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란 라멘 / 잇소우 라멘 / 쿠루메 타이호
이전 글에서도 살짝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만, 죽기 전에 한 그릇의 음식을 먹어야 한다면 단연코 찐한 돈코츠 라멘입니다. 그만큼 라멘에 대한 제 애정은 남다릅니다. 특히 돈코츠 라멘의 발상지가 후쿠오카라고 알려진 만큼, 이번 여행 중 틈틈이 라멘을 즐기려 노력했습니다. 한국에도 이제 꽤 괜찮은 라멘집들이 많아졌지만, 오리지널의 맛은 쉽게 따라올 수 없겠지요.
[1] 이치란
나카스 거리 근처에 위치한 이치란 라멘 본점. 높고 커다란 건물을 보며 금방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 줄 또한 건물의 높이만큼 길었습니다. 끝없이 이어진 줄을 따라 1시간 30분을 기다린 후, 겨우 독서실 같은 좁지만 아늑한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아사히 ‘나마비루’ 한 잔과 함께 찐한 이치란 라멘이 나왔습니다. 윗입술에 하얀 거품이 묻은 채 맥주를 연거푸 들이켰습니다. 라멘이 나오자, 아무것도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국물부터 맛보았습니다. 미간에 주름이 가득 잡히는 찐한 육수의 맛. 입안 가득 퍼지는 그 풍미는 도파민을 마구 분출시킵니다. “아, 일본이구나!”
(이치란의 시그니처인 매운 소스는 뺐습니다. 맵찔이이기도 하고, 찐한 국물 맛을 온전히 느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2] 잇소우 라멘
제게 라멘은 ‘다다EAT선’입니다. 그렇다면 라멘 한 그릇을 여행의 한 끼 식사로만 치부해서는 안됩니다. 식사와 식사 사이의 간식 정도로 생각해야, 최대한 많은 라멘을 맛볼 수 있습니다. 점심을 먹고 2시간 뒤, 저녁 먹기 3시간 전이 딱 좋습니다. 후쿠오카 캐널시티를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추천받은 라멘집에 들렀습니다. 3시 50분, 애매한 시간대지만 여전히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샐러리맨들이 라멘을 열심히 먹고 있습니다. 이치란과는 차원이 다른 곳. 아주 고자극입니다. 들어서자마자 꼬리꼬리한 냄새가 강하게 후각을 자극합니다. 커다란 무쇠 솥에서 팔팔 끓는 육수, 하얀 조리복과 두건을 착용한 사장님과 점원들이 바쁘게 움직입니다. 주문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라멘이 나옵니다. 탁한 베이지색 국물에 뽀글뽀글 올라오는 거품들. 언제나 그렇듯 국물부터 떠먹습니다. 국물을 4-5번 연속으로 들이켜며 몸을 돼지기름으로 코팅합니다. 이건 로컬의 맛 그 자체. 돈코츠 라멘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맛이지만, 저는 면부터 국물까지 싹 다 비웁니다. 만족스러운 한 그릇입니다.
[3] 쿠루메 타이호
나가사키에는 라멘보다 짬뽕집이 더 많습니다. 짬뽕은 시카이로에서 해결했으니, 야식으로는 돈코츠 라멘을 먹어야 직성이 풀릴 듯합니다. 이번에는 로손으로 향합니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조리예 사진만 보고 가장 찐해 보이는 놈으로 골라옵니다. 야채와 국물 수프 두 개만 넣으면 되는 한국 컵라면과는 다르게, 일본 컵라면에는 여러 가지가 들어 있습니다. 파파고를 켜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는 조리법, 설명을 잘 따라 한 덕에 완성된 라멘, 아니 컵라멘. 면발은 컵라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제게 라멘의 핵심은 육수입니다. 그런데 이 녀석, 국물 맛이 만만치 않습니다. 찐함으로만 놓고 보면 가게에서 먹는 라멘과 견주어도 크게 밀리지 않습니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하니 말 다했습니다. 호스텔 2층에서 혼자 라멘과 하쿠슈 하이볼을 맛있게 털어 넣습니다.
로컬 맛집도 좋아하지만, 이치란 라멘도 여전히 사랑합니다. 요즘에는 관광객들만 가는 곳이라며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지만, 이치란 라멘 덕분에 라멘에 입문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 덕분에 한국에도 로컬 못지않은 라멘집들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이치란 라멘은 라멘이라는 음식에 대한 첫 시도를 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며, 라멘 좀 먹어 봤다는 저도 여전히 맛있게 먹는 집입니다. 라멘 덕후로서, 많은 사람들이 라멘에 더 많이 입덕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