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오 온센 도서관
후쿠오카에는 유독 한국 사람이 많다. 단체 수학여행을 온 것마냥 여기저기서 한국말이 들린다.
물론 나도 그 중 하나다.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에서 한국말을 듣고 있자니 명동 혹은 홍대처럼 느껴진다.
한국을 떠나온 곳이 유사 한국이라니! 내 여행 속 틈을 있는 힘껏 벌려본다. 이번 여행에서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후쿠오카로 떠나왔지만 후쿠오카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목적지는 나가사키와 다케오 온센.
시작이 절반이니 기차표부터 끊는다.
일본 기차 여행 묘미인 에키벤을 먹어 보려 했으나 늦을까 조바심이 난다. 10명 남짓 서 있는 줄을 뒤로 하고 하얀 기차에 발을 내민다. 시간에 딱 맞춰 신칸센은 부드럽고 조용하게 출발한다.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다.
빠르게 스쳐가는 풍경들 속에는 주택들이 보인다. 그 속에 저마다의 다양한 삶이 있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새삼 세상은 넓고 삶은 많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소도시 '다케오 온센' 역에 내린다.
다케오 온센에는 3천년 넘은 커다란 나무와 세련된 도서관이 하나 있단다. 그 곳에 가볼 것이다.
다케오 온센 마을은 생각보다 더 작다. 걸어서 3-40분이면 한바퀴를 돌 수도 있을 것 같다.
캐리어는 '코인 라카'에 넣어두고 고목을 향해 걷는다. 여름이다. 푸른 녹음이 구성지게 내려와 있고, 땀은 목줄기와 등줄기 사이로 줄줄 흐른다. 고개를 넘어가니 절이 보인다. 그 절 뒤에는 3천살을 드신 할아버지 나무가 우둑하니 서있다. 굵은 몸통과 수없이 뻗어 나가는 가지만 웅장한 게 아니다. 그가 살아온 인생 또한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고작 29살된 인생도 길고 고달팠는데 3천년이라니. 한참을 바라보다가 내려온다.
내려오는 길목에는 도서관이 보인다. 츠타야 서점이 운영하는 도서관겸 서점이란다. 할머니 할아버지만 살 것 같은 조용한 마을 속 이국적인 건물이다. 그 곳엔 공부하는 젊은 학생, 자녀 둘을 데리고 온 부부, 책을 읽는 10대 소녀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누가봐도 한국인, 누가봐도 관광객인 나는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아 한국에서 공수해온 에세이 1권을 꺼내든다. 이름 모를 달다구리 프라푸치노 1잔을 시켜놓고선 2시간을 아낌 없이 녹여본다.
마음의 양식을 쌓고 이번엔 위장의 양식을 쌓기 위해 기차역 근처 우동집에 들어간다. 손님이 꽤 많다. 맛집인가? 나는 사장님에게 손짓 발짓해가며 단지 특별할 거 없는 기본 우동 한그릇이면 된다는 의사를 전달하려 애쓴다. 내 뒤 손님과 식사 중인 손님의 시선이 느껴진다. 내 옆에 앉은 5살짜리 여자아이는 내가 신기한 지 자꾸 힐끔 거린다.
이 곳에서 먹은 음료 1잔과 한 그릇의 음식은 지극히도 평범하고 노말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외국인 혹은 이방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렸으니까. '쟤는 여기에 왜 왔을까' 라는 시선을 한 몸에 받았고, 그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에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도 했다. 그제서야 내가 여행을 떠난 목적을 찾아 낸 것 같았달까. 아무도 나를 모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유왜 하방감을 제대로 느꼈다. 스트레스와 피곤함으로 경직되어 있던 내 정신과 마음은 현지인들 사이에서 먹은 프라푸치노와 우동 한 그릇으로 싹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