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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잇터 Aug 04. 2024

노부부가 만드는 텐동

후쿠오카 텐동 맛집


여행을 떠나기 전 내가 하고 싶은 여행 컨셉에 대해 동료 아트 디렉터에게 설명한 적이 있다. 


어딜 바쁘게 돌아다니는 여행 말고요... 점심 11시까지 자다가... 슬리퍼를 끌고 동네 마실을 가듯 나와서 슥 돌아다니다가 눈에 띄는 고즈넉한 식당 안으로 들어가요. 문을 열면 풍경 소리가 딸랑 하고, 그 소리에 노부부가 저를 돌아보는 그런 식당에서 밥을 먹는 거예요... 그런 여유로움이 이번 여행의 컨셉이었으면 좋겠어요.

진심으로 그런 곳을 원했지만 진심으로 추천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보다 일본에 더 진심인 그녀는 텐동집 하나를 추천해줬다. 노부부가 오랫동안 운영하시는 곳이고, 로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라 한다. 안 갈 이유가 없다. 아마 내가 원하던 여행 컨셉과 가장 잘 맞는 곳일지도 모른다. 설렌다.


나와 날씨 요정 사이에 큰 인연은 없는 것 같다. 여행 첫날부터 하늘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결국 둘째 날 아침부터 뭐가 그리 서러웠는지 무서울 정도로 하늘은 울기 시작한다. 굵은 빗방울들이 아주 빠른 속도로 내 우산 천장과 아스팔트 바닥에 내리꽂힌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래도 텐동은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비의 포화를 뚫고 전진한다.


노부부 사장님이 계시고 로컬들의 맛집이라 그럴까? 한국어 메뉴판이나 안내는 따로 없다. 그저 눈치껏 시킨다. 남자 사장님은 머리와 눈썹까지 하얗게 서리가 내리셨다. 주문받은 메뉴를 확인하시더니 아주 익숙하지만 아주 느린 속도로 튀김 반죽에 재료를 담근다. 그리고 세월이 잔뜩 묻은 큰 가마솥에 튀김을 하나씩 빠트리신다. 빗방울이 바닥에 튀기는 소리와 가마솥에서 단호박, 새우 등이 튀겨지는 소리는 구별할 수 없다. 그 소리들은 서로 공명되어 내 마음 속으로 훅 들어온다. 


계속되는 PT와 격무로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떠나온 후쿠오카. 오랫동안 한 자리에서 텐동을 만들고 손님에게 대접하는 사장님들을 만났다. 그들에게 지친 기색은 없어 보인다. 보지도 않고 슥슥 튀김을 튀겨내는 그런 달인의 모습이 아니다. 하나하나 무심히 집어 들고 천천히 그리고 묵묵히 튀김을 튀기실 뿐이다. 29살 INFP 사회 초년생은 그 사장님들에게서 일을 대한 태도를 배운다. 급하게 하면 지치고 지치면 오래하지 못할 것 같다.


갓 튀겨진 튀김이 올라간 텐동을 받아든다. 급하게 먹지 않는다. 사장님이 뒤에 오시는 손님들의 튀김을 튀기시는 모습을 오래 보고 싶었으니까.


렇게 느긋하게 먹다가 뒷손님들을 위해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값을 치르고 잔돈을 다시 한 번 세어 보며 인사를 하고 가게 문을 열고 나온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시는 이 프로페셔널들을 다시 만날 날이 올까. '다시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여기서 느꼈던 감정은 잊지 말아야지. 서울에 돌아가면 나도 저들처럼 일을 대해야지.' 하는 작은 다짐과 함께 나는 빗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후쿠오카 텐야스 (*최근에는 한국어 메뉴판도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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