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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잇터 Jun 19. 2024

김치찌개로 독립 선언

나의 독립은 김치찌개로 완성?


어렸을 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자란 모든 시절에

우리 가족은 김치찌개를 참 자주 먹었다. 2주일에 한 번은 식탁에 올라와서 3-4일은 버티고 갔으니

어머니 입장에서 참 가성비 집밥 요리였으리라 생각된다. 별 다른 재료 없이 집에 있는 김치와 마늘, 대파 그리고 스팸이나 참치 같은 걸 넣으면 며칠이고 먹었으니 말이다.


어머니가 끓인 김치찌개는 대부분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어렸을 때는 스팸 넣은 걸 좋아했지만

클 수록 돼지고기를 넣은 게 더 좋았다. 끓일수록 지방에서 맛이 더 진해지고 깊어졌으니까.

물론 건더기가 사라질 수록 김치찌개에

흥미는 식어갔지만, 그 국물 맛만큼은 더욱 진해져서 쉽사리 *숟가락을 놓기 힘들었다.

(*그 날 밤에는 자다가 일어나서도 물을 벌컥벌컥 마셔야 했다. 짜디짠 국물 때문에)


고백하자면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 보쌈이나 김치 치즈 볶음밥이 아니라면 굳이 찾지 않는다.

하지만 자취 6개월째 김치찌개를 못 먹게 되니 이상하게 생각이 났다.

 '끓여보자! 못 할 게 뭐 있어!'


백주부 가르침 아래 재생과 멈춤을 반복하며

김치찌개를 끓였다. 김치와 돼지고기, 마늘, 대파, 새우젓등을 넣고 30분동안 바글바글...

결과? 말해 뭐해. 대성공! '나...요리에 소질있네'

스스로 정말 뿌듯했다. 자랑하고 싶었다.

카톡을 보냈다.

'엄마, 내가 끓인 김치찌개가 더 맛있어!

엄마도 먹어봐야 돼!'


내가 끓인 김치찌개


F성향을 타고난 엄마는 평소에 나의 작은 호들갑에도 큰 리액션으로 호응해주는 분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리고 확신에 차 있었다.

"아들, 김치찌개의 맛 99%는 김치가 결정하는 거야! 김치는 엄마가 담근 거고^^"

생각해 보니 그렇다. 내가 넣은 건 김치에 다진 마늘과 대파, 돼지고기뿐이었는데

내가 무슨 수로 김치찌개를 맛있게 끓였겠어.

김치가 다 한 거지.

그리고 그 김치는 엄마가 다 한 거지.


독립하는 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스스로 김치찌개를 끓일 줄 아는 다 큰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김치는 사실 어머니가 하루 종일 담가야 나오는 것이었다.

나도 다 컸지하는 뿌듯함에 뒤를 돌아봐도

어머니는 항상 그곳에 계셨다.


그러나 평생 그 김치찌개를 먹으며 살 순 없을 것이다.

어머니도 나이가 들고, 체력도 예전만 못하시다.

내가 좋아하는 그 김치찌개의 맛을 내주는 김치도 세상에서 영영 사라져버릴 것이다.

내가 아무리 재주 좋은 요리사가 된다고 한들 그 맛은 평생 흉내 낼 수 없을테니까.

밖에서 먹는 초밥이 아무리 맛있다 한들 집에서 엄마가 만든 김치찌개 한 술을 더 뜨자.

그게 '리미티드 에디션 김치찌개'를 조금이라도 더 맛 볼 수 있는 기회일테니까.  


꿀팁)
요즘은 라드유를 냉장고에 넣어놓고, 김치찌개에 반 숟가락씩 얹는다.
그러면 첫 술에 이틀 째 되는 돼지 김치찌개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너무 많이 넣으면 기름 둥둥 김치찌개가 되어버리니 욕심은 버리자!
(배스킨라빈스 숟가락으로 작게 2스푼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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