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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잇터 Dec 29. 2024

비건은 아니지만

나물을 아주 좋아합니다. 

도시락을 싸다보면 느끼는 하나 있다. 반찬 색의 채도가 대부분 낮다는 거. 

제육볶음 혹은 불고기 아니면 비엔나, 고등어 반마리 등등. 

그런 반찬들 속에서 유독 쨍하니 돋보이는 게 하나 있는데 바로 나물이다. 

시금치 혹은 깻잎순 가끔은 참나물. 

어렸을 때는 아버지의 불호령이 있기 전까지는 손도 대지 않았는데 이제는 다르다. 

나물의 숨겨진 진가를 깨닫게 되었다. 


자기 주장이 강한 메인 반찬들은 먹다보면 금방 물린다. 고기 기름이 입 안을 코팅하고 있을 때, 엉켜있는 나물 두 세줄기면 입 안이 개운해진다. 그렇게 남은 식사를 이어갈 수 있다. 


이제는 나물이 필요한 나이다. 나물은 다량의 섬유질이 있어 반찬으로 곁들이기만 해도 배변 활동이 원활해지고 혈당스파이크를 방지할 수 있다. 나물 반찬을 싸간 날과 안 싸간 날의 차이는 꽤 크다. 


가끔 장 보는 걸 깜빡해 냉장고가 비어버렸을 때, 나물은 자기들끼리 힘을 합쳐 든든한 한 그릇을 내어준다. 

바로 비빔밥. 

입맛 돋우는 고추장 반 숟갈, 할머니가 소주병에 담아준 참기름 한 바퀴, 봉긋 솟은 계란 후라이 2개를 올려 슥슥 비벼 먹는다. 서브로 밀려있던 아이들이 메인 보컬로 데뷔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한 달에 두 세번은 나물을 무친다. 시금치 200g정도를 숭덩숭덩 잘라 끓기 직전의 물에 살짝 데친다. 

국간장 조금, 다진마늘 조금, 참기름 한바퀴,통깨 솔솔솔 해주면 나름 먹을만한 나물 반찬이 완성된다. 

하지만 먹을만 한 것일뿐 맛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맛있는 나물 반찬을 얻어 오는 곳은 내공 30년 손맛의 우리 엄마. 

차례 2번, 제사 2번을 지내는 우리 집은 매번 상에 나물이 올라간다. 그 때를 노려야 한다. 

고사리, 시금치, 콩나물 혹은 숙주, 도라지 같은 것들을 얻어와 그 주에는 비빔밥만 먹는다. 

질릴 것 같지만 한국인이라면 고추장과 참기름의 조합에 군침이 매번 한가득이다. 


이번 주 도시락은 나물 반찬이 어떨까. 그게 어렵다면, 그 핑계로 

어머니에게 전화 드리며 엄마 반찬이 먹고싶다는 투정을 부려보는 건 또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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