반적인 심리적 활력이나 에너지가 저하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4. '공황장애'와 '화병' 사이


한동안 TV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출연하여 '공황장애'를 겪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진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문가의 관점에서 보면,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이 소위 '연예인 차'라고 불리는 밴을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행사를 하는 것이 납득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공황장애'를 겪게 된 과정이나 세부 증상을 보면 핵심적인 공황장애 증상을 빠진 채 전문가 관점에서 보면 차라리 '화병'에 가까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공황장애'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나타난 부작용 중 하나가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있는 경우 이를 모두 '공황장애'로 착각하여 심각한 정신과적 질병에 걸렸다고 괴로워하거나, 

혹은 (나쁜 의도를 가진 매출 중심의 일부 의료진들의 경우)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있는 경우 "공황장애"로 몰아가 과잉진료나 과잉처방을 하는 경우들도 보았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해서 모두 '공황장애'는 아니며, '우울한 기분'이 든다고 해서 모두 우울장애는 아닙니다. 


만약 자신이 정말로 심리장애에 해당할 정도로 심각하고 고통스럽다고 하면 이는 전문가와 상의하고 정확한 진단 절차를 받는 것이 현명한 방법입니다. 

인터넷이나 유튜브의 내용들은 참고하라는 것이지 그것을 보고 스스로 정확한 진단이나 치료를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와 같은 비전문적인 접근이나 어설픈 해결책이 문제를 심화시켜서 후일 더 증상이 악화된 다음에 전문가를 찾게 되거나 혹은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치료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현대는 과잉 정보화 시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너무 많은 정보들이 넘쳐납니다. 

이로 인한 부작용이나 문제들도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대의학의 가장 큰 적은 '좋은 치료제'나 '탁월한 치료 방법'이 개발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현대의학의 가장 큰 적이며 환자분들의 증상이 치료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compliance(처방에 따르기)의 감소'입니다.

복약 처방이나 치료 방법 권고에 대해서 유튜브나 인터넷을 통한 자체적인 검열(?!)을 거친 변질된 자가 처방이나 의사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라벨링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필요하게 증상을 심각하게 지각할 필요도 없으며, 건강한 해결방법을 피하는 방법으로 활용하는 것도 적절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심각한다고 생각하면 가장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가를 찾거나, 혹은 있는 그대로의 증상을 (일시적으로 고통스럽더라도) 직면하거나, 혹은 감정적 문제는 감정적 문제에 적합한 해결방법을 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 마음의 건강을 지키고 유지하며, 내 마음을 보호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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