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스 포장마차에서 만난 인연
저는 평생을 INFP로 살아왔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습니다.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고 관심받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프레임을 벗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있습니다. 해외여행입니다. 아무도 저를 모르는 곳으로 가면 자유를 느끼고 해방감을 느낍니다. 처음 보는 사람과 스몰 토크도 유창하고, 같이 줄 서 있는 여행객과도 친해져서 밤에 맥주 한 잔을 할 수 있을 정도죠.
이번에도 여행 속 그런 소중한 우연을 만났습니다. 저보다 4살은 많은 형님이셨고, 각자 홀로 온 여행이라 같이 먹으면 더 좋은 야키니꾸를 먹으러 갑니다. 어차피 계산은 N분의 일거라 눈치 보지 않고 시킵니다. 제가 먹어보고 싶었던 우설부터 대창, 갈빗살등 막 시킵니다. 어색한 분위기는 하이볼과 맥주 한두 잔이면 됩니다. 그 뒤로는 각자가 하는 일에 대해 얘기하고 궁금한 점을 물어봅니다. 각자가 늘 해왔던 대답을 형식적으로 합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친해졌고, 형님은 제가 동생인 걸 알아서일까요 계산은 자기에게 맡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빚 지고는 못 사는 성격에 2차는 제가 사기로 합니다. 적당히 먹고 나카스 포장마차 거리로 걸어갑니다. 다들 한두 잔씩 먹고 금방 일어나서인지 회전율이 좋습니다. 우리 차례가 금방 옵니다.
좁고 불편하고 깨끗하지도 않아 보이지만 포장마차 감성이라며 눈 감아주기로 합니다. 자리에 앉아 또 이것저것 시켜봅니다. 분위기는 와글와글... 많은 일본인들 사이에 또래로 보이는 한국인을 발겹합니다. 그렇게 저희는 눈이 맞았고 파티원으로 공식 초대합니다. 우리 셋은 한참 동안 맥주와 라멘, 꼬치등을 시켜 놓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혼자 왔지만 혼자 온 게 아니게 된 남정네 세 명은 그저 즐겁기만 합니다. 하지만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일까요, 사장님의 태도가 급 차가워집니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골목으로 3차를 떠납니다.
이번엔 2층 선술집에 자리를 잡고 이런저런 메뉴들을 시킵니다. 라멘 한 그릇과 교자, 꼬치와 맥주들이 한 상 푸짐하게 나옵니다. 취기가 오를 대로 오른지라 기분도 좋고 제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단지 2차에서 만난 (1살 어린) 동생이 무심코 피식 대학의 김민수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했고, 제가 광고 촬영장에서 만난 김민수 님과 같이 찍은 사진을 보여줬고, 자기도 이 광고를 되게 재밌게 봤다는 그의 감상에 제 어깨가 살짝은 올라갔고, 그 광고 카피라이터가 저라는 사실에 동생이 저를 신기해하며 쳐다봤다는 사실 정도만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12시가 넘어갈 즈음, 가게 마감이라 또다시 자리를 정리합니다. 형님과 동생은 어느새 친해졌고 후쿠오카에서 제일 핫한 클럽을 가겠다며 어깨동무를 합니다. 왜 그때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 MBTI가 INFP라는 게 문득 떠오릅니다. 술에 취했지만 클럽을 가면 내 에너지를 몽땅 뺏기고 말 거라는 이성적 생각이 듭니다.
그들과 서울에서 보자며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 헤어집니다. 연락처를 주고받았지만 그 인사가 마지막이었습니다.
여행 속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더 긴 인연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이렇게 하룻밤으로 끝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저는 후쿠오카의 마지막 밤을 떠올릴 때마다 제게 이유 없는 소고기를 사주셨던 형님이 생각날 것이고, 김민수 님을 좋아하는 순수한 동생이 생각날 테니까요. 그들과는 헤어졌지만 제 머릿속 추억과는 쉽게 헤어지지 못할 겁니다. 그저 이 여행을 떠올리며 그들의 안녕과 행복을 빌어주고, 한 살이라도 더 젊었던 저를 회상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