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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잇터 Jun 30. 2024

삼겹살 3개

홈겹살과 근고기와 대패

삼겹살 이야기를 하자면, 제 까다롭고 유난스러운 고집에 대해 고백해야 합니다. 저는 검은색 비닐봉지에 든 음식은 뭔가 찜찜하고,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는 음식의 인위적인 뜨거움을 싫어합니다. 콜라는 무조건 얼음잔에 담아야 하며, 알리오 올리오에 들어간 베이컨을 보면 인상을 찌푸립니다.


삼겹살은 어렸을 때부터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먹던 음식입니다. 가족들과 둘러앉아 까만 팬에 척척 올려 먹었죠. 늘 먹던 음식이기에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밖에서 삼겹살을 사 먹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대학생이 되고 나서 이야기는 달라졌습니다. 연애를 하고 여행을 다니며 다양한 '삼겹살'을 접하게 되었죠. 서촌에서 유명한 목살&삼겹살 집을 알게 되고, 제주도 여행에서는 두툼한 근고기라는 걸 먹어보았습니다. 와사비, 히말라야 핑크솔트, 명이나물, 멜젓 같은 것이 함께 나왔습니다. 게다가 레이저 온도계를 사용해 최적의 굽기 온도를 측정해주고 직접 구워주기까지 했습니다. 높은 온도에 마이야르 반응이 노릇하게 일어난 삼겹살은 아주 야릇하기 그지 없었지요. 두툼한 고기를 씹으면 터지는 육즙은 두 말하면 입 아프고요. 집에서 먹던 길고 얇은 삼겹살이 초라해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두툼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 고집이 생겼고, 집에서 삼겹살을 먹을 때는 '엄마! 두툼해야 맛있는데! 이건 너무 얇아'라며 태클을 걸기까지 했습니다. 어머니는 '지금까지 잘 먹어놓고 이제 와서 딴 소리한다'며 혀를 찼습니다.


하지만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직접 돈을 벌어 쓰면서 1인분에 180g, 13,000원 이상 하는 고급 삼겹살을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삼겹살 한 번 먹을 돈으로 쿠팡이나 컬리에서 일주일치 장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취업한 선배나 교수님이 사줘야 겨우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자취방에서 구워 먹기는 불편했습니다. 쌈이며 김치며 준비할 것도 많고, 불판에 있는 고기를 바로 집어먹는 것이 아닌 후라이팬에서 구운 뒤 먹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식은 삼겹살은 맛이 없었습니다. 집 안 가득 배는 냄새와 튀는 기름도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후로 1kg에 만 원대인 대패 삼겹살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식감과 풍미, 맛은 떨어질지 몰라도 가볍게 삼겹살의 맛을 즐길 수 있었죠. 간단하게 파와 볶으면 제육볶음이 되었고, 비빔면에 곁들이면 훌륭한 반찬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가끔 집에 가면 어머니가 구워주시는 삼겹살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김치를 한가득 올려 먹어도 잔소리하는 사장님이 없었고, 옥상에서 기른 상추는 무한 리필이었죠.


그래서 지금은 모든 삼겹살을 좋아합니다. 두툼한 근고기든, 집에서 구워 먹는 홈겹살이든, 대패 삼겹살이든. 굳이 우열을 가릴 필요가 없습니다. 각자의 매력이 있으니 그 매력을 인정하면 될 것을 왜 인상부터 찡그렸는지 지난날을 되돌아봅니다. 제주도에서 맛보는 근고기는 멜젓과 환상적인 조합을 이루고, 집에서 구워주는 홈겹살은 지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줍니다. 대패 삼겹살은 쉽게 이 요리 저 요리에 활용할 수 있어 좋습니다.


그러니 하루 2-3번은 꼭 먹어야 하는 '음식'에 큰 제한을 두지 않기로 합니다. 각기 다른 삼겹살의 맛을 즐기면서, 다양한 취향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미식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은 두툼한 근고기를, 내일은 얇고 바삭한 대패 삼겹살을 즐기며 살아가렵니다.

여러분들도 맛있는 순간들을 마음껏 누리며 언제나 행복한 식사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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