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멘 한 그릇
후쿠오카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7박 8일 동안 다케오 온센, 나가사키를 거쳐 다시 후쿠오카로 돌아왔다. 길게 느껴졌던 여정이었지만 돌아보면 순간처럼 짧았던 시간이었다. 아쉽지만 괜찮다. 이 아쉬움이 다음 여행의 새로운 동력이 될 테니까. 남겨진 아쉬움 덕분에 다음엔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보다 긴 여행 끝에 입을 옷이 부족해졌다. 근처 유니클로에서 티셔츠 하나를 사서 입고, 게스트하우스의 좁은 침대에 몸을 뉘인다. 그리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이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할 음식은 무엇이 좋을까? 고소한 소 기름이 둥둥 떠 있는 모츠나베? 쫄깃한 식감의 붓카게 우동? 아니면 한국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카이센동을 다시 한 번 먹어야 할까?
고민은 점점 더 깊어지고, 시간이 흘러간다. 고민은 고민을 불러오고, 그 고민에 빠져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게 분명하다. 발길이 닿는 대로 나카스 강변을 걸어본다. 낯선 도시지만, 며칠 동안 걸어다니며 길과 건물들이 점점 익숙해졌다. 그러다 문득 눈에 들어온 라멘 가게. 지나치면서 몇 번 본 곳이다. 이 음식 저 음식 고민했지만, 결국 답은 정해져 있었다. 라멘, 그것도 돈코츠 라멘. 마지막 식사라면 주저 없이 선택할 그 맛.
가게로 들어서자 개성 있는 일본 커플이 앉아있고, 내 뒤로는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직장인 두 명이 들어온다. 현지인들이 찾는 가게라면 기본적인 맛은 보장된다는 안도감이 든다. 메뉴판을 볼 필요도 없다. 내가 주문할 것은 돈코츠 라멘 한 그릇과 '나마비루' 한 잔. 라멘이 나오기 전,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목구멍에 들들들 들이 붓는다. 곧이어 나온 진한 돈코츠 라멘. 국물의 찐득함이 마치 내 마음 속 아쉬움의 농도처럼 깊다. 그리고 그 한 그릇의 라멘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마무리해준다. 마지막 날이라 비싼 음식을 선택했더라면 분명 후회했을 것이다. 오히려 소박하지만 가장 애정하는 이 라멘 한 그릇을 고른 게 좋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다시 한 번 걷는다. 밤거리에서 캐리어를 끌고 숙소를 찾아가는 한국인들이 꽤 보인다. 여행이 끝나가는 시점에선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제일 부럽기 마련이다. 내게는 익숙해진 이 도시 풍경이 그들에게는 얼마나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올까. 그들은 얼마나 설레는 마음으로 이 여행을 시작하고 있을까. 그들은 여행 속에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어떤 추억을 쌓고 돌아올까라는 INFP적 사고에 빠진다. 그렇게 한참 동안 후쿠오카의 밤거리를 눈에 담으며, 이번 여행을 마무리한다. 여행은 마무리 하지만 서울에 가서 REFRESH한 마음으로 나는 또 나만의 삶을 시작할 것이니, 사실은 마무리인 동시에 시작인 셈이다.
후쿠오카 안녕. 나가사키 안녕. 다케오 온센 안녕!
잘 먹었고, 잘 놀다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