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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잇터 Jun 23. 2024

딸기 케이크 입덕기

빵긋 행복 제빵소에 보내는 러브레터.

딸기는 안 좋아합니다.

하지만 딸기 케이크는 좋아합니다. 완전!

 

사실 케이크는 1년에 몇 번 먹는 "특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어요.

맛.없.없 재료들로 잘 만들어진 음식이지만 막상 1조각을 먹고나면  물려 버리는 음식이기도 하고,

남은 건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까마득히

잊어버리기도 하고요.


그러나 27번째 제 생일, 딸기 케이크가

불쑥 제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별 기대 없이) 동네 작은 빵집에서 산 케이크였는데, 너무 맛있었습니다.

제 입에 분명 시기만 했던 딸기였는데...

부드러운 생크림과 같이 먹으니

그리도 달콤하고 부드러울 수가 없더군요.

그렇게 저는 "딸기 케이크"에 입덕했습니다.  


그 뒤로 제가 먹는 케이크는

거진 모두 딸기 케이크였습니다.

부모님  생신에도 딸기 케이크! 소중한 친구 생일에도 딸기 케이크! 축하할 일이 생기면 딸기 케이크!

축하를 빌미로 저도 딸키 케이크 한 조각 더 먹어보려는 속셈이었습니다.

딸기 케이크는 추워지는 겨울에 나와 더워지기 시작하면 시즌 아웃되는 한정판 케이크니까요.

먹을 수 있을 때 한 조각이라도 더 먹어두어야 비시즌에 조금이나마 덜 아쉽습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제가 축하해주고 싶은 일들은 겨울과 봄에 몰려 있거든요.

 4-5월부터는 빵집 인스타그램을 잘 챙겨봐야 합니다.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고 딸기의 당도가 사장님 기준에 못 미치면 그대로 Say good bye입니다.

그러면 이제 크리스마스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올해는 5월 21일이 딸기 케이크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지금 못 먹으면 6개월을 기다려야한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케이크가 나오는 4시에 맞춰 달려갔습니다.

걸어서 20-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지만  케이크를 픽업하면 무조건 택시를 타고 돌아와야 합니다.

생크림이 녹아버릴 수도 있고 걸어오면서 케이크가 뭉개질 수도 있으니까요.

금이야 옥이야 품에 안고 돌아오면 지체할 것 없이 바로 커팅식을 갖습니다.


하얀색 플라스틱 칼을 케이크에 스윽 밀어 넣습니다.  

'서걱'하는 소리와 딸기의 묵직한 텍스쳐가 손 끝으로 전해집니다. 벌써부터 얼굴에 웃음이 빵긋 번지기 시작합니다.  예쁜 조각으로 잘라서 먹어도 좋겠지만 그러면 번거로울 게 분명하니 처음부터 넓적한 부채꼴 모양으로 썰어 접시에 가져옵니다.

보드라운 시트와 생크림 층층이 쌓여 있고, 딸기가 그득 박혀있습니다.

유튜브 영상을 틀어 놓지도 않습니다. 가만히 앉아 입 안에 녹아 내리는 새하얀 생크림과 부드럽게 씹히는 딸기 과육, 은은하게 퍼지는 과즙을 느껴야 합니다. 눈을 감고 미각에 집중해보세요. 더 좋습니다.

그렇게 단숨에 절반을 먹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고이 모셔둡니다.

빵긋 제빵소에서 산 23/24 시즌  마지막 딸기 케이크

다음 날 아침, 소풍 가는 아이마냥 눈이 번쩍 떠집니다. 잘 숙성된 딸기 케이크를 꺼내 옵니다.

하룻밤새 딸기 과육은 살짝 물러져 있고 생크림은 냉장고에서 더 부드러워진 것 같습니다.

쌉살한 커피 한 모금에 케익 한 숟갈, 또 다시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집니다.

남은 생크림을 숟가락으로 싹싹 긁어 먹고 나서야

끝이 납니다. 입 안에 맴도는 생크림과 생그러운 딸기 향처럼 아쉬움이 진하게 남습니다. 하지만 슬퍼하지 않기로 합니다. 덕분에 행복했으니까요. 이제 올해 마지막 딸기 케이크 상자를 잘 갈무리 합니다.


특별한 날 겨우 1조각 먹던 케이크가 이제는 특별하지 않은 날에도 한 판을 다 먹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무언가를 새롭게 좋아하는 일은 언제나 설레는 일입니다.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고, 다른 세계도 알고 싶은 마음이 일렁이거든요.

딸기 케이크가 유명하다는 다른 빵집, 카페도 가보고 그 곳에서 또 새로운 맛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렇게 제 취향과 제 우주가

그만큼 넓어지기 시작합니다.

넓어진만큼 제 우주를 설렘으로 더 채울 수도 있는 거겠죠 :)



마지막으로 제 딸기 케이크 최애 맛집을 살포시 놓고 갑니다.

빵긋 행복공작소 : 경기 하남시 아리수로 570 1층 1067호 효성해링턴상가
(제 최애 맛집)
키친 205 (롯데월드 잠실점)
(엄마 최애 맛집)
강릉 늘 과자점 : 강원 강릉시 원대로 145 1층
(여행가서 우연히 먹게 된 르꼬르동 블루 출신의
딸기 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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